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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일본의 칼, 중국의 주먹, 북한의 핵

중앙일보 2015.09.07 02:30 종합 34면 지면보기
장세정
중앙SUNDAY 차장
천안문(天安門) 성루(城樓)는 특별한 공간이다. 북·중 관계가 좋았던 1954년과 59년 김일성 주석이 마오쩌둥(毛澤東) 주석과 함께 열병식을 지켜본 장소다. 하지만 지난 3일 김 주석의 손자인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성루에 올라서지 못했다. 대신 대한민국의 박근혜 대통령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함께 그 자리에 당당히 섰다.







 그 광경은 한반도의 남북한과 미·일뿐 아니라 중국인들에게도 낯설고 신기했던 모양이다. 지금 중국인들은 시 주석과 박 대통령이 함께 웃으며 손을 흔드는 광경을 김 제1위원장이 몰래 망원경으로 노려보는 장면을 합성사진으로 만들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돌려보고 있다. 시진핑 체제 들어 불편해진 북·중 관계와 긴밀해진 한·중 관계 변화를 사진 한 장 속에 절묘하게 담아냈다.



 사실 시 주석과 박 대통령은 이번에 상당한 외교적 모험을 했다. 시 주석은 김 제1위원장이 아닌 박 대통령을 한반도에서 중국의 사실상 ‘우선협상 파트너’로 손잡았다. 말 그대로 역사적 제휴였다.



 박 대통령도 국내외의 적잖은 우려에도 중국행을 결심했다. 자연이든 인간사회든 국제질서든 끝없이 변화하기 때문에 현재에 안주하면 설령 큰 탈은 없겠지만 혁신도 발전도 기대하기 어려운 법이다. 통일의지가 강한 박 대통령은 변화를 과감히 활용하려 작심한 듯했다.



 일단 ‘고위험 고수익’ 원칙이 먹혔다. 열병식 외교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잠정 성적표만 보면 시 주석과 박 대통령이 수혜자다. 물론 비용 청구서를 잘 따져 봐야 할 것이다.



 국영 중국중앙방송(CC-TV)을 통해 전 세계로 생중계된 열병식을 보면서 낯익은 군사퍼레이드보다는 시 주석의 짧은 연설문이 더 강렬하게 다가왔다.



 시 주석은 “평화·발전이 이미 시대의 테마가 됐지만 세계는 여전히 평화롭지 못하다. 전쟁의 ‘다모클레스 칼(Sword of Damocles)’은 지금도 인류의 머리 위에 걸려 있다”고 역설했다. 디오니시우스 왕이 권좌를 탐하는 신하 다모클레스를 경고한 고대 그리스의 일화를 인용해 평화를 강조했다. 시 주석은 박 대통령의 등 뒤에 설치된 연단에 서서 오른손 주먹을 세 번 들어 올리며 “정의필승·평화필승·인민필승”을 외쳤다.



 전쟁을 가능케 하는 안보법안 개정을 강행하고 역사수정주의로 치닫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일본 정부에 대한 경고로 들렸다. 중국이 반대하는 핵실험을 강행해 온 북한의 추가 도발을 함께 염두에 뒀을 수도 있다.



 종전 70주년이 되도록 동북아와 한반도에는 평화는커녕 핵과 칼과 주먹이 지금도 위태롭게 오가고 있다. 평화를 강조한 열병식이 역설적으로 평화의 절실함을 일깨웠다.



장세정 중앙SUNDAY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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