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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노동당, 역사적 노선투쟁 위기”

중앙일보 2015.09.14 02:47 종합 10면 지면보기
블레어
제러미 코빈 등장 이후 영국 노동당이 기존 노선인 ‘제3의 길’을 수정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코빈에게 제3의 길은 ‘바지 입은 대처의 논리’와 다름없다. 그는 “서구식 좌파 논리에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재임 1979~90년)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뒤섞어 놓은 게 제3의 길”이라고 비판해왔다.


민영화·복지축소 ‘제3의 길’
금융위기로 빈부차 커지며 흔들
총선 승리 땐 서방좌파 지형 변화

 BBC 방송은 13일 정치 전문가들의 말을 빌려 “노동당 전체가 역사적인 노선 투쟁에 휘말려들 운명”이라고 했다. 토니 블레어 전 총리가 내세운 제3의 길에 대한 문제 제기가 당내에서 본격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노선 투쟁은 블레어가 ‘신노동당’을 주창하며 제3의 길을 내세운 98년 이후 17년 만이다. 다만 코빈은 분명한 대안을 제시하지 않았다. 그저 반(反)긴축(일부 에너지 기업 등 국유화)을 주장했다.



 가디언은 “대중적인 그의 말속에 들어 있는 싹이 바로 제3의 길 폐기”라고 분석했다. 반긴축 자체가 제3의 길 핵심을 부정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블레어는 신자유주의 논리 가운데 ‘활력 넘치는 경제(작은 정부)’를 받아들였다. 구체적으로 민영화와 복지 축소 등으로 재정 건전성을 달성하면서 민간 부문의 투자를 활성화해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블레어의 제3의 길 공약은 처음엔 지켜지는 듯했다. 하지만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하나 둘씩 약속이 깨졌다. 빈부 격차만 더 벌어졌다. 코빈뿐 아니라 유럽 좌파 진영의 대중이 당내 주류 논리에 반발하고 있다.



 코빈의 노선 투쟁은 녹록지 않다. 블레어는 98년 “나라를 바꾸는 일보다 당을 바꾸는 게 더 어렵다”고 말했다. 이 말이 코빈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수밖에 없다. 코빈이 제3의 길 지지자들을 설득·압박하는 게 쉽지 않아서다. 블레어의 흔적 때문이다. 그는 17년 전 당내 물갈이를 위해 노동조합의 영향력을 축소하는 방식으로 선거 제도를 바꿨다.



 코빈이 블레어의 흔적을 성공적으로 지우고 총선에서 승리한다면 서방 좌파 지형도 바뀔 수 있다. 전통적으로 영국 노동당은 ‘서방 좌파의 카나리아’이기 때문이다. 먼저 세상의 변화를 감지해 받아들였다. 제3의 길의 경우 영국에서 시작돼 서유럽으로 퍼져나갔다.



강남규 기자 dism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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