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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 펑퍼짐하면 정육면체 돼 … 몸에 붙게 입어야 날씬하죠

중앙일보 2015.09.18 00:01 Week& 6면 지면보기
요즘 신사 정장은 위기에 직면해 있다. 경기 불황이 길어진 데다 비즈니스 캐주얼을 권장하는 일터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격식보다 개성이나 실용을 중시하는 라이프 스타일도 한몫했다. 금융처럼 수트가 필수인 업종은 많지 않아졌고, 창업 열풍을 타고 실리콘밸리 스타일의 ‘청바지에 티셔츠’도 출근복장으로 인정받게 됐다. 소비 성향이 바뀌면서 정통 수트의 입지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이 같은 환경 변화를 남성복 디자이너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살아남은 기업은 어떻게 진화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트는 여전히 매력적일 수 있을까. 81년 역사를 가진 이탈리아 명품 남성 브랜드 까날리의 안드레아 폼필리오(42) 수석 디자이너에게 물었다. 그는 지난 3일 까날리 국내 론칭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했다.


이탈리아 남성복 ‘까날리’ 수석 디자이너 폼필리오

이탈리아 남성 브랜드 까날리의 안드레아 폼필리오 수석 디자이너는 클래식 수트에 젊은 감각을 불어넣었다는 평을 듣는다.




다부진 체격의 안드레아 폼필리오는 하늘색과 흰색 체크 무늬 수트를 입고 나타났다. 무늬가 제법 큰, 화려한 디자인을 멋스럽게 소화해냈다. 구름 한 점 없이 푸른 날 오후,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서울 쉐라톤 워커힐 애스톤하우스와 잘 어울리는 차림이었다. 그는 옷 잘 입는 디자이너로 꼽힌다. 키가 크지도, 날씬하지도 않은 40대 남자의 패션 비법이 궁금했다.





-옷을 잘 입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강한 기질을 가져야 한다. 체격보다 중요한 게 성격이다. 일부러 크게 입는 오버사이즈 패션을 예로 들어보자. 강인한 기질이나 사고방식의 소유자라면 멋있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광대가 따로 없다. 보다시피 나는 늘씬하지 않지만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한다.”





-몸에 걸치지만 실은 마음으로 입는다는 뜻인가.



"이탈리아 속담에 ‘옷이 수도자를 만들지 않는다(L‘abito non fa il monaco)’는 말이 있다. 정신과 태도가 모든 걸 결정하지, 겉으로는 판단할 수 없다는 의미다. 까날리가 한국에 데뷔하는 날이고 날씨도 쾌청해 기분이 좋아서 큼직한 체크무늬를 골랐다. 옷은 개성과 감정을 표현하는 장치다. 옷 입기의 즐거움은 거기에 있다.”





-수트가 점점 외면당하고 있는데.



“까날리는 클래식한 수트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개성 있고 편안하게 입을 수 있는 남성복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캐주얼 비중을 35%로 늘렸다. 정통 수트도 쉽고 재미있게 접근할 수 있게 했다. 재킷과 팬츠를 따로, 다른 것과 섞어서, 새롭게 입는 방식을 제안했다. 포멀과 캐주얼을 잘 섞으면 트렌디하면서도 우아할 수 있다. 예컨대 수트에 데님 셔츠와 타이를 매치하고 스니커즈를 신으면 신경 쓰지 않은 듯 멋스럽고 편하다. 수트는 남성의 아름다움을 뽐내게 해주는 멋진 옷이다.”





-그러려면 남자들이 패션 공부를 많이 해야할 텐데.



“지난 10년간 남자들의 사고방식은 놀라울 정도로 변했다. 변화 속도는 여성보다도 더 빠른 것 같다. 시중에 나와있는 남성 잡지가 얼마나 다양한가. 멋진 옷, 자동차, 헬스클럽, 뷰티에 관한 정보를 줄줄 꿰고 있는 남자도 많다.”





-좋은 디자인이란 뭔가.



