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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경 칼럼] 국정 교과서론 죽어도 정주영 못 만든다

중앙일보 2015.09.09 00:30 종합 35면 지면보기
이하경
논설주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전승절 70주년 열병식에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을 특별 게스트로 초대하면 좋았을 뻔했다. 1979년 미·중 수교의 물꼬를 연 92세의 노외교관이 천안문 성루에서 열병식을 참관했다면 미·중 대결이 아닌 우의가 부각되고, 오바마 대통령의 빈자리도 커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중국을 누구보다 잘 아는 키신저조차도 한때 중국의 현대화 전망에 대해 회의했다. 1985년 7월 키신저가 한국을 방문해 정주영 전경련 회장을 만났다. 키신저는 “중국이 공산주의체제를 계속 유지하면서 경제만 시장경제체제로 간다면 그동안 공산주의체제에 익숙했던 의식구조와 관행이라는 타성, 소득격차 확대에 의한 계층 간의 불만과 갈등으로 인한 사회불안이 야기되어 좌초될 수도 있다”고 했다.



 정주영은 “내 견해는 다르다”고 했다. 그는 “불과 반세기 정도 공산주의체제 속에서 살았다고 해서 이들 핏속에 뿌리 깊이 내려온 최고의 장사꾼 기질이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과정에서 다소 혼란과 차질은 겪게 되겠지만 앞으로 몇 십 년 안에 중국은 미국에 버금가는 세계 최고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할 것이다”라고 반박했다.(『이봐, 해봤어?』 박정웅) 중국은 G2 국가로 성장했고, 현대·기아차는 지난해 중국에서 자동차를 팔아 29조원을 벌었다. 정주영의 안목이 키신저를 이겼다.



 국민학교만 다녔지만 정주영은 자유분방한 상상력과 차원을 달리하는 통찰력으로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는 평소 “나는 재벌이 아닌 성공한 노동자”라고 했다. 남들이 규정한 정체성을 거부하고, ‘재벌=기득권층’이라는 고정관념을 해체했다. 두 차례에 걸쳐 소 1001마리를 몰고 판문점을 거쳐 북한 땅을 밟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발상하고 실행했다. 소떼몰이 방북은 우리를 괴롭힌 분단체제를 유쾌한 방식으로 야유한 일격이었고,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이라는 평화의 공간을 탄생시킨 남북화해의 장엄한 퍼포먼스였다. 그는 1001마리의 소와 함께 총 한 발 안 쏘고도 휴전선을 북으로 밀어 올린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참석은 주로 미국의 앞마당에서 안주하던 한국이 독자적인 역량으로 외교적 지평을 넓힌 다원 외교의 출발점이다. 복잡한 국제관계의 이해와 가치의 변주(變奏) 속에서 최적의 포트폴리오로 국익을 극대화하는 시대에 접어든 것이다. 그런데 이런 흐름과 충돌하는 뜻밖의 사건이 돌출했다. 정부·여당이 국사 교과서를 국정으로 전환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하나의 역사적 사실을 놓고 다른 관점에서 해석하고 토론하는 것은 문명국의 보편적 상식이다. 그래야 다원적 가치와 창조성, 상상력이 확대된다. 역사 해석의 권리를 국가가 독점하는 것은 이 모든 장점을 포기하자는 얘기다. 서울대 교수와 중·고등학교 교사, 교육감들이 반대할 만하다.



 지구상의 대표적인 국정교과서 채택 국가는 북한과 방글라데시, 일부 이슬람 국가들이다. 중국·러시아도 국정제를 폐지했고 베트남도 검인정으로 바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우리가 민주적 다양성과 개방성의 힘으로 세계 10위권의 경제강국이 됐는데 이제 와서 굳이 거꾸로 가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문화융성을 소중한 가치로 생각하는 박근혜 대통령은 전국에 창조경제혁신센터 17곳을 만들었다. 남과 달리 보고, 뒤집어 봐야 상상력이 꽃피고 창조가 이뤄진다. 아이들에게 정답만 달달 외우게 하면 막힌 사회, 죽은 사회가 된다.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네덜란드가 17세기에 해양강국이 된 것은 종교와 사상의 자유를 허용했기 때문이다. 근대철학의 아버지인 데카르트와 경험철학의 문을 연 로크가 조국인 프랑스와 영국을 떠나 망명한 곳도,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벤치마킹했던 나라도 네덜란드였다. 다양성과 관용은 이렇게 국가의 운명을 바꿔놓는다.



 문제는 분단체제다. 분단체제는 대결을 전제로 한다. 적을 눈앞에 두고 있으니 하나로 뭉쳐야 산다는 강박이 중력처럼 다양성의 비상(飛上)을 억압한다. 물론 국가안보에는 똘똘 뭉쳐 하나가 돼야 한다. 하지만 다른 분야에서까지 그럴 필요는 없다. 나와 달라 때론 불안하고 못마땅해도 다양성이 더 신나게 춤을 추도록 허용해야 한다. 그래야 전 세계의 인재와 자본을 끌어들이는 매력국가가 될 수 있다.



 정부는 현재의 검인정 교과서들이 편향적이고, 뉴라이트 계열 학자들이 만든 교학사 교과서 채택률이 0%인 것이 불만이다. 하지만 이런 문제점은 다른 방법으로 해결해야 한다. 당장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국가가 역사해석의 권리를 회수하는 것은 극단적인 처방이다. 정주영은 ‘달리 보기’로 세계적인 기업을 만들고, 남북화해의 이정표를 세웠다. 화가 났다고 북한식으로 가면 정주영은 죽어도 나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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