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분수대] 지워지지 않는 과거

중앙일보 2015.09.09 00:31 종합 35면 지면보기
이상언
사회부문 차장
1885년 16세의 독일 청년 프리드리히 드룸프는 배에서 내려 뉴욕항에 발을 디뎠다. 여덟 살에 부친을 여의고 가난에 시달리다 선택한 길이었다. 고향 카를슈타트(독일 서남부 지역)의 어머니에게는 ‘신세계로 간다’는 쪽지를 남겨 놓았다. 독일의 항구에서는 미국에 여행 가는 것처럼 꾸민 서류를 냈다. 미국에서의 첫 직업은 이발소 ‘보조’였다. 6년 뒤 미국 서북부의 시애틀로 가 작은 식당을 열었다.



 입국 7년째인 1892년에 시민권을 신청해 미국 시민이 됐다. 그때 성(姓) 드룸프(Drumpf)를 트럼프(Trump)로 바꿨다. 모은 돈으로 싸구려 여인숙 사업을 시작했다. 가난한 이민자들이 무지갯빛 꿈을 안고 서부로 몰려드는 통에 수입이 짭짤했다. 운영하는 여관과 식당의 규모가 커졌다.



 미국 생활 15년 만에 재산을 처분하고 독일로 돌아가 고향 여인과 결혼했다. 그런데 병역회피 등의 혐의로 조사받게 됐고, 강제추방 형식으로 부인과 함께 미국으로 다시 왔다. 숙박업으로 더 큰돈을 모았고, 부동산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프리드리히 트럼프의 장남 프레드는 부친의 재력을 기반으로 부동산 투자 사업을 했다. 그의 부인 메리 앤은 스코틀랜드의 어촌 출신인데 1930년대 초반 뉴욕에 왔다가 프레드의 눈에 띄었다. 메리 앤이 뉴욕에 온 것을 트럼프의 집안에서는 ‘잠시 놀러 왔던 것’이라 설명한다. 하지만 스코틀랜드의 기근을 피해 이민을 시도한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프레드와 메리 앤의 아들이 바로 미국에서 연일 “불법 이민자를 몰아내겠다”고 외치는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다. 불법과 합법의 경계를 오가며 미국에 정착, 다른 이민자들에게 밥과 잠자리를 팔아 재산을 일구기 시작한 이의 자손이다. 그의 혈관에는 미국의 주류인 앵글로색슨의 피가 흐르지 않는다. 게르만과 켈트가 섞인 혈통이다.



 ‘한 많고 설움 많은 과거를 묻지 마세요’라는 노래도 있지만 과거는 역사고, 역사는 없던 일이 되기 힘들다.



 한국 법무부에 따르면 한국 정부에 난민 지위 인정을 요청한 시리아인은 1994년부터 지난 5월까지 713명이다. 내전 뒤에 부쩍 늘어나 2013년과 지난해의 신청자가 총 500명이 넘는다. 그런데 3명만이 난민으로 받아들여졌다. 한국전쟁 때 유엔은 ‘한국재건단’을 꾸려 구호활동을 벌였다. 많은 전쟁 고아가 해외로 입양됐다. 당시 40개국이 구호물자 지원에 나섰는데 시리아도 그중 한 나라였다.



이상언 사회부문 차장



▶ [분수대] 더 보기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