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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50년 … ‘조·상·제·한·서’ 지고 ‘하·우·국·신’

중앙일보 2015.09.22 00:03 경제 6면 지면보기

# 1897년 한국 최초의 은행인 한성은행이 문을 열자 대구의 상인이 당나귀를 끌고 대출을 요청하러 왔다. 은행원이 고민 끝에 당나귀를 담보로 대출을 해줬다. 담보를 지키기 위해 직원이 매일 당나귀에게 먹이를 줬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이 한성은행은 1945년 동일은행과 함께 조흥은행에 합병됐고, 조흥은행은 신한은행에 합병(2006년)된다. 1982년 태어난 신한은행은 동화은행(98년), 충북은행(99년), 강원은행(99년)을 잇따라 합병하며 몸집을 키웠다. 지점 3곳에서 출발한 신한은행은 올해 상반기 790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내는 ‘메가 뱅크’로 성장했다.

조흥·상업·제일 등 5개 은행
예수금 80% 차지하기도 했지만 외환위기 겪으며 잇따라 합병돼
몸집 키운 국민·우리·신한·하나 … 바뀌는 환경에 사업 다각화로 적응


 # 이달 1일 서울 을지로 외환은행 본점 건물의 간판이 ‘KEB하나은행’으로 바뀌었다.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이 합병돼 ‘KEB하나은행’으로 새롭게 출범했다. KEB하나은행 역시 시작은 미약했다. 한국투자금융이 91년 은행으로 업종을 변경하면서 설립됐다. 설립 첫 해 하나은행의 지점은 단 두 곳뿐이었고, 자본금은 800억원 정도였다. 하지만 하나 은행은 충청은행(98년)·보람은행(99년)과 합병한 데 이어 2002년 정부가 민영화를 추진한 서울은행과 합병하게 된다. 이 합병을 통해 하나은행은 총자산을 84조원으로 늘리면서 몸집을 키웠다. 이어 올해 9월 외환은행과 통합하면서 자산(올 상반기 298조 8000억원) 기준, 국내 1위 은행으로 도약했다. 이로써 국내 은행은 자산 면에서 ‘하·우·국·신(KEB하나·우리·KB국민·신한은행)의 ‘빅4’ 체재로 재편됐다.

 신한은행과 하나은행은 금융권에서 대표적 ‘다윗’으로 꼽힌다. 작은 덩치에서 출발해 인수 합병으로 몸집을 불려 나갔다. 그 과정에서 전통적 강자의 지위를 누리던 ‘골리앗’ 은행들이 스러졌다. 중앙일보 50주년을 맞아 은행의 흥망성쇠와 함께 한 금융 50년, 그 영욕의 역사를 짚어봤다.

 ◆외환위기를 겪으며 넘어진 은행=1990년대 중반까지 우리나라 금융업을 쥐락펴락 하던 은행은 ‘조·상·제·한·서’란 단어 하나로 압축된다. 조흥·상업·제일·한일·서울은행 등 광복 이전에 설립된 5개 은행을 설립연도순으로 나열한 뒤 머리글자를 따서 만든 말이다. 60년대 이후 수출 중심의 한국 경제에서 기업의 뭉칫돈을 주무르며 승승장구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 금융을 받기 전까지 이들 5개 은행이 우리나라 은행 전체 예수금의 80% 이상을 나눠 가졌다. 하지만 외환 위기가 닥치면서 한보·대우·쌍용 등 대기업이 줄도산하자 은행도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부실기업에 대한 불법 여신 문제가 드러나면서 은행장이 구속됐다.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은행권에 불어닥치면서 대대적인 인수합병이 일었다. 99년, 상업은행은 한일은행과 합병해 한빛은행(현 우리은행)이 됐다. 2001년엔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이 합병했다. 2002년엔 서울은행이 하나은행에 합병됐다. 2005년 제일은행은 외국계인 스탠다드차타드은행으로 넘어갔고, 2006년엔 5형제의 ‘맏형’격이었던 조흥은행마저 신생 기업인 신한은행에 넘어갔다. 외환위기를 겪은 지 10년이 채 안돼 조·상·제·한·서가 모두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했다.

 ◆발빠른 변신으로 살아남은 은행=지는 별이 있으면 뜨는 별이 있는 법. 금융 위기 이후 계속된 인수합병으로 금융권은 국민·우리·신한·하나은행이 선두그룹을 차지하게 됐다.

이들은 인수합병으로 몸집을 키우면서도 기업금융에 의존하던 기존 대형은행과는 달리 사업분야를 다각화해 달라진 생태 환경에 빠르게 적응했다.

신한·하나은행은 개인 고객 서비스에 중점을 뒀다. 신한은행은 창립 때부터 기존 은행과의 차별화 전략으로 ‘친절’을 내세웠다. 은행원이 시장상인의 동전교환을 위해 ‘리테일 서비스 카트’를 끌고 다녀 “신한은행이 은행 망신 다 시킨다”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신한은행의 이런 철학은 국내 최초의 무인 점포와 인터넷뱅킹 서비스 개발 등으로 이어졌다. KEB하나은행 역시 95년 은행권 최초로 PB제도를 도입해 개인자산관리 서비스를 선도했고, 99년에는 인공위성을 통한 찾아가는 금융서비스를 시작했다. KB국민은행은 IB분야에서 지속적인 성과를 냈다. 발전소·도로·철도 등 사회간접자본 분야에서 투자자를 유치하고 금융약정을 체결했다. 우리은행은 리스크 관리와 선진 경영 시스템 개발에 방점을 뒀다. 신용리스크관리시스템을 개발하고 성과급제를 도입했다. 2002년엔 금융권 최초로 BPR이라는 선진금융 경영 인프라를 구축했다. 또 은행권 최초로 모바일 전문 ‘위비뱅크’ 를 선보이는 등 핀테크 분야에서도 강점을 띄고 있다.

 ◆‘리딩 뱅크’ 경쟁 가속화=덩치 면에서 다른 은행에 밀리던 KEB하나은행이 외환은행과의 합병으로 한달음에 자산규모 1위로 부상하면서 다른 은행과 ‘리딩뱅크’ 자리를 둘러싼 경쟁이 본격화됐다.

당장 10월부터 시행되는 계좌이동제는 4대 은행의 자존심을 건 승부처가 될 전망이다. 클릭 몇 번만으로 주거래 은행을 바꿀 수 있는 만큼 기존 고객 지키기와 신규고객 확보가 관건이다. 연내 인가될 인터넷전문은행 역시 금융권 생태계에 어떤 파장을 몰고 올 지 모른다. ‘메기’의 등장으로 인해 그동안 대형은행으로서의 강점을 누리며 높은 예대마진 수수료 수익에 안주했던 은행권은 또 한 번의 혁신의 과제를 안게 됐다.

김경진 기자 kjin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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