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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시진핑의 고전 이탈

중앙일보 2015.09.22 01:00 종합 40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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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규 베이징 총국장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은 자타가 공인하는 고전 매니어다. 그의 통치 철학 뿌리가 고전에 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예컨대 그가 강도 높게 추진하고 있는 국가 개혁은 송대 문호이자 정치인인 소동파(蘇東坡)를 사사했고, 반부패는 남송 여본중(呂本中)의 『관잠(官箴)』에 나오는 “관리는 오로지 청렴하고 신중하며 근면해야 한다(當官之法 惟有三事 曰淸 曰愼 曰勤)”는 문구와 맥을 같이 한다. 지방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관리를 중용하는 용인술은 “재상은 지방에서부터 양성된다(宰相必起於州部)”는 한비자의 인재론과 닿아 있다.

 고전은 그의 교육관이기도 하다. 지난해 9월 베이징 사범대를 방문한 시 주석은 ‘고전은 민족 문화의 근간’이라고 평가했다. 이후 중국 교육부는 초·중·고 교과서에 실린 고전의 양을 대폭 늘리는 조치를 취했다.

 공자는 아예 그의 정신적 지주다. 그가 지금까지 각종 연설이나 회의에서 인용한 고전 중 『논어』가 11차례로 가장 많다. 2013년 11월엔 공자의 고향인 산둥(山東)성 취푸(曲阜)를 방문해 『공자가어통해(孔子家語通解)』와 『논어전해(論語詮解)』를 받고 반드시 읽겠다고 공개 약속까지 한 그다.

 외교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해 7월 라틴아메리카 순방 과정에서 그는 “대도를 실천하면 천하는 모든 사람의 것이 된다(大道之行也, 天下爲公)”는 『논어』의 문구를 인용하며 중국의 정의와 공평·대범 외교를 설명했다. 지난해 3월 독일에서는 “대국은 천하의 지천을 받아들인다(大邦者下流)”는 노자의 말로 중국의 포용 외교를 설명했다. 이쯤 되면 시 주석은 온고지신(溫故知新)의 경세론, 즉 만사를 천천히, 멀리, 그리고 신중하고 깊게 보라는 고전의 가치를 중시하는 지도자로 보기에 충분하다.

 이런 시 주석이 요즘 좀 변한 것 같다. 얼마 전 공산당 기관지인 광명일보가 정치권에서 군대에 이르기까지 시 주석의 개혁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강력한 저항에 맞닥뜨렸다고 전했다. 좌고우면하지 않는 개혁의 질주가 엄청난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얘기다.

 이뿐인가. 지난달 인민일보는 당 원로들에게 정치에 개입하지 말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원로 예우’라는 중국 정치의 전통과 통념의 격을 깨겠다는 경고다. 급기야 3일의 전승절 열병식에선 핵미사일까지 공개하며 국제사회를 향해 군사굴기를 선언했다.

 이런 추세면 시 주석은 22일 시작하는 미국 방문에서도 타협보다는 완력을 자랑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중국의 핵심 이익이라는 대만과 남중국해,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토 문제에서 그는 한 치도 양보할 것 같지 않아 보인다. 그리고 자칫하면 G2(미국과 중국)의 냉전 구도가 형성될 수도 있다.

 고전을 경애(?)하는 시 주석이 “큰 나라를 다스릴 때는 작은 생선 삶듯 부서지지 않도록 조심하라(治大國若烹小鮮)”는 노자의 도덕경 경구(警句)를 모르진 않을 터인데 걱정이다.

최형규 베이징 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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