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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희의 시시각각] 누가 되든 당 대표와 ‘나머지들’

중앙일보 2015.09.14 00:57 종합 34면 지면보기
박승희
정치부장
“맷돌 손잡이가 뭔지 알아요? 어이라고 해요. 맷돌을 돌리다가 손잡이가 빠지면 일을 못하죠? 그걸 ‘어이가 없다’라고 하는 거예요. 내가 지금 그래. 어이가 없네?” 1200만 명이 본 영화, ‘베테랑’ 속 조태오의 명대사 중 하나다.



 재미없는 정치 얘기로 손님을 끌려면 이 정도 도입부는 필요할 것 같다. ‘어이’의 어원이 맷돌 손잡이란 걸 이 영화를 보고 알았다. 정확히는 ‘어처구니’지만.



 제1야당이 시끄럽다. 새정치민주연합의 당 대표가 된 뒤 3월 초 문재인의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은 한국갤럽 조사에서 24%로 1위였다. 지난주 문 대표의 지지율은 정확히 반 토막이다. 12%. 지난 6개월간 제1야당과 문재인에겐 무슨 일이 있었을까.



 지지율 추락의 원인은 분열이다. 한국 정치에서 분열하는 쪽은 졌다. 정치하는 사람들 중 그걸 모르는 이는 없다. 하지만 지금의 야당은, 지금의 여당이나 여당 지지층보다 기억력이 나쁜 것 같다. 새누리당의 유승민 논란은 여당 지지층의 딴딴한 기억력을 보여준다. 유승민의 원내대표 사퇴문은 근래 보기 드문 명문이었다.



 “ 여의도에 오는 길에 지난 16년간 매일 스스로에게 묻던 질문을 또 했습니다. ‘나는 왜 정치를 하는가?’ 진흙에서 연꽃을 피우듯, 아무리 욕을 먹어도 결국 세상을 바꾸는 것은 정치라는 신념 하나로 정치를 해왔습니다.”



 앞에 온건이 붙든 따뜻한이 붙든 유승민은 자타가 인정하는 보수 원리주의자다. 그러나 그는 이 감동적인 사퇴문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보수 진영으로부턴 철저히 외면받았다. 골수 새누리당 지지층은 유승민이란 이름만 등장하면 서슴없이 배신자라는 댓글을 단다. 그 이유를 난 ‘이인제 학습효과’라고 본다. 1997년 대선에서 보수는 질 수 없는 선거를 분열 때문에 졌다. 그리고 10년을 기다려야 했다. 천막당사도 경험했다. 보수 진영의 뇌리에 ‘분열의 DNA는 싹을 키우면 안 된다’가 새겨졌다. 결국 유승민 신드롬을 그 싹이라고 본 거다. 2012년 박근혜 승리의 출발선도 2007년의 경선 승복 연설이다.



 “패배를 인정합니다. 경선 과정의 모든 일들 다 잊고, 하루에 못 잊는다면 며칠 몇 날을 걸려서라도 잊고 다시 열정으로 채워진 마음으로 돌아와 그 열정을 정권 교체에 쏟아 주시길 당부드립니다.” 당시 박근혜를 지지하지 않았던 사람들조차 전율을 느꼈다는 연설이었다.



 반면 야권은. 아·니·다. 2007년 대선 패배 후 기억에 남는 반성문이나 승복 연설을 떠올리기가 어렵다. 야권엔 인물이 많다. 정동영·손학규·안철수·정세균·김한길·천정배·정대철·박주선 등등. 하지만 이들에겐 나쁜 공통점이 있다. 주연을 빛내 주는 조연을 자청하거나 킹보다 킹 메이커를 하겠다는 사람이 없었고, 없다. 제1야당에서 헤게모니 다툼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김한길·안철수가 대표일 때는 ‘나머지들’이, 문재인이 대표가 되자 ‘또 다른 나머지들’이 흔들어 댔다. 대표가 된 사람도 ‘나머지들’을 제대로 끌어안지 않는다. 아생(我生·내가 사는 것)이 늘 먼저다.



 그 욕심 경쟁에 혹시나 하고 눈길을 줬던 중도층이 먼저 떠나고, 그 낯 뜨거움에 부끄러움 많은 지지층이 돌아선다. 새정치연합과 문재인의 지지율은 그렇게 추락했다. 엊그제 모임에서 누가 물었다. “새정치연합은 어떻게 되는 거야. 내년 총선을 앞두고 신당이 나오는 거야?”



  정치인들에게 속지 않으려면 ‘왜’라는 질문을 잊지 말아야 한다. 신당이 생긴다는 건 새로운 정책과 비전, 세력이 존재할 때 의미 있다. 선거를 앞두고 유불리를 따지는 정치인들의 이합집산이라면 그건 신당이 아니라 이당(移黨)이다.



 제1야당의 지금 내홍이 대선 후 따지고, 논쟁했어야 하는 걸 뒤늦게 하는 것이라면 더 치열할 수도 있다. 하다가 영 가는 길이 다르면 분당이든 창당이든 할 수도 있다. 한데 ‘어이가 없는’ 건 이토록 요란하게 싸우는데 지켜보는 눈엔 그 싸움이 그다지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박승희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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