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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 1등의 책상] 수업 그대로 외워서 집에서 재현했죠, 수학 5등급→1등급

중앙일보 2015.09.09 00:02 Week& 2면 지면보기
용인 수지고 3학년 이세니양



이세니양은 선생님 수업을 집중해서 듣고 집에 돌아와 유리창을 칠판 삼아 들은 수업을 그대로 재현한다.




유리창에 쓰면서 설명하니 오래 기억
한눈에 보기 편하게 교과서에만 필기
집안일 돕는 고3…"그럴 때 노는 거죠"






용인 수지고등학교 3학년 이세니(18)양의 집에 들어서자 마커 펜으로 수학 문제를 가득 적어놓은 마루 유리창이 보였다. 엄마 이안옥(51)씨는 “우리 집 유리창이란 유리창은 모두 세니 연습장”이라고 말했다. 이양은 어릴 때부터 누군가에게 강의하듯 서서 공부를 했다. 이양의 방문을 여니 세계사 과목의 내용이 적혀 있는 유리창이 보였다. 책상 앞보다 유리창 앞에 있는 시간이 더 길다는 이양의 공부법을 알아봤다.





가르치기 좋아하는 성격 살려



수지고는 경기 용인시에 위치한 비평준화 고등학교다. 지역 명문고로 성적 경쟁이 치열하다. 그 속에서 이양은 조금씩 성적을 높여왔다. 1학년 때는 반에서 1등, 2학년 때는 문과 1등, 3학년 1학기에는 전교 1등을 했다. 주목할 만한 건 수학 성적이다. 1학년 땐 수학 5등급이었지만 2학년 2학기부터 1등급을 유지하고 있다.



이양은 초등학교 때부터 큰소리로 강의하듯 공부를 했다. 그러다가 중학교 2학년부터 마커 펜을 사서 유리창에 써가면서 강의를 시작했다. 이양은 “벽을 보면서 강의를 할 때보다 선생님처럼 마커 펜으로 적으면서 강의하니까 훨씬 재밌고 오래 기억에 남았다”며 “선생님 강의를 외워서 토씨 하나 빼먹지 않고 따라 하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고등학교에 올라와 수학 성적이 안 좋게 나오자 이양은 낙심했다. 그때 엄마 이씨가 수학도 다른 과목처럼 공부해보라고 권했다. 수학 과목만은 유리창이 아닌 문제집을 풀며 공부를 했는데 수학도 강의하듯 해보는 게 어떨까 했다. 그날 이후 이양은 수학의 개념부터 다시 공부하기 시작했다. 강의를 위해선 문제 풀이보다 개념을 잡는 게 먼저였다. 고1 겨울방학 때였다. 이양은 서두르지 않고 차분하게 기초 개념부터 다져나갔다. 그렇게 6개월 이상 하니 성적이 오르기 시작했다. 2학년 2학기 처음으로 수학 1등급을 받았고, 올해 3학년 1학기 기말시험도 1등급으로 마무리 지었다. 지난 7월 21일 방학식에서 경기도교육감상도 받았다.



이양은 교재를 꽂아두거나 EBS 강의를 들을 때만 책상을 쓴다. 안방 유리창 옆에는 학교에서 볼 수 있는 책걸상이 있다. 서서 강의를 하다가 막히는 문제를 급하게 풀 때 잠시 앉거나 교재와 학교 프린트물을 올려두는 용도다. 따로 노트는 만들지 않는다. 오답 노트도 없다. 수업 시간 필기는 무조건 교과서에 한다. 중학교 땐 노트를 만들었다. 하지만 만들 때만 예쁘게 공들이고 다시는 들여다보게 되질 않았다. 그래서 교과서를 펼치면 필기한 내용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전략을 바꿨다. 노트는 과감히 없애버렸다. EBS 강의를 중심으로 공부하는 이양은 EBS 강사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질문할 때도 큰 소리로 대답한다. 이양은 “유치원 때부터 인형을 앞에 두고 가르치는 걸 좋아했고 초등학교 땐 벽을 보고 얘기하면서 그날 공부한 내용을 정리했다”며 “선생님 강의를 그대로 재현하기 위해서는 수업을 열심히 들어야 해서 졸거나 딴 생각할 틈이 없다”고 했다.



강의는 시험 직전까지 단원별로 세 번씩 한다. 첫 번째는 수업을 듣고 나서 선생님의 강의 그대로를 재현한다. 막히는 부분은 암기가 덜 됐거나 이해를 제대로 못 했다고 보고 교재나 교과서를 보면서 이해될 때까지 읽고 쓰고를 반복한다. 두 번째 강의는 지난 강의 때 스스로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부분 위주로 압축해서 이야기한다. 첫 번째 강의가 40분 정도 걸린다면 두 번째 강의는 25~30분 정도 걸린다. 마지막 강의는 시험 직전에 하는데 핵심이라고 생각하는 부분들만 확인하는 방식으로 공부한다. 문제풀이를 안 할 수는 있어도 강의를 안 하는 일은 없다.



