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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오디세이 릴레이 기고] (20) 동맹을 넘어 협력과 통합으로 나가자

중앙일보 2015.09.18 00:44 종합 33면 지면보기
문정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압록강과 두만강 1200㎞ 길 따라 ‘밖에서 보는 한반도’.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각축을 벌이는 현장으로서의 한반도는 허구가 아니었다. 스킬라와 차리브디스라는 두 개의 난관을 넘어야 이타카로 돌아올 수 있었던 신화 속 오디세이처럼, 우리도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거인 사이에서 현명하게 길을 찾아야만 평화와 번영의 통일 한반도를 맞이할 수 있다는 것. 지린성 퉁화(通化)에서 백두산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이번 오디세이에 참석한 인사들과 나눈 대화와 교감의 주제였다. 달리는 차 안을 현장 삼아 열린 강좌에서 필자는 이들에게 한반도의 미래와 관련한 다섯 개 선택지를 주고 하나를 택하도록 했다. 결과는 참으로 놀라웠다.

 첫 번째 선택지로 대중 견제와 한·미 동맹 강화론을 제시했다. 중국의 부상은 그 의도와 관계없이 한반도의 미래에 커다란 위협으로 작용할 수 있으므로 미국과 동맹을 강화해 중국에 대한 견제에 나서야 한다는 시각이다. 복거일 작가 등이 지속적으로 주장해온 이 같은 논지의 핵심은 중국의 그림자가 한반도에 드리울 때 한국은 과거 소련의 주변부로 전락한 핀란드의 운명을 피할 수 없다는 전제를 담고 있다. 이른바 ‘한반도의 핀란드화 현상’이 찾아올 수 있기 때문에 미국을 포함한 우방들과 공동전선을 구축하고 중국에 대해 견제와 균형의 자세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중국 편승론이다. 멀지 않은 장래에 중국이 지역 패권국으로 등장할 것이므로, 저물어가는 패권국 미국보다는 떠오르는 중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게 국익 차원에서 더 바람직하다는 주장이다. 여기에는 병자호란의 역사적 경험처럼 세력전이의 결정적 순간마다 벌어졌던 잘못된 선택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역사인식이 깔려 있다. 지리적 위치 때문에 중국과 척을 지고는 살 수 없다는 지정학적 운명론도 그 저변에 흐른다.
 
백두산으로 가는 버스 안, 문정인 교수가 한반도의 미래와 관련해 다섯 개의 선택지를 주고 질문을 던지자 평화 오디세이 참가자들이 손을 들어 답하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세 번째, ‘홀로 서기’ 대안이다. 대국 간섭을 최소화하고 우리의 독자적 위상을 모색하는 방안이다. 두 가지 전략이 있을 수 있다. 하나는 핵무기를 보유한 중간세력 국가로 전환해 독자적 군사행보를 취하는 적극적 전략이고, 다른 하나는 스위스처럼 영세 중립국을 선언한 뒤 모든 국가와 선린 우호 관계를 유지하는 소극적 전략이다. 두 가지 전략 모두 한·미 동맹의 종언과 한반도 통일을 전제로 한다.

 네 번째로 현상유지론이 있다. 중국과는 경제 관계를 중시하고 미국과는 군사동맹을 계속 유지하는 이른바 안미경중(安美經中) 구상이다. “돈은 중국에서 벌고 연애는 미국과 한다”는 중국 측 질시를 면하기 어렵고 미국으로부터도 ‘중국 경사론’이라는 비판을 받을 공산이 크지만, 탁월한 외교력을 가진 지도자라면 적극 외교를 통해 미국과 중국을 동시에 아우르면서 우리의 국익을 극대화시켜 나갈 수 있다고 보는 시각이다.

 마지막으로 동맹을 넘어 협력과 통합의 새로운 지역 질서를 만들어 나가는 대안을 제시했다. 단기적으로는 한·미 동맹을 유지하되 중장기적으로는 북한을 포함한 주변 모든 국가와 선린, 우호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이 지역에 하나의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을 한국이 주도한다는 구상이다. 경제적으로는 한·중·일 3국 정상회의에서 동북아 자유무역지대(FTA)를 계속 추진해 협력과 통합의 경제 질서를 만들고, 안보 분야에서는 6자회담 틀 안에서 동북아 다자안보협력 질서를 만들어 나가는 방안이 여기에 속한다. 궁극적으로 한·미 동맹을 넘어 유럽연합(EU)과 유사한 지역 공동체를 동북아에 구축하자는 것이다.

 버스 안에 있던 ‘평화 오디세이’ 참가자 28명 중 압도적 다수인 20여 명이 다섯 번째 시나리오인 공동체 질서를 택했다. 대중 견제를 위해 한·미 동맹 강화를 선호하는 참가자는 2명에 불과했고, 중국 편승론이나 홀로 서기, 현상유지론을 지지하는 참가자는 하나도 없었다.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이번 참가자들의 이념적 스펙트럼을 감안할 때 상당히 신선한 결과였다.

 감히 자평하자면, 이번 평화 오디세이 참가자들이 그만큼 상식과 순리의 바탕 위에서 한반도의 미래를 조망하고 있었다는 뜻이 아닐까. 편 가름의 외교가 아니라 협력과 통합의 새로운 질서에서 우리의 미래를 찾고 있다는 건 고무적인 일이라고 믿는다.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통합의 지역질서를 만드는 데 우리가 앞장선다면, 중국을 위협으로 간주할 필요도 없고 따라서 미국과의 관계를 희생할 필요도 없다. 역내 모든 국가와 안보경제 공동체를 만들어 나간다는 꿈이야말로 한반도와 동북아의 공동 번영을 구축하는 최선의 윈-윈 전략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다. 그 꿈을 몸으로 느끼고 함께 나눌 기회였다는 점에서 이번 평화 오디세이는 큰 의미를 가진다 하겠다. 아무쪼록 새로운 미래를 향한 비전과 자신감이 백두산행 버스 속의 담론을 넘어 모든 이들에게 흩뿌려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문정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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