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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희의 시시각각] ‘청년희망펀드’가 희망이 되려면 …

중앙일보 2015.09.23 00:52 종합 38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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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희 논설위원

우리나라에 돈이 없진 않다. 오히려 많다. 대기업들이 쌓아 놓은 사내유보금만 710조원에 달한다. 외환보유액도 넉넉해 국가 신용등급이 올랐을 정도다. 청년 지원 프로그램이나 기금도 많다. 정부가 청년인턴제 사업으로 매칭해 인턴 고용기업에 돈을 주거나 청년창업·해외취업 등에 지원하는 금액도 매년 수천억원에 달한다. 민간기업들도 경쟁적으로 청년 지원사업을 벌인다. 장학금 지원부터 해외여행·사회경험 및 재능발견 기회 제공 등 프로그램이 산지사방에 널려 있다.

청년지원 기금은 많지만 효용은 의문
새 펀드, 기금 운용 모범 사례 내놔야

 그럼에도 청년들은 이런 ‘자상한’ 대한민국을 ‘헬(hell·지옥) 조선’이라 자조한다. 왜? 한 기업의 청년 지원 프로그램 운영자는 “요즘 애들은 고마움을 모른다. 당연한 듯 받고, 불만도 많고, 영악하다. 돈을 주고도 별로 보람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청년들의 배은망덕에 방점을 찍었다.

 반면 20대 중반의 한 취준생은 “기업 공익재단의 각종 프로그램에 지원했던 기억은 불쾌하게 남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대부분의 프로그램이 각종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요구하고 치열한 경쟁을 거치는 일종의 ‘서바이벌 오디션’인데, 하다 보면 누가 허풍을 잘 치나 경쟁하는 느낌이 든단다. 청년창업 지원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한 청년도 “일종의 서바이벌 오디션이고, 관건은 누가 서류를 잘 꾸미느냐여서 수긍이 안 갈 때가 많다”고 했다.

 청년들은 이런 프로그램의 진정성과 효용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 태생과 운영에 대한 의심도 털어놓는다. 실제로 청년 프로그램 중엔 청년의 미래에 대한 고민과 준비가 출발점이 아닌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기업의 사회공헌 프로그램은 2000년대 초반 서구 자본주의 진영에서부터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이 무렵 우리 정부도 기업에 윤리경영과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면서 시작된 경우가 많다.

 월가 점령 운동 이후 금융권의 사회적 책임 논란이 불거지자 은행연합회는 5000억원을 출연해 청년창업재단을 만들고, 비리에 연루된 기업 총수들은 사재를 출연해 사회공헌재단을 만들며 성의를 보였다. 청년 지원 프로그램은 이런 재단의 인기 사업 아이템이 됐다. 애초 청년 문제에서 출발한 게 아니라 사업을 위해 청년을 활용한 것이다.

 우리나라 사회공헌 기금의 특징은 직접 사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미국에선 부자들의 사회환원으로 조성된 기금 등 사회적 기금이 직접 사업보다는 민간 비영리단체의 목적 사업을 지원하며 내용을 풍부하게 하는 것과 상반된다. 우리나라는 재단이 직접 사업을 하다 보니 이왕이면 생색이 나도록 도처에서 청년을 경쟁시키고 서바이벌 오디션 이벤트 등을 벌이며 ‘경쟁문화 확산’에 앞장서고, 지원보다 이벤트 홍보에 더 열심인 경우도 있다.

 이에 청년들이 서류를 잘 꾸미는 허풍에 능란해질 것을 요구받으니 돈을 받고도 고마움보다 불신과 피로감을 호소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 사회의 청년 지원책은 돈과 프로그램이 없는 게 아니라 청년 문제를 해결하고 기대에 부응하려는 진지한 의도와 고민과 대책이 없는, 그 ‘어긋남’이 문제다.

 박근혜 대통령이 제안한 청년희망펀드 조성에 청년층이 ‘불우이웃 돕느냐’며 싸늘하게 반응하는 건 이런 또 하나의 어긋남이 재연될 거라는 시각 때문인지도 모른다. 청년 일자리는 우리 사회와 기업들이 끝없이 책임감을 느끼고 궁리를 해야 하는 문제인데 대체로 사람들은 모금함에 돈을 넣으면 자신의 사회적 책임을 다했다는 안도감을 느낀다는 점에서 돈 몇 푼에 책임감을 면해 주는 건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도 있다.

 또 청년희망펀드가 1970~80년대 관제 모금운동을 연상케 해 썩 유쾌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미 은행을 통해 기부가 시작됐고, 기부자가 늘어 돈은 모일 거다. 어차피 시작했으니 이 기금이 기존의 것과 도긴개긴이 안 되게 좀 더 창의적으로 ‘사회적 기금은 이렇게 쓰는 것’이라는 모범 사례를 만드는 모습을 보고 싶다.

양선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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