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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개혁 찬성 80%’ 국민여론이 타협 이끌었다

중앙일보 2015.09.14 03:27 종합 3면 지면보기
김대환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장이 13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노사정 대타협과 관련한 긴급 브리핑을 하고 있다. 노사정의 이날 대타협은 김 위원장이 업무에 복귀한 지 38일 만에 이뤄졌다. [뉴시스]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위한 13일 노사정 합의는 대한민국 경제의 미래를 위한 선제적 대타협이란 점에서 의의가 크다. 1998년 노사정위원회가 설립된 뒤 그동안의 노사정 타협은 조여오는 외부 환경에 등 떠밀리듯 이뤄졌다. 98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가 덮쳤을 때 대타협이 그랬다. 이때 합의된 게 정리해고(경영상 해고), 근로자 임금인상 자제와 같은 것이다.

노동시장 급변 예고하는 ‘종합판’
금융위기 때와 달리 선제적 합의
임금피크제 실시로 절감된 재원
청년 일자리 늘리는데 쓰기로



 그러나 이번은 다르다. 아무리 돈을 풀어도 돈과 사람이 돌지 않아 경기침체가 장기화될 것으로 우려되는 상황에서 대화가 시작됐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원청과 하청업체, 대기업과 중소기업 근로자의 격차는 날로 커지고, 청년 일자리는 갈수록 줄어드는 판이다. 여기에다 그동안 묵인됐던 세계 최장 근로시간, 제대로 일하지 않아도 해가 바뀌면 자동으로 월급이 오르는 호봉형 임금체계에 대한 문제 인식이 확산됐다. 이런 국내 상황에 대한 고민이 노사정을 대화 테이블에 앉혔고, 진통을 겪었지만 대타협을 일궜다.



 이번 합의에는 무엇보다 국민 여론이 큰 역할을 했다. 이달 초 여론조사기관인 리얼미터 조사에선 국민이 가장 관심을 갖는 정치 현안으로 노동개혁을 첫손에 꼽았다. 여의도연구원 조사에선 10명 중 8명이 노동개혁에 찬성했다. 파업이 잦은 울산에서 실시된 여론조사(울산방송)에선 80%가 넘는 시민이 노동개혁을 지지했다. 여론이 이렇게 흐르자 경영계와 노동계도 발을 뺄 수 없는 처지가 됐다. 대타협이 이뤄지지 않으면 협상 주체들이 개혁대상이 될 판이었다. 일부 정치권의 반(反)개혁 구호는 먹힐 여지가 없었다. 난항을 겪었지만 합의에 이르게 한 힘이었다.



 국민이 노동개혁에 힘을 보탠 건 이번 기회에 일하는 방식이나 정규직 중심의 경직된 고용시장을 확 바꿔보자는 열망 때문이었다. 실제로 이번 합의가 현실화하면 고용시장은 물론 국민 생활이 크게 변할 전망이다. 비정규직 보호나 주5일 근무제와 같은 특정사안에 한정했던 과거 타협안과 달리 노동시장 전반을 건드리는 종합판이어서다.



 예컨대 주당 근로시간이 16시간 줄어든다. 지금은 일반근로 주 40시간, 연장근로 12시간, 휴일근로 16시간 등 일주일에 최대 68시간 일한다. 휴일근로가 연장근로에 포함되면 사실상 휴일근로가 사라지게 돼 근로시간이 주당 52시간으로 준다. 일에 매몰된 근로자가 숨통을 트게 된다는 얘기다. 공장 가동을 멈출 수 없는 기업으로선 줄어드는 근로시간을 신규 인력을 채용해 메울 수밖에 없다. 일자리가 늘어난다는 뜻이다.



  일이 많을 때 집중적으로 일하고, 적을 땐 쉴 수 있는 탄력적 근로시간제도가 확대된다. 집에서든 어디서든 주어진 과제만 수행하면 되는 재량근로도 허용된다. 일과 가정을 모두 챙길 수 있는 선진국형 근로 형태다.



 임금체계 개편은 노동시장에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올 전망이다. 지금의 임금체계는 성과나 능력, 역할과 관계없이 해가 바뀌면 자동으로 일정액씩 월급이 오르는 호봉제다. 신입사원 초봉이 중소기업보다 26%나 많은 대기업 정규직에 유리한 임금체계다. 호봉제 때문에 대기업과 중소기업 근로자 간의 임금격차는 갈수록 벌어진다. 그러나 능력과 역할 중심으로 바뀌면 하청업체 근로자라고 해서 낮은 임금을 받는 사례가 사라진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같은 일을 하면 같은 임금을 받는 동일노동 동일임금 체계가 형성된다. 이렇게 되면 청년들이 굳이 대기업을 선호할 이유가 없어진다. 임금피크제로 정년 60세 의무화에 따른 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단기적으로나마 덜게 된 건 덤이다. 임금피크제 실시로 절감된 재원은 청년 고용을 늘리는데 쓰인다.



김기찬 선임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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