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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아파트 주민의 성숙한 시민성이 세상 바꾼다

중앙일보 2015.09.18 00:42 종합 34면 지면보기
아파트 주민과 경비원은 어떻게 상생할 수 있는가. 이 문제라면 이젠 서울 성북구에 가서 물어보면 될 것 같다. 지난해 11월 성북구 석관동 두산아파트가 공동사용 공간에 LED 전구 교체 등으로 아낀 관리비를 경비원 고용안정과 임금인상으로 사용하기로 결의하며 화제를 모았다. 아파트 경비원에 대한 최저임금 100% 시행법 적용을 앞두고 전국 아파트들이 경비원 인원감축 논의에 들어간 시점에 나온 결의였다. 이후 고용안정을 결의한 아파트는 전국에서 드문드문 나타났다. 한데 성북구는 두산아파트의 사례가 구 전체로 확산되며 많은 아파트가 동참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상월곡동 동아에코빌은 또 한 번의 진화를 주도했다. 이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에선 7월부터 아파트와의 모든 도급계약서에서 ‘갑을’ 표현을 없애고 ‘동행(同幸)’으로 바꿨다. 상하 관계를 드러내 갑질 논란을 일으키는 갑을 대신 동과 행으로 바꾸어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상생의 개념을 도입하자는 데 입주자들이 뜻을 모은 것이다. 이 아파트는 새로운 상생 문화도 실천하고 있다. 경비원과 미화원 휴게실에 에어컨을 설치하는 등 아파트 내 환경개선뿐 아니라 불매운동 논란까지 빚어졌던 비싼 인근 상가와도 불매운동 대신 협력 방안을 만들고, 인근 단독주택 주민을 위한 모임 장소 제공 등 마을공동체 회복운동으로 확대하고 있다.



 성북구의 특징은 이 같은 새로운 실험 혹은 운동들이 빠르게 공유되면서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성북구 관계자는 “마을의 사례들을 구청이 수집해 입주자대표 단체 카톡방으로 보내고, 주택관리과 게시판에 공고하는 등 정보 유통창구 같은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동아에코빌의 ‘동행계약서’를 본받아 앞으로 성북구 계약서에도 동행을 활용하기로 하는 등 주민들의 활동에 지자체가 빠르게 호응한다. 실제로 두산아파트의 사례는 입주자대표들이 모여 층간소음 방지법 등 공동주택에서 사는 법을 익히는 ‘공동주택아카데미’를 통해 서로 정보를 나누고 방법을 알려주면서 구 전체로 확산됐다. 성북구 관계자는 “구 직원들이 ‘뛰는 구청 위에 나는 주민들’이라고 말할 정도로 주민들 간 소통과 창의적 문제 해결 능력이 뛰어나다”고 말했다.



 지난해 서울 압구정동 한 아파트 경비원이 주민 갑질에 비관해 분신 사망하고, 아파트 경비원에 대한 최저임금 100% 시행법이 발효되면서 전국의 많은 아파트가 경비원 인원을 감축했거나 할 예정임을 밝혔다. 그래서 경비원 25만 명 중 4만여 명이 직장을 잃었고, 도처에서 많은 분쟁이 일어나고 있다. 최근엔 서울 청담동 아파트 주민의 경비원에 대한 갑질이 알려지며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등 주민과 경비원의 상생 문제는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성북구 사례는 관 주도가 아닌 아파트 주민들의 자생적 상생노력을 통해 갈등과 탐욕을 넘어 타인을 배려하고 행복하게 사는 마을공동체를 만드는 길이 있음을 보여준다. 성북구의 변화는 더불어 사는 성숙한 시민성이 세상을 바꿔놓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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