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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딜레마, 난민 받자니 반발 거세고 안 받자니 비난 받고

중앙일보 2015.09.07 17:08
“전쟁 영웅을 맞는 듯했다.”



근래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난민을 맞는 분위기다(영국의 데일리 텔레그래프). 터키 해변에서 숨진 채 발견된 시리아 난민 어린이 아일린이 실로 유럽인들뿐 아니라 세계인의 가슴을 녹였다.



독일 정부는 난민 지원을 위해 60억 유로(8조180억원)의 예산을 배정했다. 7일(현지시간) 심야 회의 끝에 2016년 연방예산에 30억 유로를 편성하고 난민을 실제로 수용하는 지방정부에 별도의 30억 유로를 지원키로 결정했다.



시리아의 지구 반대편인 칠레도 시리아 난민 가족을 수용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소 50∼100가구 정도다. 브라질·아르헨티나·우루과이·콜롬비아에 이어서다. 남태평양의 뉴질랜드도 향후 2년 6개월 동안에 시리아 난민 750명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유엔난민기구(UNHCR) 특사인 안젤리나 졸리 피트는 보스니아 난민 출신의 영국 상원의원인 아민카 헬리크와 함께 더타임스에 “더 나은 삶을 위해 떠난 난민들을 비난하지 말라”며 “유럽뿐 아닌 전세계가 해법 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글을 기고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6일 미사를 통해 “유럽 내 5만여 개 모든 가톨릭 교구가 난민 가족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바티칸 내 2개 교구도 조만간 시리아 난민 두 가구를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산술적으론 5만여 교구가 한 가구씩만 받더라도 최소 10여 만 명 난민이 살 곳을 찾게 된다는 얘기다.



그러나 각국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지속성에 대한 문제다. 가슴과 다른 ‘머리’의 문제다.



당장 빗장을 푼 독일 지방정부와 오스트리아에서 이틀 만에 손사래를 치고 있다. 독일 지방정부에 따르면 6일 1만3000여 명을 포함해 주말에만 2만 명 정도의 난민이 독일 땅을 밟았다. 뮌헨이 주도인 바이에른 주 오버바이에른 지역 대변인은 “난민 수용이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고 말했다. 오스트리아에도 5∼6일 이틀간 1만5000명 정도의 난민이 헝가리에서 넘어왔다. 베르너 파이만 오스트리아 총리는 6일 난민 허용이 긴급 조치라면서 단계적으로 국경을 통제하겠다고 밝혔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16만 명 규모를 EU 회원국들이 분산 수용하는 ‘난민 쿼터(할당)제’를 오는 9일 결정하려고 하지만 동·서 갈등이 심하다. 난민들이 몰리는 독일·프랑스 등 서유럽에서 밀어붙이지만 헝가리·폴란드 등 동유럽 국가들이 반발하고 있다. 대안으로 난민 몫을 강제로 할당하는 대신 난민 정착지원금을 낼 수 있도록 하는 ‘옵트아웃(opt-out)’ 안도 거론될 정도다. EU 차원에선 불법밀입국 중개조직 단속을 위한 15억유로(약 2조117억원) 규모의 기금을 조성하는 논의도 진행 중이다.



이런 인도주의적 조치들이 난민들의 유럽행을 부추긴다는 반론도 적지 않다. 이른바 ‘유발 효과’다. 바이에른주의 요아힘 헤르만 주정부 내무장관은 독일이 난민 허용으로 유럽에 잘못된 신호를 줬다고 비판했다. 영국은 이 때문에 아예 중동에 있는 시리아 난민 캠프에 있는 난민들을 영국으로 데려오겠다고 발표했다. 특히 부모를 잃은 어린이들을 우선하겠다는 입장이다. 난민들의 영국 사회 동화 문제까지 염두에 둔 조치다.



이런 가운데 중동 사정은 악화하고 있다. UNHCR 등 유엔 구호기구들이 폭증하는 난민들로 파산 위기에 처해서다. 안토니오 구테레스 UNHCR 최고대표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2010년에는 분쟁으로 하루 1만1000명이 피란한 반면 2014년에는 4만2000명이 집을 떠났다”며 “늘어난 난민 수를 예산이 감당할 수 없다. 우리는 지금 빈털터리”라고 말했다. 특히 식량과 의료품의 고갈로 레바논과 요르단 난민캠프에 수용된 시리아 난민 400만 명을 위한 기본적인 생필품 제공이 어려워졌다. 난민들의 유럽행이 더 거세지는 이유다.



결국 ‘평화로운 시리아’를 만들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곤 한다. 그간 이라크 내 ‘이슬람국가(IS)’에 대한 공습에만 참여했던 영국과 프랑스가 시리아 내 IS에 대한 공습에도 참여하는 안을 검토하고 있다. 조지 오스본 영국 재무장관은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정권과 IS 대응 문제를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라며 “평화로운 시리아를 만들기 위해 포괄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라크의 IS도 해결 못한 게 현실이다.



◇교황 vs 트럼프= 난민과 이민자 문제에 대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뚜렷한 주장은 미국 공화당의 경선후보 중 선두를 달리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에 타격을 입힐 수 있다고 정치전문지 폴리티코가 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오는 22일 미국을 방문하는 교황은 최초로 미 의회에서의 연설을 예정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미국의 행동은 전세계 다른 국가에 끼치는 영향이 큰 만큼 이민자에 대한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미국 내에서 일고 있는 이민자에 대한 강경규제론에 대해 우려하고 있는 교황은 실제 이번 방미 기간 중 미국과 멕시코 국경 방문을 검토했다고 한다. 국경에 대형 장벽을 쌓겠다는 트럼프를 직접 겨냥한 것이나 다름없다. 교황은 또 의회연설은 영어로 하지만 나머지 카톨릭 관련 행사에선 의도적으로 스페인어를 사용할 것으로 보인다고 폴리티코는 전했다.



런던=고정애 특파원,워싱턴=김현기 특파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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