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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렇게 고운 분들을 … 세 할머니 젊을 적 사진에 가슴 아파”

중앙일보 2015.09.22 02:33 종합 20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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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14일자 본지 1면에 게재된 시리즈 첫 회.


“내가 바로 그 위안부입니다.” 고(故) 김학순 할머니가 침묵을 깨고 위안부 피해상을 증언한 지 24년 만인 지난 8월 14일. 중앙일보가 창간 50주년을 맞아 생존 위안부 피해자 13인의 릴레이 인터뷰 연재를 시작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 13인의 기록, 그 후
할머니들은
우리들 사연 기사로 써줘 고마워
그런데도 문제해결 안 되니 원통
독자들은
한 분 한 분의 삶이 다 드라마 같아
일본 사과 받을 때까지 꼭 버텨야


 할머니들은 인터뷰에서 자신의 삶을 지켜주는, 소중한 대상을 하나씩 소개했다. 공점엽(95) 할머니는 위안소에서 친자매처럼 의지하던 조선 언니들과 새긴 문신을 꼽았다. ‘돈 없는 고아들 공부에 써달라’며 전 재산 2억여원을 기부한 김군자(89) 할머니는 지난해 12월 받은 국민추천포상 대통령 훈장을 꺼내 보여줬다. 강일출(87) 할머니는 고향 경북 상주를 떠올리게 하는 곶감을, 이용수(88) 할머니는 조선의 딸이라는 걸 알리기 위해 늘 챙겨 입는 한복을 자랑했다. 매주 수요집회를 함께하는 아이들(김복동 할머니·89), 직접 산에서 약초를 캐 담근 약술(박숙이 할머니·93), 병실에 누워 매일 바라보는 꽃(김복득 할머니·97), 힘들 때마다 읽는 성경(이옥선 할머니·88)도 할머니들의 친구였다.

 할머니들은 “사람에게 속고 상처 받았지만 사람을 미워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기정(90) 할머니는 “왜 이렇게 힘들게 살았을까 하다가도 찾아와 주는 양반들이 있어 감사하다”고 말했다. 한사코 “오지 말라”던 박필근(88) 할머니는 막상 기자가 찾아오자 “화투 한판 치자”며 사람을 향한 그리움을 나타냈다. 김복선(83) 할머니는 “평생 남에게 옷을 팔러 다녔는데 처음으로 백화점에서 옷을 골라봤다”며 여성가족부에서 선물받은 외투를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자식들도 할머니들에게 큰 힘이었다. 김양주(91) 할머니는 양아들이 찾아올 때 행복하다고 했고 박옥선(91) 할머니는 중국에 있는 아들이 선물한 금가락지를 항상 손에 끼고 있다.

 일간지 최초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한 분 한 분의 생애를 기록한 본지에 대해서도 응원이 이어졌다. 특히 김군자·이옥선·이용수 할머니의 어린 시절 사진을 나란히 보도한 기획 첫 회 ‘짝사랑 고백도 못 해본 16세였다’(8월 14일자 1면)는 많은 독자의 호응을 받았다. “올 한 해 본 것 중 가장 기억에 남는 1면이었다”는 칭찬 메일부터 “저렇게 고운 분들을…빼앗긴 젊음이 안쓰럽다” “영문도 모르고 끌려가 어린 나이에 생살이 찢기는 아픔을 겪었을 것이라 생각하니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다”는 댓글까지 할머니들의 아픔에 공감하는 독자들이 줄을 이었다.

 기사를 본 이옥선 할머니는 “아… 이옥선(본인)이가 이렇게 고운가 했어요. 나이 어려서 15살에 끌려가서 이제 내가 89살인데 다 늙어서… 귀도 안 들리고 눈도 안 들리고 반병신 됐어요”라고 안타까워했다. 이 할머니는 “기사를 써줘 고맙다”면서도 “이렇게 기사를 써도 아직까지 문제 해결이 안 된다는 게 너무 억울하고 원통합니다. 빨리 해결이 돼야 해요”라고 덧붙였다.

 독자들은 해방 후에도 숨어 지내온 할머니들의 삶에 대해 가슴 아파했다. “ 전쟁 후에도 수십 년간 죄인처럼 살아야 했던 할머니들에게 죄송하다.”(양지은·18) “한 분 한 분의 삶이 드라마 같아 마음이 저려온다.”(박영선·44) 독자들은 “식민지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살아남으셨으니 일본의 사과와 보상을 받을 때까지 꼭 버티시라”고 할머니들을 응원했다.

특별취재팀=정강현(팀장)·유성운·채윤경·한영익·김선미·윤정민·김민관 기자, 사진·영상=정혁준 기자, 김상호·김세희 VJ fone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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