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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 철조망 피아노의 울림 ‘분단에서 평화를 캐라’

중앙일보 2015.09.22 03:02 종합 12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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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미술관 로비에서 29일까지 전시되는 ‘통일의 피아노’는 철조망을 개조해 현을 만들었다. 분단의 상징 철조망이 만드는 둔탁하고 거친 불협화음이 남북의 상황을 표현하고 있다. [중앙포토]


서울 서소문 시립미술관 본관 1층에는 독특한 피아노 한 대가 놓여 있다. 가느다란 현(絃) 대신 철조망을 두드려 소리를 내는 ‘통일 피아노’다. 지난 18일 이곳에서 만난 이경미(24)씨는 “소리는 둔탁하고 불협화음이지만 분단의 아픔을 담고 있는 선율이란 느낌을 갖게 한다”고 말했다. 이 피아노에선 ‘우리의 소원은 통일’ ‘고향의 봄’ 같은 노래가 주로 연주된다. 해설사 이주영씨는 “남북한의 분단 상황을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매력 코리아 리포트 <4> 분단국가의 역발상
외국인에겐 아직 한국=분단 각인
우리가 평화 외치면 더 설득력
영화 ‘JSA’ 는 분단의 창조적 활용
“DMZ생태공원 구상서 더 나아가 놀이시설 갖춘 평화도시 만들자”


 분단이란 그림자는 한국인의 삶 속에 지난 70년 동안 짙게 드리워졌다. 외국인에게도 마찬가지다.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VANK)가 홈페이지를 통해 12개 국가 6000여 명에게 한국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뭔지 물었다. 1위가 ‘분단국가’(39%)였다. 김치(18%), 전자제품(12%), 북한 핵 문제(6%), 한류(4%) 등 2~5위를 모두 합친 것만큼이다.

 남북 분단은 아픔의 세월이었다. 이산가족에겐 천륜을 끊고 살기를 강요당한 눈물의 시간이고, 북한의 도발로 가족을 잃은 이들에게는 고통의 나날이 됐다.

 최진욱 통일연구원장은 “한반도의 허리가 잘렸다는 표현에서 드러나듯 비관과 낙담으로 채워온 분단을 이제는 통일과 한민족 도약의 에너지로 승화시켜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분단을 이제부터는 ‘매력’으로 승화시켜 평화와 통일로 가는 자양분으로 삼아야 한다는 얘기다. 분단을 팔아 평화를 사는, 일종의 빅딜이다.

 비무장지대(DMZ)의 철조망을 끊어내 통일 피아노의 현으로 쓴 건 상징적인 출발이다. 분단 상징물이 다른 것과 융합하면서 새로운 매력을 발산하고 있는 사례는 우리 주변에 많다. 무엇보다 분단 극복을 위한 통일문화의 역할이 주목받고 있다. 라종억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문화예술분과위원장은 “분단국인 우리가 평화를 외치면 더 설득력을 갖게 된다”며 “통일문화라는 소프트한 어프로치가 효과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분단을 소재로 해 대박을 낸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가 그 힌트다. 2000년 9월 개봉 당시 최고 관객인 582만 명을 기록한 이 영화는 200만 달러에 일본으로 수출됐다. 그로부터 3년 뒤 6·25전쟁과 이념 대립의 비극을 다룬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가 1174만 명의 관객을 끌어모았다. 분단이 예술작품의 훌륭한 소재임을 확인케 한 것이다.

 반크는 구체적 행동에 나서고 있다. 동북아 국가 간 갈등 해결과 평화 정착을 위해 ‘피스 메이커(Peace maker, 평화 만들기)’를 조직한 게 대표적이다. 이들은 평화와 번영의 전령사다. 한국과 아시아, 그리고 세계를 이끌며 호흡을 함께 하자는 비전을 제시한다. ‘피스 기자’들의 활동이 두드러진다. 이들이 쓴 기사는 피스 웹진(Paths To Peace)에 업데이트 된다. 지구촌의 분쟁을 예방하거나 평화로 전환하려는 노력이 담긴 글을 매개체로 지한파와 친한파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이를 통해 한국인이 분쟁 이슈를 주도적으로 해결해나가는 모습을 알리고 있다.

 박근혜 정부도 팔을 걷어붙였다. DMZ 세계생태평화공원은 분단을 주변국에 매력 상품으로 세일하려는 구상이다. 지난해 9월 유엔 총회 기조연설에서 박 대통령은 “DMZ의 철조망을 걷어내고 유엔 주도하에 남북한·미국·중국 등 전쟁 당사자들이 참여해 공원을 만든다면 한반도 평화통일의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분단을 매력으로 바꾸려면 창조적 역발상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2008년 뉴욕 필하모닉의 평양 공연을 기획한 배경환씨는 DMZ 내에 디즈니랜드와 의료·교육 환경 기능을 갖춘 평화도시를 만들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배씨는 “종이 위에 서명하는 평화보다 놀이를 통해 어울리는 게 진정한 평화”라고 강조했다.

고수석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ko.soos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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