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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삼촌은 친구 있어요? 나는 없어요…" 유령이 된 아이들

중앙일보 2015.09.09 22:24




유령이 된 아이들


“삼촌 친구 있어요? 나는 없어요…”

저에게 말을 건 자혼기르(7)는 충북 외딴 마을에서 사는 꼬마아이입니다. 동생 잠시드(6)와 하루 종일 자전거를 타고 집 근처를 빙빙 돌며 놉니다. 지루해지면 둘이서 가위바위보와 팔씨름을 합니다.

유치원에 다닐 나이지만 이들은 가지 못합니다. 부모가 불법체류자이기 때문입니다. 두 형제는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국적이 없습니다. 붙잡혀서 추방될까봐 부모는 이들의 출생신고를 하지 않았습니다.

둘은 숨어 사느라 대부분의 시간을 곰팡이 핀 방에서 엄마와 지냅니다. 어쩌다 근처 초등학교 운동장에 가봐도 또래 아이들에게 말을 걸지 못합니다. 아이들의 소원은 ‘친구를 갖는 것’입니다.





컨테이너 안에서


스리랑카 출신 부모를 둔 디누리(3ㆍ여)의 집은 젖소 농장 옆에 딸린 컨테이너입니다. 형제ㆍ자매가 없고 친구도 없어 하루 종일 컨테이너에서 숨죽여 지냅니다. 디누리 역시 국적 없는 아이입니다.

디누리는 컨테이너 안에서 뽀로로 가방을 메고 인형놀이를 하며 하루를 보냅니다. 스리랑카 동요를 들려주는 낡은 컴퓨터 한 대가 디누리의 유일한 친구입니다.

엄마는 디누리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싶었습니다. 주변 어린이집들을 돌아다니며 사정을 말하고 도움을 요청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모두 ‘No’였습니다. 디누리를 받아줬다가 한국인 아이들의 부모가 알게 될 경우 반발할까봐서였습니다.





공부가 하고 싶어요


간호사가 꿈인 앤(17ㆍ여)은 요즘 진로가 걱정입니다. 앤은 경기도 안산시에서 종교단체가 운영하는 국제학교에 3년째 다니고 있습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고교 과정 수학ㆍ과학ㆍ사회ㆍ영어ㆍ한국어 수업을 듣습니다.

하지만 이 학교는 인가를 받지 못해 대학 진학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꼭 그 이유가 아니더라도 앤은 대학 전형을 치르지 못합니다. 불법체류자여서입니다.

방글라데시에서 태어난 앤은 동생 시드니(14ㆍ여)와 함께 2009년 한국에 왔습니다. 유학을 온 아빠를 따라 왔습니다. 학교에 갔지만 한국말을 몰라 수업을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학업을 포기하려다 한 종교단체의 도움으로 국제학교에 입학했습니다. 하지만 그 사이 가족은 불법체류자가 됐습니다.

두 자매는 앞이 막막합니다. 비인가 학교라 고국에 돌아가도 학력을 인정받지 못합니다. 그런 사실은 올 1월에야 알았습니다. 학력을 인정받으려면 검정고시를 쳐야하는데, 불법체류자라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앤은 말합니다. “한국에서 꼭 대학에 가고 싶어요.”





아프면 그저 참을 뿐


무국적 아이 문정양(5)군은 뇌에서 단백질이 과다하게 분비되는 희귀병을 앓고 있습니다. 잘 걷지 못하고, 눈 앞 50cm 정도만 볼 수 있을 정도로 시력이 나빠졌습니다. 의사는 “엄마 뱃 속에 있을 때 감염돼 뇌에 이상이 생긴 것 같다”고 합니다.

정양이 엄마는 임신 때 산부인과 정기검사를 제대로 받지 않았습니다. 중국인 불법체류자였기 때문입니다. 정양이 역시 의료보험이 되지 않습니다. 매달 병원비 수 백만원을 대려고 고모들까지 열심히 일합니다.

“작년 10월에 앞니 두 개가 빠졌는데 새 이가 나지 않아요. 요 밑에 이는 5개 썩었어요. 너무 아파요. 치과에 가자고 졸라도 아빠는‘알았다’고만 해요.”

잠시드는 왜 이가 나지 않는지, 왜 썩은 이를 아빠가 그냥 놔두지 궁금해합니다. 그 때 아빠 마무드(35)가 저에게 귀엣말을 했습니다.“첫째가 다섯 살 때 머리를 다쳐 몇 바늘 꿰맸어요. 의료보험이 없어 20만원을 냈습니다. 그 뒤로는 아이들과 병원에 가지 않아요.”

국적없는 아이, 잠시드는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습니다. 병원에 가지 않고 진통제로 버팁니다. 잠시드는 “커서 치과의사가 되고 싶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왜 한국에 남을까


우즈베키스탄 출신 불법체류자 마무드는 지난 4월 충북 음성의 한 공사장 2층에서 뛰어내렸습니다. 출입국관리사무소의 현장 단속을 피해 허겁지겁 도망친 겁니다. 무릎이 찢어지고 발목이 뒤틀린 사실도 잊은 채 줄행랑 친 뒤에야 한 숨을 돌렸습니다.

“제가 잡히면 아이들도 강제출국을 당해야 하잖아요. 아이들 만큼은 교육 수준이 높은 한국에서 학교도 다니고 대학도 다니게 하고 싶어요.”

그에겐 일곱 살, 여섯 살 두 아들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병원에도 가지 못하지만 한국에 계속 머무르는 이유는 우선 본국보다 돈을 더 벌기 때문입니다. 그에 더해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해서입니다.

