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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지는 ‘힐러리 피로증’ … 연상 단어 1위가 거짓말쟁이

중앙일보 2015.09.09 01:41 종합 16면 지면보기
한때 ‘박근혜 대세론’을 연상케 했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지지부진한 지지율에 위기를 맞고 있다. 그간 미국 언론을 장식했던 ‘클린턴은 필연’이라는 수사는 사라지고 급기야 ‘클린턴 피로증(Clinton fatigue)’이 등장했다. 대세론 붕괴를 알리는 정치 용어가 ‘피로증’이다.


호감도 41%로 1992년 이후 최저
개인 e메일에 북핵 정보도 담겨
해킹 땐 기밀 유출 … 엄청난 폭발력
막말 트럼프, 토론회 최고 시청률
“낡은 생각·정치에 미국인 지친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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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갤럽의 지난 7일(현지시간) 발표에 따르면 클린턴 전 장관에 대한 호감도는 41%로 1992년 조사 이후 사실상 최저치다. 공화당 주자인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 측은 지난달 말 ‘클린턴 피로증’을 내건 TV 광고로 공세에 나섰다. 의사들이 침대에 누운 환자의 질병을 ‘클린턴 피로증’으로 진단하며 ‘클린턴 피로증과 싸우자’는 광고를 내보냈다. 크루즈 의원 측은 “미국은 클린턴 피로증에 걸려 있다”며 “똑같은 낡은 생각, 낡은 정치, 낡은 개인적 치부에 미국이 지쳤다”고 공격했다. CNN은 미국 대선의 풍향계인 일리노이주·뉴햄프셔주의 유세 현장 분위기를 전하며 “뭔가 신선함을 원하는 욕망이 팽배한데 클린턴 전 장관은 아직 이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며 “클린턴 전 장관에겐 정말 심각한 도전”이라고 경고했다.



 클린턴 전 장관은 이번이 대선 재수다. 2008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돌풍에 밀려 민주당 경선에서 패배했다가 2016년 대선을 앞두고 여야를 통틀어 1등 지지율을 지켜오다 최근 여론조사에선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는 물론 내부의 경쟁자인 버니 샌더스(무소속) 상원의원에게도 뒤지고 있다. 이는 한국에서 1997년 대선을 앞두고 부동의 1위였다가 패배한 뒤 2002년 대선에서도 초반의 여론 우위를 살리지 못했던 ‘이회창 대세론’을 연상케 한다.



 클린턴 전 장관의 위기는 경쟁 없이 안주하는 대세론의 함정에 빠졌기 때문이다. 올해 상반기 민주당은 클린턴 전 장관의 독주로 경선 초반 흥행에서 재미를 보지 못했다. 반면 공화당은 막장 후보 트럼프가 뛰어들며 흥행 대박을 터뜨렸다. 지난달 6일 폭스뉴스가 생중계한 공화당 후보들의 첫 TV 토론회는 2400만 명이 시청해 기존의 경선 토론회 시청 기록을 갈아치웠다. 오는 16일 공화당의 2차 TV 토론회를 주관하는 CNN은 토론회 광고 단가를 40배 인상했다. 평소 저녁 시간대 30초 광고비가 최저 5000달러(약 600만원)였는데 이번엔 20만 달러(2억4000만원)를 불렀다고 뉴스맥스 등이 전했다.



 물론 트럼프가 공화당의 최종 대선 후보가 될지는 여전히 불투명하고 그의 막말 캠페인이 본선에서도 통할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반대 진영의 대세론을 휘청거리게 만든 효과에선 동일하다. 클린턴 전 장관은 고액 강연료 논란과 클린턴 재단의 문어발식 후원금 수수로 상처를 입었다. 여기에 국무장관 시절 개인 e메일을 공무에 사용했다는 공화당의 의혹 제기로 신뢰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7일 “중앙정보국(CIA)과 국립지질정보국(NGIA)은 클린전 전 장관이 두 개의 개인 e메일로 받은 내용엔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 관련 내용을 포함해 ‘최고 기밀’이 담겼다고 결론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이는 e메일을 저장했던 개인 서버가 외부 해킹에 뚫리면 국가 기밀이 유출될 수 있다는 점에서 향후 폭발력이 만만찮은 사안이다. 그럼에도 클린턴 전 장관은 이날 “(개인 e메일은) 국무부로부터 허가를 받고 사용했다”며 사과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여론은 비판적이다. 지난달 28일 발표된 퀴니팩 대학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클린턴 전 장관과 함께 연상되는 단어로 거짓말쟁이(liar), 정직하지 않다(dishonest), 믿을 수 없다(untrustworthy)가 상위 1·2·3위를 차지했다. 클린턴 전 장관의 강점인 경륜(experience), 강함(strong), 똑똑하다(smart)는 그 이후로 밀렸다.



 ◆크루그먼, 트럼프 경제 공약 옹호=2008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진보 경제학자인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가 7일 ‘경제학에선 트럼프가 옳다’는 칼럼을 NYT에 실었다. 그는 경제 공약을 놓고 트럼프를 이단아 취급하는 공화당 주류를 비판했다. 크루그먼은 공화당 대선 주자인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가 트럼프의 부자 증세 공약을 비판한 데 대해 “(부시가) 세금 감면으로 미국 경제성장률을 두 배로 올리겠다고 공약한 것은 공급경제학의 맹목적 미신”이라며 “거액 기부자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공화당 대선 주자들과 달리 억만장자인 트럼프는 이들에게 몸을 낮출 이유가 없다”고 옹호했다.



워싱턴=채병건 특파원 mfem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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