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콧대 낮춘 은행 PB 서비스

중앙일보 2015.09.09 18:19
# 게임 업체에 근무하는 A(35)씨는 지난해 OTP보안카드를 재발급받기 위해 은행을 방문했다가 WM(자산관리)매니저로부터 “왜 통장에 6000만원을 그냥 두고 있느냐, 용도가 어떻게 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별생각 없이 월급과 수당을 통장에 쌓아 놓고만 있던 A씨는 은행의 ‘스타 플랜’시스템을 통해 포트폴리오 분석을 받았다. 매니저는 컴퓨터 시스템이 뽑아준 포트폴리오를 바탕으로 A씨의 안정적인 투자 성향을 반영해 6000만원의 3분의 1은 예금 상품에, 3분의 1은 배당주를 중심으로 한 적립식 펀드에, 나머지 3분의 1은 절세 효과가 있는 연금 저축 상품과 단기 채권에 넣었다. 적립식 펀드에 들어가는 돈은 자동으로 펀드에 투자하는 ‘펀드와 만나는 예금’ 상품으로 갈아탈 것을 권유받았다. 이를 통해 ‘돈 불리는 재미’를 맛본 A씨는 목돈이 생길때마다 WM매니저의 상담을 받았고, 1년새 금융 자산이 1억원으로 불어났다.



# 부부합산 월소득 800만원인 30대 후반의 B씨는 최근 은행에서 “부부의 씀씀이가 너무 헤프다. 지출을 100만원 정도 더 줄이는 게 좋겠다”는 권유를 받았다. 은행에서 은퇴 설계를 해주는 곳이 많다고 하기에 ‘나도 한번 점검을 받아볼까’라는 생각에 농협은행을 방문했는데 라운지 매니저의 상담을 받고는 적잖이 놀랐다. 수입·자산과 함께 한 달 생활비와 자녀 교육비, 부부 용돈 등의 지출을 시스템에 입력하니 부부가 은퇴후에 쓸 수 있는 돈이 예상 외로 적었다. 그는 매니저로부터 “추가 주택 구입을 3년 이후로 미루고, 지출을 줄여 그 돈으로 3년간 적립식 펀드에 분산 투자하는 것이 좋겠다”는 권유를 받았다.



은행 프라이빗 뱅킹(PB, 개인자산관리)의 문턱이 낮아지고 있다. 일부 자산가만을 겨냥하던 PB가 조금씩 대중화하고 있다. 기존엔 은행 PB 서비스는 5억원이나 3억원 이상의 고액 금융 자산가에게만 문이 열려 있었다. 하지만 A씨나 B씨처럼 1억원 미만의 금융 자산가에게도 문을 활짝 열었다. KB국민은행과 농협은행은 아예 기준 자체를 없앴다. KB국민은행의 일반 영업점을 방문하면 시스템을 통해 개인의 투자 성향에 맞는 포트폴리오를 받을 수 있다. 이를 토대로 WM매니저가 개인에게 맞는 투자 상품과 투자 비율 등을 세부적으로 조정해 준다. 농협은행은 5억원 이상의 자산가를 대상으로 상담하던 PB센터를 없애고, 전국 861개 영업점에 ‘라운지 매니저’를 파견했다. 이 곳에서도 컴퓨터 시스템을 통한 포트폴리오를 받을 수 있고, 라운지 매니저와의 상담을 통해 포트폴리오를 세부적으로 조정할 수 있다.



고객 자산가의 기준을 완화한 은행도 많다. 신한은행은 금융자산 3억원 이상의 고액 자산가만 이용할 수 있던 ‘PWM센터’의 서비스를 일반 영업점에 확대한 모델인 ‘PWM라운지’를 열었다. 1억원 이상 금융 자산가면 이용이 가능하다. PWM라운지를 이용하면 신한은행(은행) 직원과 신한금융투자(증권) 직원에게 동시에 자산관리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씨티은행은 기존의 1억원 이상 고객을 대상으로 하던 PB서비스의 기준을 세분화했다. 씨티 은행에 5000만~2억원을 맡긴 고객은 오는 11월 말부터 전용 대기선과 전용 핫라인, 전담 직원과의 상담을 이용할 수 있게 된다.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은행도 은퇴 설계를 위한 자산관리 서비스를 대폭 늘리는 추세다. KEB하나은행의 영업점을 방문하면 ‘행복 파트너’가 은퇴 설계를 도와준다. 은퇴설계 시스템을 이용해 현재 자산 현황과 자금 수요, 은퇴 이후 기대 생활 수준 등을 감안해 포트폴리오를 짜준다. 이를 바탕으로 행복 파트너는 각종 연금 상품이나 증권, 보험 상품을 추천한다.



은행이 이렇게 자산관리 고객 대상을 확대하는 이유는 자산관리 분야가 저금리 저수익 구조를 돌파하기 위한 새로운 틈새 시장이란 판단에서다. 농협은행 WM지원팀 김형리 차장은 “예대마진 축소로 인해 은행 수익이 악화 되는 상황에서 준(準)자산가가 몰려있는 3040세대는 향후 30~40년간 은행의 장기 고객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자산관리 서비스를 통해 여러 가지 상품을 ‘크로스 셀(교차 판매)’할 수 있어 향후 PB 서비스는 더 대중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경진 기자 kjin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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