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아들을 죽인 임금 영조, 그 마음을 들여다보다

중앙일보 2015.09.09 01:21 종합 25면 지면보기
영조 역을 맡은 배우 송강호에 대해 이 감독은 “촬영내내 단 하루도 영조가 아닌 적이 없었다”고 했다(사진 왼쪽), 유아인은 꽉 막힌 뒤주에 갇혀 죽어가는 세자 사도의 불안과 공포를 실감나게 보여줬다(사진 오른쪽). [사진 쇼박스]


이준익 감독
아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부정하고,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친 아들. 부자(父子)의 뒤틀린 관계는 결국 씻을 수 없는 참극을 빚는다. 16일 개봉하는 ‘사도’(이준익 감독)는 영조(송강호)와 그의 아들 사도(유아인)의 어긋난 운명을 심도 있게 들여다 본 영화다. 널리 알려진 대로 ‘뒤주에 갇혀 죽음을 맞은 사도’의 이야기를 아버지 영조와 아들 사도세자의 심리 묘사에 집중해 이야기로 풀었다. ‘황산벌’(2003) ‘왕의 남자’(2005) ‘구르믈 벗어난 달처럼’(2010) 등 사극에 방점을 찍어온 이준익 감독의 신작이자, 배우 송강호가 처음으로 왕 역을 맡은 작품이다. 매력적인 소재와 배우들의 열연, 그리고 감독의 연출 등 영화의 삼박자가 조화를 이뤘다.

송강호·유아인 주연 ‘사도’
근엄하지만 인간미, 영조 재해석
사도세자의 감정 폭발 장면 섬뜩
과거·현재 교차 묵직하게 승부
새롭지 않은 소재, 새롭게 그려



 영조는 재위 기간 왕위 정통성 논란에 시달린다. 천민 출신 후궁의 아들이란 콤플렉스가 그를 짓누른다. 그는 학문과 예법을 중시하며 권위를 세우기 위해 애쓰지만, ‘임금 노릇’을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왕위 계승을 서두르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자신의 기대와 다르게 행동하는 아들에게 실망하고 분노한다. 한편 사도 역시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영조에게 불만이 쌓여간다.



 영화는 이야기의 흐름상 절정에 해당하는 부분부터 시작된다. 사도가 아버지를 향해 꾹꾹 눌러왔던 분노를 터뜨리는 장면에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리고 사도가 뒤주에 갇혀 지낸 8일간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과거와 현재를 교차시키며 두 사람의 관계를 파고 들어간다. 관객들은 영조가 왜 사도를 힐난했는지, 그리고 둘의 관계가 왜 삐걱거릴 수밖에 없었는지 그 내막을 알게 되는 식이다.



 영화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영조와 사도의 심리 묘사에 큰 비중을 둔 연출이다. 한 가정의 아버지이자 한 나라의 왕인 영조가 후계자이자 아들이 기대에 어긋나자 겪게 되는 중압감과 분노, 한탄 등이 입체적으로 묘사됐다. 근엄하고 위압적으로 묘사돼온 기존 사극의 왕의 모습과 달리 문지방을 폴짝 뛰어 넘거나 아들의 총명함에 흐뭇해하는 표정 등을 살리며 정형화된 인물을 재해석했다. 영조의 인간적 면모를 부각시키는 연출과 더불어 배우 송강호의 존재감도 빛났다.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영조의 감정을 표현한 송강호는 자신의 이름값을 톡톡히 했다. 유아인의 연기도 더욱 깊어졌다. 그는 마치 새장에 갇힌 새처럼 주눅 들고,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오롯이 표현했다. 1000만 관객을 넘어선 ‘베테랑’(류승완 감독)으로 티켓 파워까지 겸한 유아인은 이 영화를 통해 연기파 배우의 반열에 오를 공산이 크다. 특히 그가 뒤주에 갇혀 생사를 넘나드는 절체절명의 상태에서 감정을 폭발시키는 대목이 압권이다.



 영화는 그동안 폭군의 이미지로만 소비됐던 사도의 다른 모습들, 예컨대 유약하거나 고뇌하는 모습 등을 다각도로 조명했다. 또 사도를 궁지로 몰고 간 신하들을 비롯해 생존을 위해 남편을 외면한 비정한 혜경궁 홍씨(문근영), 남편인 영조의 안위를 위해 자식인 사도를 내팽개친 영빈(전혜빈) 등 여러 인물들이 얽히면서 긴장감이 팽창한다. 하지만 궁궐 안에서만 벌어진 이야기다 보니 한정된 공간에서 느껴지는 갑갑함은 배제할 수 없다.



 ‘사도’는 정통 사극을 표방한 영화답게 기교를 부리거나 기술에 의존하지 않는다. 최근 개봉한 사극이 현란한 영상미로 겉치레에 치중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영화가 끝나고 곱씹어 볼 만한 화두도 있다. 바로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한 성찰이다. 그리 새롭지 않은 이야기를 담아냈다는 약점에도 이 영화가 흡입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이유다.



지용진 기자 windbreak6@joongang.co.kr



★ 5개 만점, ☆는 ★의 반 개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 ‘이준익 사극’의 완성. 익히 알던 이야기는 콤플렉스와 트라우마,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인물들의 드라마로 다시 태어난다. 우리에게 아버지는 어떤 존재인가. 새삼 묵직해지는 질문이다.



★★★★(전종혁 영화 평론가): 색(色)과 검(劍)이 난무하는 퓨전 사극이 관객의 인내심을 실험하는 시대, ‘사도’는 홀연히 정통 사극으로 회귀한다. 이준익 감독의 절제된 연출 미학이 돋보인다.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