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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숙의 오늘미술관] 이동춘 사진집 『경주_풍경과 사람들』

중앙일보 2015.09.12 08:51

사진가 강운구(73) 선생에게서 들은 말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기다림이다. 그가 펴낸 사진집 『경주 남산』(열화당)이 걸작이 된 비결을 물었을 때, 이런 답이 돌아왔다. “삼각대를 세워놓고 배회했죠. 어슬렁어슬렁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땅을 몸으로 느꼈어요. 사진을 좀 찍는다는 스님 한 분이 묻더라고요. 해가 좀처럼 들지 않아 깜깜한 감실 속 부처는 언제 찍어야 나오느냐고. 그래서 내가 그랬죠. 동지(冬至)에 한 번 가보시오. 그날 잠깐 눈 깜짝할 사이쯤 볕이 듭니다.”
우리나라에도 그가 시각언어와 이미지에 대해 쓴 번역서 여러 권이 널리 알려진 영국 출신 사진가 겸 작가 존 버거는 이렇게 말했다. “강운구는 다만 기다렸을 뿐이다. 땅이 다했다. 그는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이런 사진가를 소개해줘 고맙다.”
엊그제 출간된 사진가 이동춘(54)의 사진집 『경주_풍경과 사람들』(도서출판 맹그로브아트웍스)도 기다림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경주를 찍기 위해 일곱 달을 기다린 그는 황룡사지에서 촬영하다 분황사 당간지주에 걸친 황룡(사진)을 만났다. 순간 본능적으로 셔터를 눌렀다. 용의 형상을 한 구름이 흩어지기까지는 불과 30초에 지나지 않았다. 천년 신라의 꿈과 위용을 지닌 황룡사 터 위에서 작가는 하늘에서 내려온 삼국통일의 꿈, 용을 만났다.
강운구의 경주와 이동춘의 경주, 걸작은 시간을 기다리는 오래 참음, 사랑에서 오는지도 모른다.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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