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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써 모은 귀중한 신문 잃어버릴까봐 이사도 포기했죠”

중앙일보 2015.09.22 02:56 종합 14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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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창간 독자인 최경천씨가 호남대 도서관에서 중앙일보 창간호를 펼쳐 보이고 있다. 여기엔 최씨가 33년간 모은 중앙일보가 보관돼 있다. [프리랜서 오종찬]


“혼자만 보기엔 아깝고, 나중에 다시 봐도 가치가 있겠다 싶고. 그래서 중앙일보를 창간호부터 계속 모았습니다.”

[창간 독자 인터뷰] 중앙일보 50년치 모은 최경천씨
신문 젖으면 보급소 가서 받아와
1998년엔 33년치 호남대에 기증
“필요한 뉴스 엄선, 잘 가꾼 정원 같아”


 중앙일보 창간 독자 최경천(71·광주광역시 북구 중흥동)씨는 대학 시절인 1965년부터 2015년 9월 21일자까지 1만5748호를 한 부도 빼놓지 않고 모두 모았다. 신문용 비닐 봉투가 없던 시절, 신문이 비에 젖으면 보급소를 직접 찾아가 보관용 신문을 받아 왔다. 출장 때는 가족에게, 휴가 때는 이웃에게 “신문을 꼭 챙겨 달라”고 부탁했다.

 “80년 광주민주화운동 때는 20여 일간 배달이 끊겼습니다. 어떻게든 구하려고 수소문하고 다녔더니 아는 분들이 서울에 다녀오면서 구해다 주시더군요.”

 최씨는 신문을 소중한 자산으로 여기며 안방에 보관했다. 어느 정도 모은 뒤에는 이사 가는 것도 포기했다고 한다. “이사를 하다가 애써 모은 귀중한 신문을 잃어버릴까 봐”라고 했다. 98년 9월 그렇게 모은 중앙일보를 호남대 도서관에 기증했다. 혼자 보기 아까워 모두가 함께 볼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33년간 모은 1만467일치 신문을 한 줄로 쌓으니 높이가 10m에 무게는 1.5t에 달했다. 호남대 도서관은 이 신문을 제본해 보관 중이다.

 KBS 광주방송총국 아나운서 출신인 최씨는 “방송을 하다 보니 시대의 흐름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중앙일보가 꼭 필요했다”며 “그런 점에서 중앙일보는 늘 이정표와 같은 존재였다”고 회고했다. 그는 70~80년대 중앙일보가 주최한 ‘경호역전 마라톤’의 광주 구간 생중계를 맡은 인연도 있다.

 중앙일보에 대해서는 “매일 잘 가꿔진 정원을 보는 느낌”이라고 평했다. “꼭 알아야 할 뉴스와 그 뒷면의 얘기, 그리고 각종 생활정보들을 선별해 보여주는 게 좋은 화초들을 엄선해 심어놓은 정원 같다고나 할까요. 50년간 그런 중앙일보를 전부 모았으니 1만5000개가 넘는 정원을 수집한 셈입니다.”

 아나운서 출신이어서일까. 중앙일보 지면에서 한글 맞춤법을 알려주는 ‘우리말 바루기’와 ‘시(詩)가 있는 아침’ ‘중앙시조 지상백일장’을 가장 특색 있는 코너로 꼽았다. “신문들이 한자와 영어·일본어 회화는 게재하면서 우리말 바르게 쓰기에 대해서는 별 관심을 갖지 않았죠. 그걸 중앙일보가 제일 먼저 시도했습니다. 시조 백일장은 여동생이 글쓰기 공부 교재로 삼더군요.”

 98년 9월 33년치 신문을 대학 도서관에 기증한 뒤 17년이 지났다. 최씨의 집엔 다시 신문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이건 어떻게 할 계획일까. “글쎄요, 요즘엔 신문 지면을 인터넷 PDF로 볼 수 있는 시대라서…. 그래도 50년 전 결심처럼 평생 힘 닿는 데까지 모아 자식들에게 유산으로 남겨주고 싶습니다. 인생을 사는 데 신문만큼 유용한 지혜를 알려주는 선생님은 없으니까요.”

광주광역시=최경호 기자 ckha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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