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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결 같은 영국 여왕, 최장 재임 기념일에도 공무에 전념

중앙일보 2015.09.09 17:37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재임 시간은 다소 애매하다. 부친인 조지 6세가 수면 중 서거했기 때문이다.



버킹엄궁은 가장 보수적으로 계산해도 9일 오후 5시30분(현지시간) 엘리자베스 2세가 1000년간 이어져온 영국 군주제에서 최장수 군주가 됐다고 밝혔다. 햇수론 63년이 넘는다. 기존 최장수였던 빅토리아 여왕의 재위 기간(2만3226일16시간23분)을 웃돌았다.



이날 여왕을 위한 기념식은 열리지 않았다. 여왕이 스코틀랜드의 발모랄성에서 개인적으로 시간을 보내고 싶어해서다. 발모랄성은 스코틀랜드를 사랑했던 빅토리아 여왕이 마련한 곳으로, 엘리자베스 2세도 좋아하는 곳이다. 이날은 부친의 서거일이기도 하다. 왕궁에선 “여왕은 오히려 복잡 미묘한 기분”이라고 전했다.



엘리자베스 2세는 기념식 대신 스코틀랜드 에딘버러에서 출발하는 열차 노선 재개통식을 축하해 주러 갔다. 2시간 동안 증기 기관차를 탔다. 스코틀랜드 독립을 주장하는 니콜라 스터전 스코틀랜드자치정부 수반도 함께 했다. 영연방의 수장으로 영연방을 수호하려는 여인과 영연방을 해체하려는 여인의 동행이었다. 더타임스는 “여왕의 자질 덕분에 영연방은 이들이 기차를 타기 전보다 내린 후에 더 강고해질 것”이라고 보도했다.



여왕의 63년 재임이 그래왔다. 큰아버지 에드워드 8세가 심슨 부인과 결혼하기 위해 왕위를 버리면서 엉겁결에 왕위 추정 상속자가 된 이후 여왕은 어린 나이부터 공무를 수행했다. 2차 세계대전 중 부모와 함께 영국에 머물며 어린이들을 위해 방송했다. 18세가 된 1945년 3월 아버지를 졸라 여자 국방군에 입대했고 탄약을 관리했다. 21세 생일엔 국민 앞에서 “공적 삶에 헌신하겠다”고 맹세했다. 1953년 6월 대관식에서도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영국과 국민을 위해 봉사하겠다”고 했다.



빈말이 아니었다. BBC방송의 왕실 담당 기자는 여왕의 삶을 “변함 없이 거듭 의무에 충실했다(steadfast, constant, dutiful)”고 요약했다. 매일 붉은 박스에 담긴 채 배달되는 서한과 서류들을 봤다. 총리들과는 주기적으로 만났다. 국민 앞에 늘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말은 절제했다. 단 한 번의 인터뷰도 없었다. 특히 정치적 발언은 삼갔다. 동시에 지혜롭다는 인상을 줬다.



그 사이 영국은 2차 대전의 상흔을 딛고 농업에서 제조업, 다시 제조업에서 서비스업 위주의 사회로 급변했다. 대영제국은 해체됐고 대신 영연방이 만들어졌다. 유럽연합(EU)의 일원이 됐다.



여왕은 수십 년 한결 같았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폭풍우 속에서도 우리에게 확실성을 주는 영원한 닻과 같은 존재”라고 말했다. ‘변함 없는 엘리자베스(Elizabeth The Steadfast)’는 괜히 붙은 칭호가 아니었다.



위기가 없던 건 아니다. 1960~70년대 군주제 폐지론자들이 득세했다. 90년대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비의 이혼, 이후 다이내아비의 비극적 죽음은 영국 왕실의 위기였다. 엘리자베스 2세는 이 또한 넘겼다. 2012년 런던 올림픽 개막식 영상에서 제임스 본드로 출연한 대니얼 크레이그의 에스코트를 받아 헬기에서 경기장으로 뛰어내리는 듯한 장면을 연출했을 때 여왕의 지지율은 90%를 넘었다. 역사가 로버트 툼스는 “군주제가 건강하게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여왕 덕”이라고 분석했다.



이날 축하 행사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의회에서 관련 발언을 했다. 템즈강에서 기념 운항도 있었다. 4발의 축포가 발사됐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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