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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칼럼] 버려지는 대한민국 청춘들

중앙일보 2015.09.22 00:58 종합 41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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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한때 한국은 아기들을 무더기로 버린 나라였다. 전쟁 고아와 미혼모 아기들이 속속 외국으로 송출됐다. 이제는 아기가 귀하다. 대한민국 청춘들이 아이 낳기를 거부했다. 아니 사회로부터 거절당했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3포 세대’는 우리의 빛나는 청춘들이 스스로 만든 서글픈 이름이 아니다. 사회가 작명해 줬다. 그 작명은 청춘의 감옥, 한국의 미래를 가두는 천형이다. 청춘들은 고치 속으로 파고든다. 친교와 내 집 마련은 이미 접었고(5포), 취업과 희망을 접는 중이다(7포).

 대학을 나와도 미래가 불안한 시대에 ‘청춘의 꿈’은 웃기는 얘기, 도서관 고서(古書)에서나 찾을 말이다. 예전에는 졸업생 모셔가는 버스가 학교 앞에 대기했다고 자랑하는 교수들은 이미 퇴직했다. 웬만한 대기업 입사경쟁률이 100대 1을 넘긴 지 오래고, 올 9급 공무원 시험도 50대 1이었다. 대졸 실업자 50만 명, 청년 취업준비생 60만 명 시대에, 청춘의 호기는 소멸됐다. 결혼과 취업관문을 뚫은 청년들도 육아, 재테크, 내 집 마련 급류에 휩쓸려 아우성이다. 1년 전, 격류의 노사정 합의가 그래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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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사회가 내린 특명은 ‘대한민국 청춘을 구출하라’다. 100여 차례의 회의, 물밑 접촉, 기싸움, 결렬을 거듭한 끝에 노사정 대표들이 합의문에 도장을 찍었다. 오랜만에 보는 타협정치였다. 멱살잡이에 공중부양, 욕설로 기억되는 여의도 정치에 비하면 늠름하고 성숙한 풍경이었다. 숨통을 트지 않으면 한국 사회가 질식한다는 위기감을 공유했고, 자식 세대에게도 인간적 존엄성을 유지할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절박한 공감대가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김대환 위원장의 소명의식은 빛났고, 박병원 경총 회장의 유연성과 김동만 한노총 위원장의 끈기가 돋보였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시민사회가 빚은 사회적 대타협이었다.

 그런데, 청춘은 구출되었는가? 버려진 청춘들을 거뒀는가? 필자가 내린 답은 불행히도 ‘아니다’이다. 노동은 챙겼고, 사(使)는 비용부담을 떠안았다. 핵심 뇌관은 여의도 정치로 이관되었다. 청년고용에 가장 중대한 ‘일반해고’와 ‘임금피크제 포함 취업규칙 변경’건을 협의한다고 합의했다. 타협에 무능한 여의도 와류(渦流)에 던져 넣자고 합의한 것이다. 대타협의 정신을 지키라는 국민의 눈초리가 매섭기는 하지만 국회 환노위에 포진한 야당 강경파의 거부권과 민노총의 협박이 드세다. 이 와중에 작년 3조원 적자를 기록한 현대중공업 노조는 파업에 돌입했고, 금호타이어가 분규 중이다. 전 세계 26개 공장 중 매년 임금교섭을 하는 곳은 한국뿐이라고 세르지오 호샤 한국GM 사장이 토로했다.

 왜 ‘청춘 구하기’에 실패했느냐고? 경제학자라면 이렇게 답할 것이다. 신규채용에는 기업의 지불능력이 가장 중요한데, 국회로 이관된 사안을 더해도 그리 변화는 없다고 말이다. 노동시간을 16시간이나 양보했는데 무슨 소리냐고 할 것이다. 실제로는 연장근로 할증료를 50%에서 100%로 올려 비용삭감 효과는 별로이고, 여기에 통상임금 범위를 확대하고 실업급여를 10% 올렸다. 임금피크제가 도입되지 않으면 내년부터 실행될 ‘60세 고용연장’은 폭탄이다. 비록 노동계가 시간을 양보해도 소득보전의 참호에 버티면 ‘청춘 버리기’ 전선엔 아무 이상이 없다. 이런 경제학적 손익계산도 재벌기업과 민노총 노동자들에게는 강 건너 불구경이다.

 사회학적 관점에선 봐줄 게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노노연대가 작동하긴 했다. 비정규직 차별과 고용불안정을 다소 개선했다. 유능한 비정규직들은 임금체계를 호봉형에서 성과형으로 바꾼다는 데 환호할 것이다. 정규직이 이를 수용해 줬는데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라는 숙원사업의 초기단계에 불과하다. 재계의 요구인 일반해고가 입법화되면 비용절감엔 약이지만 고용안정에는 독이다. 노(勞)의 처우 개선과 사(使)의 일반해고가 맞바꿔진 양상인데 이게 ‘청춘 구하기’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따져봐야 한다. 이래저래 딜레마다.

 ‘청춘 구하기’ 방정식은 노동-자본의 협상 프레임만으로는 풀리지 않는다. 한시적이나마 상위소득자의 임금 동결, 정규직의 특권 양보, 노동의 헌신을 신규채용으로 보답하는 사(使)의 성실한 노력, 이 삼박자를 넘어 범사회적 결단이 필요하다. 공장과 기업에 이 난제를 풀라고 압박하는 사회는 이기적이고 비정상적이다. 조직부문 상위 20%, 약 200만 명의 임금양보, 공기업과 정부 공무원들의 임금피크제 동참, 교사와 교수들도 조기퇴직이나 임금피크제를 수용하는 것 등이 시든 청춘에 생기를 불어넣는 감동적 처방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철밥통이 나서야 풀린다. 양보한 자에게 선별적으로 제공하는 정부의 복지정책도 주효할 것이다. 기성세대의 양보와 자제 없이 궁핍한 후속세대를 구하지 못한다. 영국 오페라 스타 폴 포츠가 자비로 한국에 날아와 피곤한 청춘들을 위문 공연했다. 정작 우리들은 뭘 내놓았는가?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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