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경차의 좌절

중앙일보 2015.09.07 18:29
심심하던 경차 시장에 최근 ‘스파크’(불꽃)가 튀었다. 지난달 경차 판매량을 집계한 결과 한국GM이 7월 출시한 신형 스파크가 6987대를 팔아 배기량 1000cc 미만 경차 시장 1위를 차지한 것이다. 6954대를 판 기아차 모닝이 2위, 1958대의 기아차 레이가 3위였다.



스파크가 모닝을 제친 건 2008년 이후 7년 8개월 만이다. 올 7월까지만 해도 시장점유율에서 모닝(58%)과 스파크(24%)가 ‘더블 스코어’였을 정도로 격차가 컸다. 그런데 단번에 순위가 바뀐 건 경차 시장에 변변한 신제품이 없어 그만큼 '신차 효과'가 커진 것이다. 스파크만 해도 2009년 이후 6년 만에 신차를 출시했다. 모닝ㆍ레이는 2011년 이후 신차 소식이 없다.



이남석 중앙대(경영학) 교수는 “자동차 제조사가 자사의 플래그십 세단인 중형ㆍ대형차나 인기몰이 중인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개발에 공을 들이면서도 상대적으로 경차 투자에 소홀하다”고 지적했다.



국산 경차 시장이 쪼그라들고 있다. 2012년 20만대를 넘겼던 경차 판매량은 지난해 18만6702대로 줄었다. 국산차 시장에서 경차의 점유율은 2012년 17.3%까지 치솟았지만 올 상반기엔 13.2%까지 떨어졌다. 경차가 자동차 판매의 40~50%를 차지해 ‘경차 천국’으로 불리는 유럽ㆍ일본과 비교된다. 일본의 경우 지난해 판매 ‘톱10’ 중 다이하츠 탄토(1위)를 포함해 경차가 7개다.



사실 경차는 요즘 트렌드에 딱 맞는 차다. 먼저 경제성이 좋다. 신차 가격은 1000만원 초반대다. 취·등록세도 안낸다. 배기량이 적으니 자동차세도 덜 낸다. 고속도로 통행료, 공영주차장 주차비도 50% 감면된다. 보험료 할인, 승용차 10부제 제외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혜택도 많다. 연비 좋고, 가벼워 ‘친환경’ 추세와 어울리는 건 덤이다. 3년 째 스파크를 타는 윤지나(33)씨는 “무엇보다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비율)가 좋다”며 “차로 과시할 생각 아니라면 경차만한 게 없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시장에서 경차 판매가 부진한 건 선택 폭이 좁아서다. 자동차관리법 시행규칙상 ‘경차’ 분류 기준은 ‘배기량 1000cc 미만이면서 길이 3.6m, 너비 1.6m, 높이 2m 이하인 차’다. 까다로운 기준을 넘겨 살아남은 경차는 국산인 기아차 모닝ㆍ레이와 한국GM 스파크 3종에 불과하다.



경차 사양이 높아지면서 가격 면에서도 매력을 잃고 있다. 신형 스파크 풀옵션 모델의 경우 가격이 1670만원에 이른다. 기본 옵션 준중형차 기준 현대차 아반떼 1.6 GDi(1384만원)나 르노삼성 SM3 1.6(1590만원) 보다 비싸다. 경쟁 차종이 많지 않아 가격을 높여도 웬만큼은 팔린다는 배짱이 숨어 있다.



배기량이 작아도 길이ㆍ너비ㆍ폭 기준을 일부 초과해 소형차로 분류되는 수입 경차 입장에선 억울하다. 피아트 친퀘첸토를 비롯해 푸조 108, 시트로엥 C1, 르노 트윙고가 대표적이다. 유럽에선 경차 혜택을 받으며 인기를 끄는 차종이지만 국내 판매량은 미미하다.



경차의 주 소비층인 2030의 구매가 줄어든 것도 경차 판매 부진의 원인으로 꼽힌다. 취업난이 장기화하면서 첫 차 구입 연령대가 올라갔고 ,덩달아 차급도 준중형급으로 바뀌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20대가 산 승용차는 10만9671대로 2013년(11만1558대)보다 1.7% 줄었다. 신규 등록차 중 20대 구매 비중도 같은 기간 9%에서 8%로 떨어졌다.



QM3(르노삼성)ㆍ티볼리(쌍용차) 같은 ‘소형 SUV’는 경차의 부진을 발판 삼아 ‘생애 첫 차’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2012년 첫 차로 준중형 SUV인 현대차 투싼을 산 김세영(33)씨는 “한 번 사면 10년은 타야 하는데 결혼ㆍ출산을 고려하면 30대에 경차를 끌기 어려워 SUV를 택했다”며 “디젤차라 기름값이 싸 유지비도 부담이 없다”고 말했다.



악재도 기다리고 있다. 세수가 부족한 정부는 경차에 대한 취득세 면제 조항까지 손보려 한다. 최근 논란 끝에 2018년까지 관련 조항을 유지키로 했지만 혜택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장담하기 어렵다. 자동차 업계에선 취득세(4%) 면제 혜택이 사라지면 32만~64만원의 세금을 부담해야 해 가격에 민감한 경차 소비자들의 수요가 15% 이상 줄어들 것으로 분석한다.



이남석 교수는 “케케묵은 경차 분류 기준이 현재 시점에 맞는 것인지 다시 한 번 따져봐야 한다”며 “경차 가격의 가파른 상승을 고려했을 때 경차 혜택도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대성 한국수입자동차협회 전무는 “2개 제조사가 과점하는 국내 경차 시장은 수입 경차에 대한 역차별”이라며 “경차 기준을 낮춰 소비자 선택 폭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