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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우리나라 공직자들의 시대적 사명

중앙일보 2015.09.16 01:16 종합 35면 지면보기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
지난 반세기 동안에 우리나라는 선진국들과 경쟁할 수 있는 산업국가를 만들었고 정치민주화를 통해 자유와 평등이 상당 수준 보장되는 주권재민의 국가를 만들었다.



 그러나 우리 후손들에게 자랑스럽게 물려줄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건너야 할 강과 넘어야 할 산이 많은 시대에 살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우리보다 앞선 기술선진국인 일본과 인구 규모가 우리의 30배 가까이 되는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인 중국에서 밀려오는 경제적 파고를 넘을 수 있는 유연하고 효율적인 경제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남북으로 분단된 나라의 경제장벽을 허물어 가면서 점차 정치적으로 통일된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중·일 같은 세계 3대 강대국들과 지혜로운 외교관계를 발전시켜 나가야 하고, 북한의 군사적 도발을 억지할 국방력도 갖춰야 한다.



 이러한 통일을 향한 외교안보 능력과 경쟁력이 튼튼한 경제구조를 만들어 나가려면 우리 내부의 소득계층 간, 노사 간, 그리고 지역 간 고질적 갈등을 해소하는 사회적 통합을 추구해야 하며, 여기에는 많은 재정 부담이 수반되기 때문에 국가재정의 건전성을 지키려는 노력은 배가돼야 한다.



 누가 이러한 시대적 과제를 짊어지고 해결해 나갈 견인차가 될 것인가?



 정치인들은 집권을 목표로 하는 집단의 속성 때문에 포퓰리즘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기업인들은 치열한 글로벌경쟁에서 뒤떨어지면 도태되기 때문에 사업에 전념할 수밖에 없다. 결국 공직자들이 버팀목 역할과 견인차 역할을 감당할 수밖에 없다.



 첫째로 경제관료들은 지구촌 곳곳에서 불어오는 위기 요소에 대응할 만한 안전망을 강화하면서 경쟁질서의 왜곡을 바로잡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지난 반세기 경이적인 경제발전 과정에서 선배들이 보여준 사명의식은 ‘누가 뭐래도 경제문제는 우리들이 책임진다’는 것이었다. 정치인들처럼 포퓰리즘에 휘둘리지 않고 돈 있는 사람들의 유혹을 경계하면서 힘든 길도 마다하지 않는 선비정신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이 시대의 경제관료들도 선배들의 정신적 유산을 이어가기 바란다. 다만 경제관료들은 국가발전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권력을 남용해서는 안 된다. 특히 국세청, 공정위, 금감원 같은 권력기관들은 공정성과 청렴성을 요구하는 국민의 소리에 항상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둘째로 법조계 공직자들은 삼권분립의 헌법정신에 맞게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면서 힘없고 돈 없는 사람들도 보호하는 사회안전망 역할을 해줘야 한다.



 그러나 검찰이 권력을 남용하면 국민은 불안해지고 정부를 불신하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셋째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안전하게 지켜줘야 할 공직자들은 준법성과 청렴성이 특별히 요구된다. 그래야 세월호 사고나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 같은 일이 빈발하지 않을 것이다.



 넷째로 지방공무원들은 선출직 기관장들이 다음 선거를 위해 예산과 행정력을 낭비하는 것을 방관하지 말고 용기 있게 견제하고 사회에 고발해야 한다.



 선출직은 임기가 끝나면 그만이지만 직업공무원은 정년까지 봉사해야 하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소신 있고 능력 있는 지방관리들을 선출직 후보로 발탁하거나 중앙부서로 영전시키는 관행도 필요할 것이다. 공직자들은 정년이 보장되고 퇴직 후 연금혜택도 받기 때문에 국민에게 봉사하고 국가에 헌신해야 할 당연한 의무를 갖고 있다. 공직자들은 스스로도 변화해야 하는 개혁의 객체인 동시에 국가적 개혁과제를 이끌어 나가야 할 주체이기 때문에 정치권과 국민은 이들의 변화를 요구하면서 사명감을 북돋우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



 첫째로 청와대는 장·차관급 인사 외의 내부인사권을 기관장들에게 위임해 조직의 역동성을 살려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4대 개혁이나 공기업 경영혁신의 내실이나 추진 속도를 기대할 수 없다.



 둘째로 총리실에서는 공무원들의 퇴직 후 취업제한제도를 면밀히 재검토해 포괄적 취업제한 대신 권력기관과의 유착을 방지하는 선별적 제한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국가적으로도 유능한 공직 출신들을 민간 분야에서 활용하는 것을 봉쇄해서는 안 될 것이며 공무원들에게 재직 시 청렴성을 요구할 수 있는 안전판도 되기 때문이다.



 셋째로 국회는 공무원들에게 무조건 군림하는 자세를 버려야 한다. 세종시로 이전해 많은 불편을 겪고 있는 공무원들을 위해 각 상임위 활동을 세종시로 대거 분산시키는 방안도 가능할 것이다.



 넷째로 감사원은 각 부처와 공공기관의 창의적 업무를 구속하고 있는 정책감사기능을 재정비하고 대신 불법·비리를 철저히 감시하는 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한 나라가 변화와 개혁을 통해 융성발전하는 시기는 관료시스템이 부패하지 않고 효율적으로 작동할 때였다. 오늘날 이 나라의 미래는 공직사회의 사명감에 달려 있다.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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