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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예선]정우영 등장에 '공격수' 기성용 진가 발휘

중앙일보 2015.09.09 17:53
축구대표팀 미드필더 기성용(26·스완지시티)의 공격 본능이 살아났다. 정우영(26·빗셀 고베)이라는 믿음직한 수비형 미드필더가 등장힌 덕분이다. 기성용이 수비 가담을 줄이고 공격에 매진할 수 있게 됐고, '아시아의 호랑이' 한국 축구도 발톱을 날카롭게 세웠다.



9일 레바논 시돈에서 열린 레바논과의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3-0승)은 '공격수' 기성용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는 무대였다. 날카로운 침투 패스로 세 골 중 두 골에 기여했다. 전반 20분 기성용의 스루패스를 받은 석현준(24·비토리아)이 상대에게 걸려 넘어져 페널티킥을 얻어냈다. 키커 장현수(24·광저우 부리)가 침착한 오른발 슈팅으로 선제골을 뽑았다. 상대 자책골이 더해져 2-0으로 앞선 후반 15분에는 권창훈(21·수원)이 기성용의 패스를 받자마자 돌아서며 오른발 슈팅으로 쐐기골을 터뜨렸다. 한국은 지난 1993년(1-0승) 이후 22년 만에 레바논 원정에서 승리를 거뒀다.



기성용은 프로 데뷔 이후 가장 즐겁게 뛴 기억으로 FC 서울 시절(2006~2009년)을 꼽는다. '공격축구 전도사' 세뇰 귀네슈(63·터키) 당시 감독은 기성용을 공격형 미드필더로 기용해 골 사냥의 구심점 역할을 맡겼다. 이후 셀틱(스코틀랜드), 스완지시티(웨일스), 선덜랜드(잉글랜드·한 시즌 임대) 등을 거치며 차츰 기성용의 수비 가담 비중이 높아졌다. 대표팀에서도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역할이 굳어졌다.



정우영의 등장과 함께 기성용의 역할에 변화가 생겼다. 정우영은 신장(1m86cm), 패싱력, 수비가담 능력, 중거리 슈팅 등 여러 면에서 기성용(1m87cm)과 닮은꼴이다. 기성용의 중원 파트너 후보로 정우영을 실험대에 올린 울리 슈틸리케(61) 감독은 기대 이상의 경쟁력을 확인한 뒤 정우영에게 기성용의 역할을 온전히 맡겼다. 그리고 기성용의 위치를 공격 2선으로 끌어올려 4-1-4-1 전형을 완성했다. 수비에 주안점을 두는 기존의 4-2-3-1과 달리 4-1-4-1 포메이션은 다득점을 노리는 공격적인 전형이다.



정우영은 일본 J리그 무대에서 차근차근 존재감을 키웠다. 경희대 재학 중이던 지난 2011년 교토 상가(일본 2부리그)에 입단했고, 주빌로 이와타(1부리그·2013년)를 거쳐 지난해 빗셀 고베로 이적했다. 지난 2012년에는 런던 올림픽 동메달에 기여해 병역 혜택도 받았다.



소속팀에서 정우영의 입지는 절대적이다. 올 시즌을 앞두고 빗셀 고베에 부임한 브라질 출신 넬싱요 감독은 베테랑들을 제치고 프로 5년차 정우영에게 주장을 맡겼다. 팀 전술의 흐름을 조율하는 정우영의 역할을 높이 평가해서다. J리그에서 한국인 선수가 주장을 맡은 건 지난 2000년 홍명보(46·당시 가시와 레이솔) 이후 두 번째다. 정우영은 "일본에서 뛰는 동안 '나는 외국인'이라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일본어 공부에 매달렸고, 팀에서 궂은 일을 도맡으며 동료들의 신뢰를 얻었다"고 말했다.



'흙 속의 진주' 정우영의 진가를 알아보고 중용한 슈틸리케 감독의 선수 발굴 능력도 새삼 주목받고 있다. 슈틸리케 감독은 부임 이후 이정협(24·상주)·이재성(23·전북)·권창훈 등 새 얼굴을 과감히 발탁해 A대표팀의 주축 멤버로 키웠다. 이번 월드컵 아시아 2차예선 2연전을 거치면서 대표팀의 인재풀이 더욱 넓어졌다. 5년 만에 대표팀에 복귀한 석현준이 최전방 공격수로, 다기능 수비자원 장현수가 오른쪽 수비수로 각각 선발 출장해 합격점을 받았다. 권창훈은 두 경기에서 세 골을 터뜨려 'K리거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한준희 KBS 해설위원은 "레바논전을 통해 슈틸리케 감독이 꺼내든 4-1-4-1 카드가 아시아권에서 경쟁력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면서 "정우영의 등장과 함께 기성용의 활용 폭이 넓어진 것도 긍정적이다. 대표팀이 다양한 전술을 구사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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