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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Talk Talk] 페이스북, 너는 슬픔을 아느냐

중앙일보 2015.09.18 00:18 경제 8면 지면보기
"Good Bye." [터미네이터2]




심서현
디지털콘텐트부문 기자
“잘 있거라(Good bye).”

 사이보그 T-800(아놀드 슈워제네거)이 용광로 속으로 들어가며 들어올린 엄지손가락, ‘터미네이터2’(1991)의 마지막 장면에 눈물 콧물을 쏟을 때만 해도 정말 몰랐습니다. 그 엄지에 울었던 우리가 20년 후 심드렁하게 하루에도 수십 번씩 ‘엄지 척(like)’을 눌러대고 있을 줄은 말입니다.



페이스북 ‘좋아요’가 일상이 되면서 ‘최고’를 뜻하는 신체 언어 엄지의 의미는 퇴색됐습니다. 기껏해야 ‘적당한 동조’일까요. SNS에서 진지할수록 허무해지는 이유죠. 희노애락·칠정오욕, 온갖 진심을 담아 글을 썼는데 반응은 ‘엄지 척’. 과연 뭐가 얼마나 좋다는 건가요.

반응하는 쪽도 난감합니다. 시리아 난민 아기 아일란 쿠르디의 시신 사진에 ‘좋아요’를 누르면서 ‘이게 무슨 짓인가’ 싶잖아요. 간혹 페이스북에서 부고를 보면 몸둘 바를 모르겠어요.



이건 페이스북에게 심각한 위기입니다. 사람들이 ‘이거 현실과 다르네’ 느끼는 순간, SNS는 힘을 잃거든요. 진짜도 아닌 세계에 무엇하러 공들여 글이며 사진을 올리겠어요. 페이스북이 “슬픔을 나누고 싶어하는 이용자들의 요구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며 ‘좋아요’ 버튼 외에 다른 선택지 도입을 고민하는 건 이 때문입니다.

슬픔과 분노, 공포 같은 부정적인 걸 다 외면한 세계는 의외로 허약합니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2015)에서도 기쁨·슬픔·분노·까칠·두려움 5가지 감정 중 기쁨이 최고일 것 같지만 결국 사춘기 소녀 라일리를 구하는 건 슬픔이었죠.



재빠른 '기쁨'과 느려터진 '슬픔' [인사이드 아웃]


 문제는 ‘슬픔’이 버튼 한 번 눌러서 전해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슬픔은 언제나 시간이 걸려요. 바쁜 걸음을 멈추고 천천히 한숨을 쉬고 조용히 응시해야 합니다. ‘인사이드 아웃’에서도 기쁨은 잽싸지만 슬픔은 느려터졌지요. 힘들어하는 이 옆에 주저앉아 느릿느릿 받아주는 게 슬픔이 가진 유일한, 그러나 강력한 힘이었습니다.



"I know now why you cry." [터미네이터 2]


 ‘터미네이터2’ 마지막으로 돌아갑니다. T-800은 작별을 슬퍼하는 소년의 눈물을 닦아줍니다. “난 이제 네가 왜 우는지 알아.” 사이보그가 슬픔을 아는 몸이 되었을 때 이 장면은 영화의 고전이 되었습니다. 나의 슬픔을 아는 자를 우리는 잊지 못합니다.

아직은 기쁨밖에 모르는 페이스북이 슬픔과 좌절과 분노까지 담는 날이 올까요. 그렇다면 그 세상은 소통천국의 유토피아일까요, 매트릭스의 디스토피아일까요.



심서현 디지털콘텐트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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