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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저호황, 외환위기, 펀드 붐 … 격랑 헤치며 세계 11위

중앙일보 2015.09.23 00:19 경제 4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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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의 꽃’으로 불리는 증권거래소는 413년 전에 등장했다. 네덜란드는 동인도 회사 주식을 거래하려 1602년 수도 암스테르담에 세계 최초의 증권거래소를 만들었다.

자본주의의 꽃, 증시 50년
코스피 27년 100 → 2000P 성장 때 GDP는 9570억 달러로 15배 늘어
역동성 잃고 틀에 갇힌 ‘박스피’ … 사상최고 2228.96P 4년째 못 깨


 반면 한국에 주식시장이 등장한 건 이보다 300여 년이 지나서다. 1917년 생긴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와도 40년의 차이가 난다. 한국전쟁 직후 경제 재건에 나선 재무부는 1956년 3월 3일 서울 중구 명동에 대한증권거래소를 세웠다. 개장 초기엔 관리 시스템이 없어 관련 통계도 집계할 수 없었다. 시가총액 등 증권 거래 관련 공식 통계는 65년 이후부터 남아 있다. 종합주가지수도 64년에야 처음 도입됐다. 한국 주식시장 역사는 사실상 65년 이후 ‘50년’이란 말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한국 주식시장은 반세기 만에 압축성장을 이뤄내며 시가총액 세계 11위의 시장으로 도약했다. 기업이 ‘한강의 기적’을 써내려가며 비약적으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65년 상장기업의 시가총액은 145억 원이었다. 지난달 27일 블룸버그가 집계한 세계 84개국 주식시장의 시가총액을 보면 코스피 시장은 1336조107억달러를 기록했다. 65년에 비해 약 9만 2100배 커졌다. 주식시장 개장 초기 재무부 주도로 상장된 회사는 조흥·저축·상업·흥업은행 등 4개 은행과 경성방직 등 6개 기업, 기타 법인 등 17개였을 뿐이다. 이젠 44배인 760여개로 불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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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스피지수는 83년 1월 4일 생겼다. 80년 1월의 100포인트를 기준으로 하는 새 종합주가지수가 생기면서다. 코스피지수는 한국 경제의 부침에 따라 울고 웃었다. 80년대는 저금리 저유가 저환율 등 ‘3저(低)현상’으로 호황을 누렸다. 이에 힘입어 89년 3월 31일 최초로 1000포인트를 돌파했다.

 90년대부턴 숱한 대내외 어려움과 맞닥뜨렸다. 92년 외국인 투자가에게 주식시장을 전면 개방하면서 본격화됐다. 97년 외환위기가 발생하자 외국인 투자가는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대마불사(大馬不死)’로 여겨지던 대기업이 속절없이 무너지고 구조조정을 당했다. 결국 1998년 6월 코스피는 280선까지 주저앉았다.

 그래도 위기 뒤 기회가 찾아왔다. 99년 이익치(71) 전 현대증권 회장은 ‘바이코리아펀드’를 만들어 채권형 투자 상품이 주류던 국내 금융시장에 주식형펀드 투자붐을 일으켰다. 벤처 열풍도 한 몫 했다. 중소·벤처기업을 위해 96년 개장한 코스닥지수는 2000년 3월 2834.4까지 올랐다(2004년 1월부터 10배로 조정). 하지만 거품이 꺼지고 1년도 채 못돼 500선까지 추락했다. 2000년대엔 재테크 열풍이 불었다. 박현주(57) 미래에셋 회장이 자신의 이름을 앞세운 국내 최초 뮤추얼펀드 ‘박현주펀드’를 선보이며 재테크 시장에 펀드를 안착시켰다. 펀드 투자 열기에 힘입어 주가지수는 2007년 1500선과 2000선을 연이어 돌파했다. 하지만 그해 말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가 시작된다. 2008년 10월엔 코스피가 하루 최대 낙폭(126.51포인트)과 최대 폭등(115.75포인트) 기록을 같은 달에 작성하는 등 주식시장이 요동쳤다.

 이런 격랑에도 기업은 증시로 경영자금을 조달했다. 그 돈으로 기술 경쟁력을 키웠고, 글로벌 시장을 개척했다. 증권사들은 기업의 인수합병(M&A)을 돕는 투자은행으로서 외형 확장을 도왔다. 이를 통해 대기업 그룹은 유동성을 확보해 세계적인 기업으로 커갈 수 있었다. 실제 코스피지수가 100(1980년 1월 4일 기준)에서 2000선을 첫 돌파(2007년 7월 25일)하는 동안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은 640억달러에서 9570억 달러로 15배 커졌다.

 문제는 역동성을 잃어버린 지금의 증시다. 코스피 시장의 별칭 중 하나가 바로 ‘박스피(BOXPI)’다. 최근 몇 년간 주요 선진·신흥국 증시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할 때에도 코스피지수는 힘차가 뛰어오르지 못하고 1800~2000선의 박스권을 맴돌자 생긴 표현이다. 코스피지수는 2011년 5월의 사상 최고치(2228.96)를 4년이 지나도록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는 증권시장이 더욱 성장하려면 투자자가 믿고 장기투자에 나설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박경서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현재 한국시장은 경제 기초체력(펀더멘털)에 비해 저평가돼 있다”며 “이는 불투명한 기업지배구조와 주주친화적이지 못한 환경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소액주주를 보호하고 등 투자자 친화적 환경이 마련돼야 3000포인트를 넘는 성장을 기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복잡하고 까다로운 상장규정도 손질하고 투자자의 관심을 끌 우량기업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다. 증권업계 역시 상품 판매에 의존하는 것에서 벗어나 자산관리나 대체투자, 연금 및 해외시장 진출 등 새로운 먹거리 발굴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전문가는 지적한다. 김준석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향후 주식 시장은 고령화 시기를 맞아 개인투자자에서 기관투자가, 단기투자에서 장기투자의 경향이 강해질 것”이라며 “코스피와 코스닥 외에 다양한 증권시장 생태계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코스피 지수(KOSPI)=한국 종합주가지수. 코스피 시장에 상장된 종목의 주식 가격을 표시한 수치다. 주식시장 전반의 움직임을 측정하는 지표다. 증권거래소(현 한국거래소)는 1964년 1월 4일을 기준시점으로 한 종합주가지수를 만들었다. 이후 시장규모가 확대되자 1983년 1월 4일 채용종목을 늘리고 기준시점을 바꾼 지금의 KOSPI 지수를 발표했다. 현재의 시가총액을 기준시점인 1980년 1월 4일의 시가총액으로 나눈 뒤 100을 곱해 계산한다.

코스닥 지수(KOSDAQ)=코스닥은 중소·벤처기업에 자금을 마련해 주고 투자자에게 새로운 투자처를 제공하기 위해 만든 증권시장이다. 같은 취지로 운영되는 미국의 나스닥(NASDAQ)을 본 떠 만들었다. 코스닥 시장에 상장된 종목의 주식 가격을 표시한 것이 코스닥 지수다. 기준시점은 코스닥 시장이 출범한 1996년 7월 1일이다. 기준지수는 100으로 시작했지만 시장 상황을 잘 반영하지 못한다는 의견이 많자 2004년 1월 26일부터 1000으로 올려 계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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