이양이 책상 앞에 앉을 때는 EBS 강의를 들을 때와 문제 풀이를 할 때뿐이다.


 

공부 방식 확고해 교사 엄마도 ‘노터치’



수지고는 1학년에 한국사 교육 과정이 있다. 평소 역사를 좋아하는 이양은 1년간 배운 내용을 점검해 보자는 생각으로 1학년 겨울방학에 한국사능력시험 1급을 땄다. 이양은 “한국사는 분량이 방대하고 조금만 소홀히 해도 금세 잊어버린다”며 “확실하게 공부를 해두고 중간중간 점검하듯 교재나 학교 프린트를 보면 확실히 기억에 오래 남아 따로 외우거나 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주말엔 그 주에 배운 내용 전부를 공부한다. 영어는 교과서를 읽고 유리창에 쓰면서 외운다. EBS 교재 지문에는 주제와 키워드가 다 담겨있다. 그래서 핵심 단어를 찾고 주제를 파악한 후 해석하는 순서로 공부한다. 이양은 “모르는 단어가 있으면 실생활에서 쓸 수 있는 예문으로 만들고 문장을 통째로 외운다”고 말했다.



사교육은 주 1회 집 앞 수학 학원에 가는 것과 중국어 학습지가 전부다. 중국어 학습지는 2년째 하고 있지만 중국어를 수능 제2외국어로 선택하지 않았다. 이양은 “중국어는 취미 같은 거”라며 “중학교 때 제2외국어로 배운 중국어가 재미있어서 그때부터 공부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좋아하는 중국어를 수능 제2외국어로 선택하면 좋은 성적을 올릴 법도 한데 취미는 취미로만 하고 싶단다. 이양은 “중국어가 공부해야 하는 과목이 된다면 그 흥미가 줄어들 것 같아서 선택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양의 수능 제2외국어 과목은 베트남어다.



엄마 이씨는 “세니에게 주요 과목이라는 의미는 별로 없다”며 “엄마가 교사여서 그런지 모든 과목이 다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골고루 공부 시간을 배분해 공부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고교 상업 교사인 이씨는 따로 문제집을 찾아주거나 학습 정보를 알아봐 주질 못한다. 어쩌다 엄마들 모임에 나가게 돼 정보를 얻어 와도 딸에게 환영받지 못한다. 이씨는 “남과 비교하는 걸 굉장히 싫어해서 누가 이런 방법으로 공부해서 도움이 됐다더라, 어디 학원이 좋다더라 이런 말에 꿈적도 않는다”며 “자기만의 확고한 공부 방식도 있고 진로에 대한 계획도 탄탄한 편이라 엄마의 역할이 크지 않다”고 했다.



노트를 따로 쓰지 않는 이양은 교과서와 EBS 교재에 강의 내용을 모두 필기한다.


 

저녁에 온 가족 대화 꽃피우는 집



올해 88세인 할머니와 함께 사는 이양은 학교 다녀오면 할머니와 함께 마늘을 까거나 빨래를 개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늦게 들어오는 부모님을 위해 라면을 끓이거나 간단한 간식을 만든다. 소위 ‘고3 대접’과는 거리가 멀다. 이양은 “그럴 때 조금씩 노는 거”라며 “가족들이 TV 보면 슬쩍 끼어서 보기도 한다”고 말했다. 사춘기를 큰 갈등 없이 넘긴 비결을 엄마 이씨는 ‘가족 간의 대화’로 꼽았다. 이양이 수행평가 때문에 줄넘기, 배드민턴, 탁구 등을 연습해야 할 때면 온 가족이 다 같이 집 앞으로 나간다. 이양은 “가족들이 함께 운동하면 재밌는 대화 소재가 생겨서 좋다”며 “모든 수행평가를 다 잘하기는 어렵지만 가족들이 함께하기 때문에 끝까지 즐겁게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학교에서 부반장인 이양은 매일 매 교시가 끝날 때마다 칠판을 닦는다. 성격이 밝고 긍정적이라 친구들 사이에 인기가 많다. 이양은 단 한 번도 휴대전화를 가져본 적이 없다. 이양 부모의 교육 철칙 중 하나가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휴대전화를 사주지 않는 거다. 이양은 “본래 없었기 때문에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다”며 “집으로 오는 전화는 다 내 전화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양의 꿈은 외교 관련 일을 하는 공무원이다. 그중에서도 문화재 환수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역사에 대한 공부도 남다르게 해왔다. 고1 때 교과서에서 우리 문화재를 수집하고 보존하는 간송 전형필 선생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자신의 꿈을 굳혔다. 이양은 “잃어버린 우리 문화재를 찾고 우리 역사를 지키는 일에 작은 보탬이 될 수 있다면 보람을 느낄 것 같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역사에 대해 더 많이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글=김소엽 기자 kim.soyub@joongang.co.kr, 사진=김경록 기자 kimk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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