“사람마다 좋다고 느끼는 게 다르다. 누구는 좋아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그저 그렇고 또 다른 사람은 싫어할 수 있는 게 패션이다. 예술 작품과 비슷하다. 개개인의 느낌이고 감성이다. 패션에서 무엇이 좋고 나쁜지 말하기는 어렵다. 각자의 창의성을 드러내는 게 패션이다. ‘이런 모습의 남자들이 거리를 활보했으면 좋겠다’라는 상상을 하며 디자인을 한다. 모두가 내 고객이 되어달라고 설득하지 않는다.”





-무엇에 초점을 두는가.



“디테일이다. 전체적인 비율, 소맷동, 바짓단, 단추, 스티치 같은 디테일에 신경을 많이 쓴다. 재킷 길이를 2㎝만 짧게 재단해도 비율이 완전히 달라진다. 조금씩만 변화를 줘도 한데 모아놓으면 강렬한 변화를 만들어내는 게 디테일의 힘이다. 디테일이 모여 까날리를 만든다.”





-몸에 꼭 맞는 이탈리안 스타일이 한국에서도 통할까.



“까날리는 ‘꽉 끼다(tight)’보다는 ‘몸에 붙는다(attach)’는 표현이 어울린다. 사실 옷은 몸에 밀착되게 입어야 더 날씬해 보인다. 키가 크지 않은데 옷이 펑퍼짐하면 ‘정육면체’가 된다. 슬림하게 입으면 더 길어 보인다. 나는 개인적으로 곧게 뻗은 ‘스트레이트’ 스타일로 체형을 가린다.”





-경쟁 브랜드는 세계에 650여 개의 부티크를 뒀는데 까날리는 250개뿐이다.



“단독 매장 개수보다는 그 안에 어떤 창의적인 스토리를 담아낼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지금은 매장이 아니더라도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시대다. ‘안드레아 폼필리오’라는 개인 브랜드도 운영하는데, 서울에 독립 매장 한 곳 없지만 10꼬르소꼬모·분더샵 같은 멀티 브랜드 매장에서 반응이 좋다고 한다.”





-모든 제품을 이탈리아에서 만드나.



“재킷·팬츠는 물론 넥타이·셔츠·양말까지 전 제품을 100% 이탈리아에서만 만든다. 고객들이 수트 한 벌에 수백만 원을 지불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수십 년 경력의 장인들이 손으로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한다.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중에서도 소품(小品)은 제조 원가가 싼 나라에서 만들어오는 경우가 꽤 된다. 소탐대실임을 깨닫고 나면 그들도 다시 이탈리아로 돌아오지 않을까. 패션은 사람이고 에너지다. 손에서 나오는 에너지가 전달되면 옷은 훨씬 아름다워진다.”





-패션 중심지인 밀라노·뉴욕·파리 세 곳에서 모두 일한 것은 계획이었나.



“밀라노에 있는 마랑고니 패션스쿨을 졸업하고 바로 프라다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러다 영어를 배워야 겠다고 생각했다. 뉴욕으로 가서 캘빈클라인에서 일했다. 어느 날 프랑스의 입생로랑에서 제안이 왔다. 늘 꿈꾸던 직장이었기에 파리로 날아갔다. 진심으로 원하면 이뤄진다. 모든 정신과 에너지를 간절하게 모아 그쪽 방향으로 보내면 긍정적인 일이 일어난다고 믿는다.”





-언제부터 디자이너를 꿈꿨나.



"여덟 살 때다. 어른들이 ‘커서 뭐가 될래’라고 물으면 두 가지를 떠올렸다. 서커스 단원 아니면 패션 디자이너. 서커스에 들어가면 여행을 많이 다닐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할머니가 양장점을 운영했는데, 거기서 살다시피 했다. 옷 속에서 놀다 보니 패션에 더 끌렸다. 서커스에 재능이 있는 몸도 아니었다. (웃음) 어떤 면에서 패션은 서커스이기도 하다.”





-올가을 컬렉션은 1950년대의 밀라노에서 영감을 얻었는데.



