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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기술 작년만 111건 새어 나가 … 연 50조 피해

중앙일보 2015.09.18 00:04 경제 3면 지면보기
지난해 2월 현대자동차 협력업체 직원인 조모(29)씨가 중국 북경기차의 신차 ‘C51E’의 개발 프로젝트를 맡은 D사에 파견 근무를 할 때였다. 직장 상사로부터 “현대차의 설계 도면 등을 D사 서버에 올려 놓을테니 내려 받으라”는 은밀한 지시를 받았다. 조씨는 현대차 싼타페와 기아차 K7·프라이드 등의 범퍼 설계 도면 등 80여건을 내려받아 중국 신차 개발에 활용했다. 중국 D사에 파견나온 또 다른 협력업체 직원 김모(34)씨도 국내 협력업체 직원들을 통해 쏘렌토, I20, K5, 스포티지, 모하비 등의 최신 차량의 설계 도면 등을 빼돌렸다.


스마트폰·SNS 이용 늘어나는 범죄
기업들 국내총생산의 3% 날린 셈
업체들 주가 하락 우려 신고 꺼려
전 직원이 빼돌린 기술로 사업도
중국에 현대차 기밀 준 12명 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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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2부(부장 김영기)는 16일 현대차의 신차 설계도면 등 핵심 기밀을 빼돌린 혐의(영업기밀누설)로 조씨와 김씨 등 12명을 재판에 넘겼다고 밝혔다. 산업기밀 유출 피해는 중소기업이 더 심각하다. 국내 텅스텐 초경합금 내마모 분야 1위업체인 신생공업은 2011년 434억에 이르렀던 매출이 지난해 310억원으로 29% 줄었다. 이 회사의 전직 임원이던 A씨가 퇴사하면서 경쟁업체인 K사를 세워 신생공업과 유사한 제품을 생산했기 때문이다. 검찰 조사 결과 K사는 당시 B씨 등 신생공업 핵심 인력 30여명을 채용하는 과정에서 약 4000개의 금형설계도면 파일도 빼내 갔다고 한다. 이를 통해 K사는 설립 4개월 만에 유사 제품을 생산, 2012년 57억원, 지난해 102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결국 A씨 등은 업무상배임 등으로 기소됐다. 하지만 신생공업 측은 “검찰이 ‘평소 영업기밀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영업비밀유출 혐의를 적용하지 않았다”며 법원에 재정신청을 낸 상태다.



 스마트폰과 이동식 저장장치(USB),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손쉽게 복제·전송이 가능해지면서 기업의 생명인 산업기밀 유출 피해가 급증하고 있다. 경찰이 적발한 산업기술·비밀 유출 사건만 2010년 40건에서 지난해 111건으로 세 배 가량으로 늘었다. 해외로 기술을 빼돌리는 산업스파이 범죄도 급증해 국가정보원은 최근 5년 229건을 적발했다. 핵심기술 유출로 기업이 입은 피해 규모만 연평균 국내총생산의 3% 수준인 50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지난 3일 자신이 다니던 회사의 카메라 렌즈제작 기술을 빼돌려 신제품을 제작한 뒤 해외에 팔려한 혐의(부정경쟁방지법 위반 등)로 김모(41)씨를 구속하고 정모(44)씨 등 7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이들은 2013년 3월부터 지난 2월까지 카메라 렌즈 제조업체 B사에서 설계도면 등 278건의 영업비밀을 빼돌린 뒤 경남 창원에 제조공장까지 세운 것으로 조사됐다.



 기술유출 범죄는 해킹 등의 수법으로 은밀하게 진행돼 수사가 쉽지 않다. 피해자인 기업 측도 주가하락 등의 2차 피해를 우려해 신고를 꺼리는 것도 문제다. 김동극 서울지방경찰청 산업기술유출수사팀장은 “중소기업은 대기업처럼 보안전담팀을 만들거나 보안시설을 갖출 수 없는 상황이어서 영업비밀 보호 노력을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비밀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김 팀장은 또 “범인이 범행에 사용한 디지털 자료를 지워버리면 복구하기 어렵다”면서 “경찰 등 관련 기관에 해당 사실을 알리는 등 신속하게 협조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김민배 한국산업보안연구학회장은 “영업비밀 유출로 얻게 될 이익이 처벌 가능성에 비해 훨씬 더 크기 때문에 산업기술 유출이 끊이지 않고 있다”며 “전문수사인력 양성 뿐 아니라 관련 법령을 실효성 있게 개정하는 노력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서복현·채승기 기자 sphjtb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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