“아이에게 미래를 주고 싶다. 잘사는 한국에서 공부할 수 있다면…” 키르기즈스탄 출신 인니르나(43ㆍ여)의 말입니다.





그들이 아이를 버리는 까닭


“제가 돈 많이 벌어서 올게요. 아이 입양시키지 말아 주세요. 꼭 돌아올게요.” 2009년 경기도의 한 어린이집 앞에 삐뚤빼뚤한 글씨로 적힌 편지 한 통이 놓여 있었습니다. 생후 9개월 된 여자아이와 함께였습니다. 편지에는 부모 이름도, 연락처도 없었습니다.

원장은 아이에게 ‘유정’이란 이름을 지어주고 서울의 한 보육원으로 보냈습니다. 2년 뒤 유정이의 엄마(베트남)가 김 원장을 찾아왔습니다. 딸에게 줄 분홍색 드레스와 인형을 들고서였습니다. 유정이를 만난 엄마는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하며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하지만 딸을 데려가진 않았습니다. 한국 국적을 갖게 된 유정이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으려는 선택이었습니다.

불법체류자 부모들은 국적 없는 자녀가 한국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압니다. 그래서 하는 선택이 ‘버리기’입니다. 그러면 한국 국적을 얻을 수 있으니까요. 그러면 아이들이 ‘꿈의 나라’인 한국에서 정식으로 교육 받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아이를 위해서라면


웬티미(3ㆍ여)는 2012년 3월 광주광역시 광산구에서 태어났습니다. 부모는 베트남 출신 불법체류자였고, 웬티미는 국적없는 아이가 됐습니다. 엄마는 집에서 웬티미를 돌봐야 했습니다. 부모는 고민 끝에 웬티미를 베트남의 할아버지에게 보내기로 했습니다. 엄마도 일을 해야 돈을 모을 수 있어서였습니다.

하지만 국적이 없는 웬티미는 여권을 발급 받을 수 없습니다. 부모는 딸의 신분을 바꿔줄 브로커를 찾았습니다. 아빠의 넉달 치 월급 600만원을 모아 브로커에게 건넸습니다. 브로커는 합법체류자 신분인 아빠 친구의 딸로 웬티미의 출생 기록을 바꿨습니다.

웬티미는 대사관에서 베트남 국적과 여권을 발급받을 수 있었습니다. 생후 9개월 되던 2012년 12월 아빠 친구의 품에 안긴 채 베트남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습니다. 지금 웬티미는 엄마 아빠 얼굴을 화상 채팅으로만 봅니다. 국적 없는 아이들은 이렇게 신분 세탁을 통해 왕왕 본국에 보내집니다. 아이를 보낸 어느 엄마는 말했습니다. “큰 돈이 들기도 하지만, 낯모르는 사람 손에 아이를 맡겨보내는 게 정말 불안했어요.”





그들은 한국인일까


“헐” “대박” “잔치국수는 깍두기와 먹어야 제 맛이에요.”

연신 이런 말을 늘어 놓는 허버트(11)의 부모는 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 태생입니다. 반정부투쟁을 하다 한국에 와서 난민 신청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반정부투쟁을 입증할 서류가 미비해서입니다. 그러는 사이 태어난 허버트는 아무런 국적을 갖지 못하게 됐습니다.

허버트는 스스로를 ‘한국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당연히’ 태권도를 배웠습니다. 엄마를 졸라 지난해부터 도장에 다녔습니다. 어느새 빨간 띠를 땄지만 거기까지였습니다.

빨간띠를 함께 딴 같은 도장 친구들은 올 여름방학을 맞아 승급심사를 보고 검은 띠를 맸습니다. 허버트는 심사에 지원하지 못했습니다. 검은 띠는 주민등록번호가 있어야 신청할 수 있어서입니다. 허버트는 “엄마, 나도 검은 띠 따고 싶어”라며 일주일 내내 울기만 했답니다.

허버트의 엄마 베네(36)도 하소연합니다. “허버트는 한국말 밖에 몰라요. 콩고말 몰라요. 얘가 한국에서 아무런 문제 없이 잘 자랐으면 좋겠어요.”





해답이 없을까요


숨어서, 친구 없이, 학교ㆍ병원에도 가지 못하고 사는 아이들. 사정을 알면 “딱하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이들에게 한국 어린이들과 똑같은 의료ㆍ교육 등의 혜택을 받도록 하는 것도 무리가 있습니다. 우선 “세금을 내지 않는데 왜 혜택을 주느냐”는 반론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 이자스민 의원실 측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생활을 하려면 물건을 사야 하고, 그러면 부가가치세를 자연스럽게 내게 된다는 겁니다. 물론 국민건강보험료 등은 내지 않습니다.

“어린이들의 인권을 생각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에 대해서도 고민이 있습니다. 어린이들의 인권을 고려하면 그리해야겠지만, 자칫 불법체류자를 양산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런 의견도 나옵니다. “초고령화 사회가 될 한국은 다문화 인력이 꼭 필요하다. 불법체류자지만 범죄 없이 성실히 일해왔다면, 업주 등의 보증을 받아 한국에 머물 수 있게 해주자.” 하지만 불법체류자임을 알면서 고용한 것도 문제가 있습니다. 업주들이 성큼 나서지 않을 겁니다.

갈팡질팡하는 사이 이미 2만 명 넘는 아이들이 숨어 살고 있습니다. 이 아이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러분 의견을 들려주세요.



※아이들의 신분 노출을 피하기 위해 일부 사진을 흐리게 처리한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최종권 기자 choigo@joongang.co.kr

[VJ=김세희·김상호·이정석, 영상편집=정혁준·김현서, 디지털 디자인=임해든·김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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