“당시 밀라노는 남자의 아름다움이 정점에 있을 때다. 낙관과 활력의 도시이자 대담하고 새로운 디자인과 전통이 공존하는 곳이었다. 나는 할아버지 두 분의 모습에서 영감을 얻는다. 외할아버지는 클래식 수트에 컨버터블 자동차를 타고다니는, 동네에서 가장 우아하고 품위있는 플레이보이였다. 육군 장교였던 친할아버지는 늘 큰 금장 버튼이 달린, 흠잡을 데 없는 군복 차림이었다.”





-서울은 어땠나.



"도산공원 앞과 청담동 일대를 둘러봤는데 흥미로웠다. 거리에 클래식 수트 차림의 우아한 남자들과 젊고 유행에 민감한 젊은이들이 두루 많은 게 인상적이었다. 숯불구이 한우는 환상적이었다.











맵시 있는 수트 맞추는 법





이탈리아 명품 남성 브랜드에는 ‘수미주라(su misura)’ 서비스가 있다. 이탈리아어로 ‘치수를 맞추다’라는 뜻. 수트 스타일 중 하나를 선택한 뒤 몸에 맞게 치수를 조정하는 반맞춤 정장이다. 까날리는 총 9개 스타일을 보유하고 있는데 그 중 아시아인 체형에 맞는 3개 유형을 국내에 들여왔다. 수미주라 장인인 크리스티안 소멜라가 맵시 있는 수트 맞추는 법을 소개했다.



재킷 길이는 엉덩이에서 가장 볼록한 부분까지 내려오는 게 표준이다. 이보다 짧게 입는 게 트렌드이지만 자칫하면 품위를 잃는다. 소매 길이는 보통 엄지손가락 끝에서 11㎝ 위로 잡는다. 재킷 소매 밖으로 셔츠 소매가 1㎝쯤 보이게 입는다. 바지 길이는 구두 뒤꿈치를 2㎝쯤 덮는 걸 권한다. 유행에 맞추려면 더 짧게, 0.5~1㎝쯤 내려오게 한다. 원단은 TPO(시간·장소·상황)를 고려해 선택한다. 이탈리아 비엘라 지역에서 생산된 원단 500여 종류가 구비돼 있다.



다음으로 재킷의 깃(라펠), 앞 단추, 뒷트임(벤트) 디자인을 고른다. 둥근 얼굴은 위로 솟은 형태의 깃으로 보다 날렵한 인상을 줄 수 있다. 길고 마른 얼굴형이라면 넓은 깃이 인상을 부드럽게 한다. 광대뼈가 튀어나온 각진 얼굴은 기본형 깃을 골라야 얼굴 선이 두드러지지 않는다. 몸집이 왜소하면 넓고 큰 깃을, 살집이 있으면 얇은 깃을 선택해 체형을 보완한다. ‘투 버튼’은 클래식하고, ‘쓰리 버튼’은 젊게 보일 수 있다. 뒷트임은 없는 것이 가장 격식 있다. 턱시도에 많이 쓰인다. 가운데가 트인 것(센터 벤트), 양쪽이 트인 것(사이드 벤트) 순으로 캐주얼해진다. 요즘은 사이드 벤트가 클래식 정장에도 쓰인다. 단추는 뿔단추가 기본이지만 원단에 맞는 색상이 들어간 진주 조개 단추를 사용하면 고급스럽다.



모양과 벌어진 각도에 따라 13종류로 나뉜다. 칼라 사이 각이 넓은 ‘와이드 스프레드’ 칼라가 유행이다.




셔츠에 새길 이니셜의 글꼴과 색상을 선택하고 위치를 결정한다.




셔츠는 재킷 원단 안에 들어있는 색과 맞추면 세련돼 보인다. 소맷동(커프스)은 끝이 둥글게 처리된 라운드 커프스가 움직이기 편하다. 셔츠 칼라는 모양과 벌어진 각도에 따라 13종류로 나뉜다. 칼라 사이 각이 넓은 ‘와이드 스프레드’ 칼라가 유행이다. 셔츠에 새길 이니셜의 글꼴과 색상을 선택하고 위치를 결정한다. 국내에서는 대부분 소매에 새기지만 이탈리아에서는 몸통을 선호한다. 위에서부터 5번째 단추 옆에 새긴다.





박현영 기자, 김성훈 인턴기자





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사진=까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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