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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성추행 직원에 퇴직금 100% 준 석유공사

중앙일보 2015.09.22 01:07 종합 39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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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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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상 경제부문 기자

18세 소녀는 집안의 자랑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남들이 몇 년씩 준비한다는 공기업에 합격했다. 그러나 직장은 기대하던 것과 달랐다. 처음 배치된 부서의 40대 팀장은 말을 듣지 않는다고 회식 자리에서 물수건을 얼굴에 던졌다. 사무실에선 가슴과 허벅지까지 만졌다. 민법상 미성년자에게 성추행이 일어났지만 회사는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소녀가 부모의 손을 잡고 경찰에 신고를 한 뒤에야 회사는 ‘이제야 알았다’는 듯 팀장을 파면시켰다.

 자산 규모만 26조원이 넘는 공기업 한국석유공사에서 지난해 12월 벌어진 일이다. 이 사실은 21일 국회에 국정감사를 통해서야 세상에 알려졌다. 더구나 석유공사는 성추행을 한 팀장에게 1억2500만원의 퇴직금 전액을 지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공무원은 국가공무원법에 따라 성범죄를 저지르면 퇴직금의 절반을 삭감당한다. 그러나 공공기관 직원에겐 이런 조항이 적용되지 않는다. 이 사실을 국감장에서 공개한 새누리당 전하진 의원은 “공공기관 직원도 국가공무원법에 준해 퇴직금을 삭감하는 등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방만 경영도 여전하다. 국내 유일의 내국인 카지노를 운영하는 강원랜드는 임원 관사를 전용면적 85㎡ 이하로 운영하라는 기획재정부의 권고를 무시하고 106㎡(32평) 규모로 유지해온 사실이 드러났다. 관사에 140㎝(55인치) TV와 양문형 냉장고, 오디오 등을 설치하기 위해 회사 돈 2100만원을 썼다. 새누리당 김동완 의원실에서 경위를 묻자 강원랜드 직원은 “사모님의 요구 때문에…”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고 한다. 김 의원이 이 문제를 지적하자 함승희 강원랜드 사장은 “문제가 있다면 개선해 나가겠다”는 짧은 답변만 했다.

 강원랜드는 2012년 3억원의 개발비를 들여 스마트폰을 활용한 셔틀버스 이용 시스템을 만들었다. 하지만 관련 팀장이 여덟 번 바뀌고 업무를 이관하면서 운영 업체가 추가로 요구한 인건비 지급에 관한 변경 계약서를 찾지 못하는 일이 벌어졌다. 시스템을 운용할 비용을 업체에 지급할 근거가 없어지자 강원랜드는 이 사업을 폐기하고 말았다. 공기업 부채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520조원에 이른다. 지난해 중앙·지방 정부 채무(533조원)와 맞먹는 규모다.

 공기업의 기업 문화도 문제다. 강원랜드는 지난해 국감에서도 직원들의 상습적인 해외원정 도박 사실이 드러났다. 신입 여직원에 대한 성추행이 있었는데도 깜깜했던 석유공사, 도박에 중독된 직원이 해외에서 빌린 돈마저 날리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강원랜드…. 젊은이들이 선망하는 직장이 이 정도라면 우리나라 청년에겐 정녕 희망이 없어 보인다.

글=김민상 경제부문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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