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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의 시시각각] 북한보다 한국을 챙기는 중국?

중앙일보 2015.09.22 01:00 종합 40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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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 논설실장

이달 초 중국 창춘(長春)에 출장을 다녀왔다. 현지에서 국가정보원 출신의 고위 외교관이 전해준 북·중 국경지대의 분위기는 미묘했다. 대표적 사례가 지난 7월 1일 지린성 지안(集安)에서 일어난 대형버스 사고의 뒷이야기다. 당시 연수를 떠난 한국의 지방공무원 10명이 숨지고 16명이 다쳤다. 중국은 지린성 부(副)성장을 현지에 급파해 수습을 총지휘했다.

한국엔 초스피드 유해 운구 돕고
국경지대 마찰로 대북 감정 악화

 “지안에는 큰 병원이 없어요. 중상자들을 4~5시간 떨어진 창춘의 지린(吉林)대 부속병원으로 옮겨야 했어요.” 중국은 즉시 지안의 앰뷸런스 16대를 모두 차출하고 의사·간호사를 1명씩 태웠다. 현지의 조선족 학교까지 긴급 휴교시키며 교사들을 앰뷸런스마다 1명씩 배치했다. 이송 도중 한국 환자와 중국 의료진의 의사소통을 위해서다. 지린대 부속병원에도 창춘의 조선족 교사들을 병실마다 배치해 퇴원 때까지 신경을 썼다.

 “가장 까다로운 게 유가족의 강력한 요청으로 10명의 유해를 본국으로 운구하는 문제였어요. 현지에서 화장해 유골로 옮겼다면 쉬웠겠지만….” 중국은 시신의 해외 운구 때 검역시설을 갖춘 공항을 경유하도록 법에 못 박아 놓았다. 동북 3성에는 지안에서 자동차로 7시간의 먼 거리인 선양(瀋陽)공항이 유일하다. 또 중국에서 비행기로 유해를 옮길 때는 바이러스 유출을 차단하기 위해 반드시 특수한 3중관(3重棺)을 써야 한다. 나무로 관을 짠 뒤 금속관으로 완전 밀폐하고, 그 위에 다시 나무관을 덮는 구조다.

 이런 복잡한 업무를 감당할 수 있는 업체는 베이징의 대형 장례업체 딱 한 곳. 이 회사는 전화를 받자마자 밤새워 3중관을 짠 뒤 20시간 넘게 운구차들을 몰고 현지에 달려왔다. 유해는 사고가 발생한 지 불과 5일 만에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억대의 비용이 들었지만 예상 밖의 초스피드였다. 현지 외교관은 “보름 이상을 각오했다”며 “중국 공산당과 중앙정부가 막후에서 돕지 않았다면 어림없었다”고 했다.

 이에 비해 중국은 북·중 국경지대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북한 측 난동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북한 병사가 옌볜자치주 허룽시에 넘어와 민간인 4명을 살해했고, 3월엔 북한 무장탈영병이 단둥에서 인질극을 벌이다 체포되는 사진이 공개됐다. 4월에도 허룽시로 건너온 북한 탈영병이 주민 3명을 죽였고, 어제는 창바이(長白)현에서 북한 병사가 중국 민간 차량에 총을 쏴 3명이 다쳤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피해가 꼬리를 물면서 중국의 대북 감정은 싸늘히 식고 있다.

 중국의 대응도 신경질적으로 변하는 조짐이다. 현지 소식통에 따르면 올해 초 ‘불법 월경자가 단속에 불응하면 즉시 사살해도 좋다’는 지침이 내려갔다고 한다. 실제로 지난 6월 탈북자 1명이 중국으로 넘어오다 사살됐다. 지난 주말엔 북한의 정찰총국 소속 공작원들이 중국에서 집단 체포됐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물론 국경지대의 마찰이 잦다고 북·중 관계가 근본적으로 흔들린다고 보긴 어렵다. 하지만 예전만 못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창춘에 가보면 북·중 갈등은 단지 빈말이 아닌 분위기다.

 베이징에서도 북·중 관계의 균열은 뚜렷해지고 있다. 시진핑 주석이 ‘신형 대국관계’를 내세우면서 대미 관계가 최우선 과제가 됐다. 그 여파로 한반도 정책에서 과거 김일성대 유학파의 입지가 좁아지고 서방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새로운 엘리트들의 입김이 세지고 있다. 이들은 핵·미사일의 북한을 전략적 자산보다 전략적 부담으로 여기는 쪽이다. 그제 왕이(王毅) 외교부장이 “모두 유엔 결의를 이행해야 한다”며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 시 추가 제재를 강력 시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중국 전승절 기념행사 때 박근혜 대통령이 천안문 성루에 선 장면은 역사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중국과 한반도 평화통일을 심도 있게 논의했다”는 대통령의 발언도 예사롭지 않다. 국내 진보진영은 “통일의 상대는 중국이 아니라 북한”이라며 비난하지만, 창춘에서 바라보면 긴 여운이 남는 발언이다. 중국은 이미 가치공동체가 아니라 이익공동체나 다름없다. 그런 중국의 균형추가 북한에서 한국으로 서서히 옮겨오는 분위기다.

이철호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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