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15년 전 인천 7세 여자아이 살해범, 잡힐 때까지 쫓는다

중앙일보 2015.09.07 01:51 종합 10면 지면보기
2000년 8월 5일 인천시 계양구 작전동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놀고 있던 A양(당시 7세)에게 한 남성이 다가왔다. 그는 A양에게 “백화점이 어느 쪽이냐”고 묻고는 갑자기 A양의 배를 흉기로 찌르고 달아났다. A양은 얼마 후 처음 놀던 곳에서 10m 떨어진 곳에 쓰러져 숨진 채 발견됐다. 성범죄나 금품을 훔쳐간 흔적은 없었다.


경찰, 미해결 사건 전담팀 구성
2000년 8월 이후 273건 재수사
국과수에 DNA 57건 감정 의뢰
그간 발전한 분석 기술이 희망



 ‘1m65~1m68cm의 키에 마른 체형의 20대 남성. 흰 상의와 검은색 하의.’ 경찰은 즉각 수사본부를 꾸리고 목격자들의 진술을 토대로 5000장의 몽타주를 만들었다. 목격자 대부분이 어린아이들이었다. 경찰은 지역의 마약사범과 정신이상자, 현장을 지나간 시민 1200명을 탐문 수사했다. 그러나 대부분 알리바이가 확실했고 시민들의 제보도 사건과 무관한 것이 많았다. 미궁에 빠져 있던 ‘작전동 A양 살인사건’은 공소시효(15년) 만료로 영구미제가 될 뻔했다. 하지만 살인죄의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태완이법’이 지난 7월 24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고 일주일 뒤 공포·시행되면서 언제든 범인을 잡기만 하면 처벌할 수 있게 됐다. 7월 31일 발효된 태완이법에 따라 2000년 8월 1일 이후 발생한 살인사건의 공소시효가 폐지됐다. 시효 만료를 4일 앞두고 A양 살인범을 계속 수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경찰이 273건의 미해결 살인사건 재수사에 나선다고 9일 밝혔다. 가장 신속하게 움직인 것은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미제전담팀이다. 지난 7월 28일 살인미제 사건 42건 관련 증거물 수백 점에 대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DNA 감정을 의뢰했다. 이 중 2006년 7월 초 서울 영등포구 노들길 인근에서 진모(여·당시 23세)씨가 살해된 채 알몸으로 발견된 ‘노들길 살인사건’이 대표적이다. 숨진 진씨의 코와 성기에 휴지가 들어 있었고 목 졸린 흔적이 있었다. 경찰은 당시 주변 CCTV를 모두 확인하고 1000여 명을 조사했으나 범인을 잡지 못했다. 경북지방경찰청 역시 최근 국과수에 ‘포항 토막 살인사건’ 등 15건의 미제 사건 증거물 분석을 요청했다. 포항 사건은 2008년 7월 포항의 지방도로 옆 갈대숲에서 사지가 토막 난 여성 시체가 발견된 것을 말한다.



 사건 발생 10여 년이 지나 범인을 체포하는 건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경찰은 진화하는 과학수사 기법에 기대를 걸고 있다. 임시근 국과수 법유전자과 신원확인정보관리실장은 “특정 DNA에서 추출할 수 있는 유전자 마커(감정기준)가 10여 년 전 8개에서 요즘엔 13개로 늘어 정교한 감정이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경찰은 공소시효가 사라진 만큼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체모·살점·지문 등 증거물에서 다시 DNA를 채취해 새 단서를 찾는다는 계획이다.



 2010년 ‘DNA 신원확인 정보의 이용 및 보호법’이 통과된 이후 20만여 건의 강력사건 범죄자 DNA가 축적된 것도 수사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대목이다. 미제 사건의 범인이 또 다른 범죄를 저질렀을 때 DNA프로필에 맞춰 용의자를 좁혀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임 실장은 “DNA로 인종과 혈액형 등 기본 정보를 확인할 수 있고 DNA를 계속 축적하다 보면 동일범이 저지른 범죄를 파악할 수 있어 수사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2008년 9월 인천의 산 중턱에서 발생한 50대 여성 살인사건의 범인 권모씨가 5년 만인 2013년 전주교도소에서 잡혔다. 다른 사건으로 수감된 권씨의 DNA가 살해 현장에서 발견된 담배꽁초의 DNA와 일치한 게 단서였다.



 살인사건 미제 해결을 위해 경찰청은 각 지방청에 미제사건전담수사팀을 만들고 현재 55명인 수사인력을 11월까지 72명으로 늘리기로 했다. 국과수는 기획재정부에 연구원 3명을 증원해 달라고 요청했다.



채윤경 기자 pchae@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