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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야의 길!] 이름값 제대로 하기

중앙일보 2015.09.13 00:01 종합 25면 지면보기
한비야
국제구호전문가
지난 주말, 광주광역시로 특강 가는 길에 ‘완전 내 세상’을 만났다. 광주시 광산구 비아동! 반가웠다. 십수년 전, 세계 일주의 마무리로 땅끝마을에서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국토종단 할 때 가본 곳이다. 아는 사람 한 명 없고 내 땅 한 평 없는 동네가 왜 ‘내 세상’인가? 내 영세명이 비아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외래어 표기법으로 통일되어 ‘비아’로만 쓰지만 예전엔 비야, 삐야, 삐아, 비아를 섞어 썼다. 난 그중 비야라는 이름으로 영세를 받아 한비야가 되었는데 그 후 날 비(飛), 들 야(野)라는 한문 이름으로 개명해서 공식적인 본명으로 쓰고 있다. 개명 전 이름은 어질 인(仁), 순할 순(順) 인순,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가수 인순이와 같은 이름이었다.



 그나저나 내가 한씨니까 망정이니 장씨나 노씨나 변씨였으면 어쩔 뻔했나? 장비야, 노비야, 변비야가 될 뻔했다. 나씨, 단씨, 왕씨였으면 나비야, 단비야, 왕비야로 좀 낫지만 그래도 비야는 한비야가 딱인 것 같다.



 특강시간이 촉박해 지나쳤지만 옛 기억을 더듬어보면 이 동네는 보이는 간판마다 비아로 시작되었다. 비아 천주교회, 비아 초등학교, 비아 생막걸리, 비아 한의원, 비아 흑염소…. 내 이름과 같은 동네가 반갑고 신기해 국토종단 끝나고 비아 초등학교에 내 책 『바람의 딸』 시리즈를 보냈던 기억이 새롭다.



 아무튼 나는 한비야라는 이름 덕을 톡톡히 보고 산다. 발음이 쉬워서 누구든 쉽게 따라 하면서 금방 외운다. 그래서 세계 어느 오지 마을에 가도 한나절만 지나면 동네 사람들 모두가 내 이름을 부르고 다니곤 한다. 비야라는 이름에는 나라마다 다른 뜻도 있다



 “비야, 비야.”



 처음으로 긴급구호를 갔던 아프가니스탄 서부에서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하루 종일 내 이름을 불렀다. 이 지역 언어인 페르시어로 비야는 “여보세요, 빨리 해요, 이리 오세요 등 수십 가지 뜻을 가진, 일상에서 가장 많이 쓰는 단어다. 그래서 현지인들에게 내 이름을 말해줄 때마다 얼마나 재미있어 했는지 모른다. 얼굴이 시뻘개지도록 웃다가 사레까지 들린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다. 하기야 사람 이름이 “여보세요”라니 웃기지 않겠는가. 인도에서 비야는 “내 사랑 자기야”라는 뜻이라 젊은 인도 남자들에게 이름 알려주기가 민망하기도 했다. 이탈리아어로는 길이라는 뜻이고 일본에선 비싼 과일 이름이고 심지어는 비어(맥주)와 발음이 비슷해 웃지 못할 일이 생기기도 한다.



 아프리카에서도 마찬가지. 7년간의 가뭄으로 살인적인 물 부족을 겪는 소말리아 국경지역에 갔을 때다. 내 이름을 말하자마자 동네 사람들이 처음 보는 나를 다투어 껴안으며 뛸 듯이 반가워했다. 알고 보니 여기서 한비야는 커다란 물 항아리라는 뜻이었다. 얼마나 비를 기다렸으면 이름만 들어도 이리 반가울까 안타까웠는데 이게 웬일인가! 그날 밤, 기다리고 기다리던 비가 밤새도록 내렸다. 다음날 아침, 흥건히 고인 물웅덩이를 보면서 마을 사람들이 돌아가며 날 어찌나 꽉 껴안는지 질식사할 뻔했다.



 에티오피아 사람들도 내 이름을 좋아한다. 지방 사투리로 비야는 ‘내 모든 것을 바쳐도 아깝지 않은 이’라는 뜻으로 최고로 인기 있는 여자이름이라는데 실제로 비야라는 이름의 현지 여직원을 여러 명 보았다. 반면 카메룬 사람들은 내 이름을 들으면 미간을 찌푸린다. 30년 독재자인 자기 나라 대통령 폴 비야와 이름이 같아서다. 그래도 그 덕에 내가 만난 카메룬 사람 중에 내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거다.



 이름 덕을 톡톡히 보아서일까. 나는 늘 이름값에 대해 생각한다. 과연 내 이름에 걸맞게 살고 있는가? 내 세례명 ‘비야’는 이탈리아 성녀 이름으로 본뜻은 "무엇이든 정성껏, 열심히 하는”이다. 한문으로 비야(飛野)는 ‘광야를 자유롭게 나는’이기도 하다. 이 멋진 이름대로 최선을 다해 살려고 노력하는 내가 마음에 들 때도 많지만 2% 부족하다고 느낄 때가 더 많다. 좀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용기 내서 한 발짝 더 나가야 했는데, 그런 것쯤은 떨쳐버릴 수 있었는데, 하면서 말이다.



 이런 날 저녁에는 일기를 길게 쓴다. 뭐가 어디부터 잘못 되었나? 어떤 준비가 소홀했는가? 나를 코너에 몰아놓고 들들 볶는다. 이렇게 한바탕 자아비판이 끝나면 언제나 이런 생각이 뒤를 잇는다.



 어떻게 다 잘할 수 있겠냐구? 그거야말로 욕심이고 주제넘은 생각이고, 이름값이라는 미명하에 세상의 인정을 바라는 거지. 그러니 난 스스로의 잣대에만 충실하자. 그러면 되는 거다.



 지금 나는 한 손에는 표리동동(表裏同同), 한 손에는 언행일치라는 잣대를 들고 있다. 무슨 일을 하든, 결과가 어떻든 그 일을 하는 내 마음과 태도가 같고, 내 말과 행동이 일치한다면 그걸로도 이름값은 충분하다고 여기려 한다.(내가 너무 후한 건가? ㅎㅎㅎ) 이러고 보면 이름값 제대로 하기란 참으로 쉽고, 동시에 끔찍하게 어렵다!



한비야 국제구호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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