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김호정의 왜 음악인가] 슬픔·기쁨은 반대말이 아니다

중앙일보 2015.09.07 00:33 종합 32면 지면보기




김호정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동요 ‘반짝반짝 작은 별’은 장조일까 단조일까? 맞다, 너무 쉬운 문제였다. 답은 장조. 밝고 열린 느낌의 노래다. 그렇다면 ‘섬집아기’는? 어딘지 쓸쓸한 느낌이 드는 음악이지만 조성은 장조다.



 우리는 음악 시간에 이렇게 배웠다. ‘장조=기쁨’ ‘단조=슬픔’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둘이 반대인 줄 알았다. 한자로는 길고(장·長) 짧으며(단·短), 영어로도 크거나(major·장조) 작으니(minor·단조) 반대가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사실 장조와 단조의 차이는 미미하다. 음계에서 세 번째와 일곱 번째 음이 반음 높은가 낮은가 정도다. 모든 장조에는 단조 성질이 있다. 반대로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우리가 음악회장에서 잠시 조는 사이에 장조와 단조는 서로 침범한다. 베토벤 교향곡 7번의 2악장은 가단조로 시작한다. 곧 닥칠 비극을 태연히 예고하는 듯한 음악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첼로와 클라리넷이 단조 멜로디를 장조로 바꿔 버린다. 이후 밝은 느낌의 장조가 이어진다. 베토벤에게 왜 일관성이 없느냐고 항의할 수 있을까? 그럼 이런 질문만 돌아올지 모른다. ‘당신은 슬플 때는 슬픔만, 기쁠 때는 기쁨만 느끼는가?’









 장조와 단조가 서로 얽히는 것은 어색하지가 않다. 모차르트는 같은 멜로디를 한 번은 장조로, 한 번은 단조로 써가며 사람 감정을 가지고 놀았다. 그러니 모차르트 작품 중에 단조가 별로 없다고 이상해할 일은 없다. 그의 교향곡 40곡 중 단조는 두 곡뿐이지만, 장조 교향곡에도 이미 단조 성질이 들어 있었다. 또 바흐를 비롯해 수많은 작곡가가 단조로 시작해 이어지던 곡의 마지막 몇 마디, 혹은 맨 마지막 화음만 장조로 바꿨다. 작곡가들은 기쁨과 슬픔, 밝음과 어두움, 해피엔딩과 비극이 꼭 반대말이 아니라는 것을 얘기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또는 단지 몇 개의 음만 바꿔도 거기에 따라 달라지는 사람의 감정을 풍자하고 싶었을 수도 있다.













 또는 최근 어른들이 많이 봐서 화제가 된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의 내용을 작곡가들이 미리 말해준 것일 수 있다. 가장 반대될 것 같은 두 감정, 슬픔과 기쁨이 서로 의지해야 내면의 평화가 가능하다고 얘기하는 애니메이션이다. 세상에 반대라고 알려진 것 중 상당수가 그렇지 않을까. 남성과 여성, 가진 자와 빈곤한 자, 기성세대와 신세대. 얼핏 단순해 보이는 음악의 조성은 이렇게 인간의 세상을 담고 있다.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김호정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