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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희의 시시각각] 겨울왕국에 사는 우리 청년들

중앙일보 2015.09.09 00:35 종합 34면 지면보기
양선희
논설위원
영하 24.4도. 혹한이다. 최근 한 아웃도어 업체가 ‘마음의 온도’라는 걸 조사했더니 대학 4학년생의 온도가 이랬단다. 한국인 평균(영하 14도)과 대입 준비를 하는 고등학생(영하 16.6도)보다 훨씬 춥다. 취업에 대한 압박이 ‘인생의 봄’을 맞은 청년들을 ‘겨울왕국’에 살도록 한 것이다.



 대학 졸업과 취업은 누구에게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일 거다. 취업은 평생의 일과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한데 우리 청년들은 열정으로 맞아야 할 순간을 혹한의 냉기 속에서 맞는단다. 어느 사회나 청년은 ‘미래와 희망’이라며 치켜세우는데 혹한에 갇힌 그들이 과연 우리의 미래와 희망이 될 수 있을까. 우리는 과연 그들을 진정 미래와 희망으로 대접은 하고 있는 걸까.



 최근에 나온 청년취업과 관련된 정책·보고서·기사들을 쭉 훑어봤다. 요상하게도 내용보다는 숫자가 난무했다. 정부는 2017년까지 청년 일자리 20만 개를 만들겠다고 발표했고, 기업들은 이에 호응해 숫자로 답했다. 삼성은 2017년까지 3만 명, 현대차는 2018년까지 3만6000명, SK는 2만4000명….



 청년실업도 숫자로 설명된다. 7월 청년실업률 9.4%, 전체 실업률(3.7%)과 격차가 크다. 그나마 이 숫자도 시험 준비, 대학원 진학과 아예 구직 활동도 않고 교육·훈련도 받지 않는 일명 니트(NEET)족을 빼서 이 정도다. 니트족은 전체 청년 중 14.5%에 이른다. 취업의 질은 나쁘다. 직종별 청년취업비율을 보면 연구개발·컨설팅·보건복지·교육 등 전문직의 청년취업비율은 확확 주는데, 음식숙박업·농림어업만 늘었다. 20대 임금노동자 중 비정규직 비중은 47.4%다.



 물론 숫자는 모든 건 아니지만 많은 걸 설명해준다. 숫자로 본 우리 청년들의 현실은 암울하다. 한데 20여 년간 취재 경험으로 보면 어떤 사회 문제를 설명할 때 숫자가 난무하는 건 주로 자신도 없고 대책도 없을 때였다는 거다. 관공서들은 자신들의 무능을 가리거나 면피를 해야 할 때 숫자를 들이밀곤 했다. 가까운 예로 세월호 이후 국민안전처의 안전 대책 자료도 숫자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한데 추자도 낚싯배 사고에서 봤듯 뭐 하나 제대로 된 대책이 있었나.



 숫자는 꼼수를 부린다. 정부에 호응해 대기업들이 내놓은 희망적 숫자엔 인턴, 직업훈련, 협력업체 취업 지원 프로그램 등이 뒤엉켜 있어 내용은 별로 희망적이지 않다. 정부가 일자리를 개수로만 얘기하니 이런 성의로 포장된 꼼수는 계속 나올 것이고, 그리하여 질은 떨어져도 개수는 늘 것이고, 정부는 생색을 낼 거다. 물론 현재로선 뾰족한 수가 없다는 건 안다. 일자리 창출은 경제성장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기대난망이고, 노동개혁은 하긴 해야 하지만 그게 청년 일자리를 늘린다는 말은 실은 ‘수사학적 기대’에 불과하다.



 그런데 숫자 뒤에 숨으면 놓쳐선 안 될 현실을 놓칠 수 있다는 게 걱정이다. 요즘 일명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학생들 사이엔 공부 열심히 하는 친구에게 이런 농담을 한단다. “어차피 치킨집 할 건데….” SKY대생들도 미래와 관련해선 자부심도 희망도 갖기 힘들단다. 게다가 비전 없는 기성 사회는 ‘자소설’에 ‘열정페이’에 젊은 인재들을 남용한다. 우리 젊은 인재들이 이렇게 훼손되고 위축되는 현실을 숫자에 매몰된 정부 정책이 직시하고는 있을까.



 물론 청년 일자리 늘리기는 중요하다. 한데 숫자 맞추기가 다는 아니다. 젊은 인재들이 주저앉는 사회는 어차피 미래가 없다. 경제발전은 생산 늘리기, 많이 팔아 많이 벌기 같은 숫자 게임만은 아니다. 인적 자본 확충 없이는 어차피 경제발전도 없다. 지금은 청년 취업을 고용 정책 안에 묶어둘 게 아니라 경쟁력 없는 산업 정리와 새로운 먹거리 찾기 등으로 재원을 마련하고, 재원 일부는 청년 인재 육성에 돌아가도록 산업·경제 정책과 청년 정책을 맞물리는 ‘새로운 발상’과 ‘관점의 이동’이 필요한 때가 아닐까.



양선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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