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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유석 판사의 일상有感] ‘삼세판’보다 원스톱 서비스를 권합니다

중앙일보 2015.09.22 01:12 종합 38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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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유석 인천지법 부장판사

평생 법원 근처에도 가보지 않은 분들은 행복한 분들이다. 송사란 심신을 모두 힘들게 하는 일이다. 법정 드나들랴, 증거 수집하랴, 결과에 대한 불안에 시달리랴 본업에 충실하기가 어렵다. 그런데 이 힘든 과정을 세 번이나 겪어야 한다. 우리나라같이 ‘싸움은 삼세판’이라는 정서가 강한나라는 세계적으로 찾기 힘들다.

 어떤 모임에서 한 교수님이 집안 분쟁으로 고생 중이라며 푸념을 하는데, 1심에서 이겼고 2심에서 졌단다. 그러면서 이제 일대일 동률이니 대법원에서 결판을 봐야 한단다. 상급심과 하급심은 대등한 것이 아니다. 2심에서 파기됐으면 1심은 완전히 무효화되는 거다. 삼세판 가위바위보가 아니다. 그런데 대학 교수조차 일대일 동률이니 결판을 봐야 한단다.

 굳이 삼세판에 매달리느라 몇 년을 고통받을 필요 없이 단판 승부로 끝내고 평화를 찾는 길도 있다. 조정이다. 조정위원 주재하에 충분히 서로의 입장을 조율해 조정이 성립되면 쌍방 모두 더 이상 다툴 수 없다. 스스로 합의서에 사인했기 때문이다. 확정판결과 마찬가지의 효력이 있어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강제집행도 가능하다. ‘원스톱 서비스’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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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다가 공개법정에서 이야기하기 힘든 속사정도 비공개 조정실에서는 얼마든지 토로할 수 있다. 상근조정위원들의 헌신적인 노력도 대단하다. 한 조정위원은 여러 번 조정기일을 진행하다가 마지막 날에는 오후 5시부터 10시 반까지 무려 다섯 시간 반 동안 양측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조율한 끝에 결국 복잡한 건물 철거 사건을 해결했다. 밤이 되자 조정위원의 배우자로부터 ‘아직도 조정 중이냐’는 전화가 왔다. 위원은 피고에게 전화를 바꾸어 “아직 조정 중이니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라고 하게 했다. 그런데 얼마 후 이번에는 피고의 배우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위원이 전화를 넘겨받아 “지금 조정 중이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라고 하고는 피고와 마주 보며 웃었단다.

 민사사건 조정을 성립시키면서 여러 건의 관련된 형사사건 고소·고발까지 서로 취하하도록 해 원수가 됐던 이웃이 악수하고 웃으며 헤어지는 일도 빈번하다. 상호 불신과 분노 때문에 끝까지 갈 거라고들 하지만 결국 사람들의 속내는 어서 분쟁에서 해방돼 모든 것을 잊고 싶은 것 아닐까. 그걸 도와드리는 데 소요되는 비용은? 늘 부족한 조정위원 수당은 사건당 평균 6만원 정도에 불과하다. 나라 예산 중에 가장 값있게 쓸 수 있는 부분 중 하나가 아닐까.

문유석 인천지법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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