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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신동빈 회장의 한국어

중앙일보 2015.09.22 00:59 종합 41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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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호 논설위원

2010년 서울 G20 정상회담 때 열린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기자회견에서 한국 기자들은 큰 망신을 당했다. 오바마는 한국 기자에게 질문권을 줬지만 죄다 꿀 먹은 벙어리였다. 그러자 중국 기자가 마이크를 빼앗아갔다. 한국 기자들에겐 “자질이 모자라 나라 망신 시켰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하지만 이게 못나서인가. 아닐 거다. 창피당할까 두려웠던 거다. 객쩍은 질문을 해도 그렇지만 더 큰 문제는 영어였으리라. 문법 오류는 물론 서툰 발음이 들통나면 평생 수치가 될 게 뻔했다. 그러니 누가 감히 영어로 물을 수 있었으랴.

 수년 전 EBS에서 신원을 가린 60대 남성의 영어 연설을 내외국인들에게 들려준 적이 있다. 그러자 한국인들은 “발음이 딱딱 끊어져 촌스럽다”고 혹평한 반면 외국인들은 “좋은 문장에 수준 높은 단어”라며 칭찬 일색이었다. 연사의 정체가 공개되자 한국인들은 기겁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었던 까닭이다. 이처럼 외국어에 관한 한 한국인은 내용보다 발음과 유창함에 목을 맨다. 본질보다 겉멋에 치중하는 허례허식의 확장 같다.

 외국에는 자국어에 서툰 명사들이 꽤 있다. 국제정치학계의 석학 헨리 키신저가 그렇다. 14세 때 독일에서 이민 온 그는 78년간 미국에서 살았지만 아직도 영어 발음에 서툴다. 그의 연설만 들은 미국인 중 대부분이 외국인 연사일 거라 확신할 정도다. 수줍은 성격의 키신저가 외톨이로 지낸 탓이다. 나중엔 말투를 고치려 거울 앞에 서서 무척 노력했지만 딱딱한 억양은 그대로였다고 한다.

 하지만 누구도 억양으로 그를 평가하지 않는다. 70년대 미·중 수교를 끌어낸 키신저는 역대 최고의 국무장관으로 꼽힌다. 정작 중요한 건 억양 아닌 말의 내용과 행동이라는 걸 미국인들은 아는 거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최근 일본어 억양으로 곤욕을 치렀다. 발음 탓에 지난달 대국민 사과를 하고도 “그러고도 한국 기업인이냐”는 비난에 시달렸다. 심지어 한 종편은 그의 발언을 “있쓰므니다” 식으로 자막 처리해 조롱 논란을 빚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17일 국회 정무위 국감에서 신 회장의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음이 증명돼 그의 한국어 논란은 잦아들었다. 본질 아닌 외면 중시의 세태가 빚어낸 해프닝이다.

 갈수록 국제화되는 세상이다. 교포 2·3세나 귀화 외국인은 물론 탈북자 등 묘한 억양의 한국어 사용자는 늘 수밖에 없다. 이런 마당에 말투를 트집 잡으면 키신저 같은 외국 출신 인재가 어떻게 발 붙일 수 있겠는가.

남정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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