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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의 풍류, 천주교의 비극 … 역사가 흐르는 양화진 뱃길

중앙일보 2015.09.22 01:58 종합 28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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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화진 근대사 뱃길 탐방은 A코스(①→③→④)와 B코스(②→③→④)로 나뉘어 진행된다. ① 유람선에서 바라본 절두산 순교 성지. [사진 마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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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개화기 선교사들의 유해가 안장된 외국인 선교사 묘원. [사진 마포구]

“양화답설(楊花踏雪)은 ‘양화 나루에서 밟는 겨울 눈’을 일컫는 말입니다. 겸재 정선이 화폭에 담았을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이지요.”

서울, 가볼 만한 곳 - 홍대 ③ 절두산 성지~선유도
조선 문인들이 한양 10경에 꼽아
병인박해 때 8000여 명 희생된 곳
마포구서 매주 수요일 무료 탐방
해설사와 함께 걷고 배 타는 코스

 지난 2일 오전 최우영(42) 해설사의 설명에 유람선 갑판에 탔던 40여 명의 탐방객 사이에서 ‘와’하는 탄성이 터져나왔다. 양화대교 북단에서 배를 타고 출발한 지 5분쯤 지나자 왼편으로 잠두봉(蠶頭峰)이 모습을 드러냈다. 최 해설사가 “머리를 치든 누에와 닮아 붙여진 이름”이라고 설명하자 탐방객들은 스마트폰을 꺼내 들고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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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2012년 람사르습지로 지정된 밤섬. [사진 마포구]

 마포구청이 지난 4월부터 운영 중인 ‘양화진 근대사 탐방, 뱃길을 열다’ 프로그램에 본지 기자가 동행했다. 양화진 일대 유적과 밤섬·선유도를 걷거나 유람선을 타고 탐방하는 코스다.

 양화진은 한강진·송파진과 함께 조선시대 한강의 3대 나루터 중 하나였다. 한양에서 강화도로 가는 길목에 있어 물류·군사적 거점으로 활용됐다. 하지만 빼어난 풍광 때문에 조선의 선비들 사이에선 뱃놀이 장소로 더 유명했다. 월산대군과 강희맹·서거정 등 조선 초기 문인들은 한도십영(漢都十詠·서울의 풍치좋은 곳 10곳) 중 하나로 양화진을 꼽았다. 사대부들의 별장과 정자도 이곳에 많이 세워져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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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정수장으로 쓰이다 생태공원으로 재탄생한 선유도공원. [사진 마포구]

 이날 탐방은 합정역 7번 출구 앞 양화진 소공원에서 시작됐다. 가장 먼저 절두산(切頭山) 성지(사적 제399호)로 향했다. 절두산의 원래 이름은 잠두봉이다. 병인박해(1866년) 때 천주교 신자 8000여 명이 이곳에서 참수된 이후 절두산으로 불렸다. 당시의 비극은 작가 김훈의 장편 『흑산』에도 등장한다. “박차돌은 여동생의 시체를 지게에 지고 잠두봉 중턱으로 올라갔다. 멀리, 허연 강이 보이는 자리였다. (중략) 묻기를 마치고, 박차돌은 그 자리에 쓰러져서 해가 뜰 때까지 울었다.”

  절두산 순교성지와 양화진 소공원 사이에는 외국인 선교사 묘원이 있다. 헐버트(독립운동가)와 아펜젤러(배재학당 설립자) 등 개화기 선교사 417명이 묻혀 있다. “나는 웨스트민스터성당보다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한다”고 적힌 헐버트 박사 묘비문 앞에 서자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이어 잠두봉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밤섬·선유도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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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섬은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도심 속 철새 도래지다. 멸종위기종인 흰꼬리수리(천연기념물 243호) 등 수십 종의 조류가 산다. 한때 섬을 뒤덮은 새의 배설물로 몸살을 앓다가 지난 3월 서울시가 물대포를 동원해 대청소를 벌여 깨끗하게 변했다. 선유도공원에선 잠시 배에서 내려 산책을 즐길 수 있다. 선유정에 올라서자 탁 트인 한강의 풍경이 눈에 확 들어왔다. 탐방객 윤정자(76·여)씨는 “50년 넘게 마포구에 살았지만 오늘처럼 색다른 서울의 모습은 본 적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박홍섭 마포구청장은 “시행 5개월여 만에 입소문을 타면서 개인·가족은 물론 단체 신청이 밀려들고 있다”며 “횟수를 늘리고 영어·중국어 프로그램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뱃길을 열다’ 프로그램은 다음달 28일까지 매주 수요일 오전 10시30분(A코스)과 오후 3시(B코스)에 2시간30분가량 진행된다. 참가비는 무료다. 회별 참가인원은 선착순 40명으로 제한된다. 초등학교 4학년 이상이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고, 컬처앤로드 문화유산활용연구소(02-719-1495)로 문의하면 된다.

장혁진 기자, 정현웅(성균관대 철학과) 인턴기자 analo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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