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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다산의 하피첩이 개인에게 팔려서야

중앙일보 2015.09.09 00:40 종합 33면 지면보기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하피첩’은 글자 뜻대로 ‘노을빛 치마로 만든 첩’이라는 의미다. 그래서 다산(茶山) 정약용(1762~1836)은 ‘홍군(紅裙)’, 즉 ‘붉은 치마’라 해야 하지만 ‘홍군’에는 기생이라는 의미도 있기 때문에 은근하게 돌려 ‘하피’라고 한다는 풀이까지 해놓았다. 1810년은 다산의 귀양살이 10년째 해이고 나이도 50세에 이른 해였다. 고향에 몸져누워 있던 아내 홍씨가 어떤 생각에서였는지 유배지 강진의 다산에게 시집올 때 입고 왔던 다홍치마 다섯 폭을 인편에 보냈다. ‘나 잊지 말고, 또 딴마음 먹지 마세요’라는 은근한 사랑의 표시이자 그리움의 간절한 표현이 아니었을까.



 치마를 받은 남편 다산은 두 아들에게 삶의 철학과 인생의 지침을 써서 전해주려는 생각으로 비단을 재단해 첩을 만들었다. “내가 귀양살이할 때 몸져누운 아내가 해진 치마 다섯 폭을 보내왔다. 아마도 그것은 그녀가 시집올 때 입었던 활옷인가 본데 붉은색이 이미 바래서 담황색이었다. 글씨 쓰는 재료로 삼기에 딱 알맞았다. 그래서 그것을 재단해 조그만 첩을 만들어 손이 가는 대로 훈계해주는 말을 써서 두 아들에게 전해준다. (…) 순조 10년(1810) 초가을 탁옹이 다산 동암(東菴)에서 쓴다”라는 서문을 달고 다산의 문집에 실려 있는 ‘가계(家誡)’의 내용 그대로 손수 글씨를 써 집으로 보냈다.



다산 정약용이 1810년 부인이 보내준 치마폭에 쓴 ‘하피첩’ 부분. 경직의방(敬直義方), 공경한 자세로 자신의 마음을 바르게 하고 의에 입각해 자신의 외부 행동을 단속하라는 뜻이다. 주역의 한 구절이다. [중앙포토]


 ‘가계’는 1808년, 1810년 두 해에 유배지에서 두 아들에게 보낸 훈계의 글로 오래전 내가 옮겨 펴낸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에 모두 번역돼 있는데 하피첩의 내용과는 완전하게 일치한다. 그러나 하피첩의 사연은 의미가 너무 멋있다. “화(禍)와 복(福)의 이치에 대해서는 옛날 사람들도 오래도록 의심해 왔다. 충(忠)과 효도를 한다고 해서 꼭 화를 면하는 것도 아니고 방종하여 음란한 짓을 하는 사람이라고 꼭 박복하지만은 않다. 그러나 착한 행동을 하는 것은 복을 받을 수 있는 당연한 길이므로 군자는 애써 착하게 살아갈 뿐이다.” “너희들은 항상 심기를 화평하게 하여 벼슬길에 있는 사람들과 다르게 생활하지 말거라. 자손 대에 이르러서는 과거에 응할 수 있고 나라를 경륜하고 세상을 구제할 뜻을 두도록 마음을 먹어야 한다. 천리(天理)는 돌고 도는 것이니 한번 넘어졌다고 반드시 다시 일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폐족인 아들에게 보낸 금과옥조 같은 내용도 내용이려니와, 어머니의 치마폭에 아버지가 손수 쓴 정갈한 글씨의 솜씨에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정성이 통째로 담겨 있으니 세상 어디에 이런 사연의 글씨첩이 존재할 수 있겠는가. 본가에 보관돼 있어야 할 하피첩은 종적을 알 수 없어 아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후손들 이야기로는 6·25 전란 중 일실(逸失)됐다는데, 2006년 3월 28일 중앙일보에 하피첩이 발견됐다고 사진과 함께 보도되면서 세상에 다시 나타났다. 200년 전의 작품 사진을 보는 순간 와락 다산 선생을 만나보는 것 같은 착각을 느낄 정도로 우리를 매혹시켰던 기억이 생생하다.



 어머니의 치마에 쓰고 그린 아버지의 글과 그림은 자식들에게 더없이 귀중한 선물이니 이런 값진 글과 첩이 세계의 어느 곳에 또 있겠는가. 남편을 잊지 못하던 아내의 사랑도 절절하지만 사랑을 받은 남편은 아들에게 그 사랑을 더 크게 넘겨주었으니 얼마나 애틋하고 간절한 사연인가. 더구나 교훈적인 내용은 성현의 말씀에서 벗어나지 않는 잠언이자 인생을 이끌어줄 교훈으로 가득 차 있으니 그 값이 얼마나 높겠는가.



 2006년 이래 금융업에 종사하는 어떤 개인이 소장하던 하피첩은 소유자가 금융 사고를 일으켜 최근 몇 년간 채권담보물로 압류돼 수장고에 잠겨 있었다. 이제야 소송절차가 완료돼 마침내 하피첩이 채권자들을 위해 경매에 부쳐졌다는 도하 신문들의 보도가 나왔다. 며칠이면 누군가의 입찰로 소유자가 결정될 터인데, 도대체 어찌해야 할 것인가. 가장 옳은 길은 후손들에게 되돌려주는 것이겠지만 거액의 값이 걸려 있는 한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후손들이 되찾아 국민에게 돌려줌이 불가능하다면 길은 하나뿐이다.



 세계에서 유례가 드문 국보급의 하피첩인 만큼 국가나 정부, 아니면 공공 박물관이 매입해 국민의 품에 안겨주면 된다. 공공기관이야 다산의 본가 곁에 있는 실학박물관에 전시되는 것이 가장 최상의 길이다. 그런데도 실학박물관은 매입할 자금이 없다니 어떻게 하면 좋을까. 국민적 문화재를 아끼고 국민 학자를 존경하는 모든 국민이 일어나 국민 모금운동이라도 벌여 국민의 품에 안기면 어떨까. 이 아깝고 귀중한 보물을 행여 개인이 소유해 꽁꽁 숨겨두면 어떻게 될까. 우려 때문에 밤잠을 설치면서 강호제현들의 고견을 듣고 싶을 뿐이다.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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