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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슐랭 스타 셰프의 비밀 소스는 한국의 '장류'?

중앙일보 2015.09.07 00:02 주말섹션 7면 지면보기
한국의 발효식품은 면역기능 강화, 혈압 조절 등의 효과가 있다.



한국은 발효식품의 종주국
다양한 콩 반찬·양념
장시간 발효기술 보유
비타민B12·제니스테인 같은
각종 미량 영양소 풍부

미슐랭3스타 셰프인 키케 다코스타(스페인)가 한 달에 100여 통 수입해 쓰는 비밀 소스가 있다. 바로 한국의 대표 발효식품인 간장이다. 그는 간장뿐 아니라 된장·고추장도 즐겨 쓴다. 그가 한국의 장(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2011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코리안 컬리너리 랩(Korean Culinary Lab)’에 참가하면서부터다.



한국의 장을 맛본 다코스타는 “완전히 새로운 맛의 세계를 발견했다”며 “요리의 쓰고 비린 맛은 감추고 좋은 맛은 끌어올리는 매직 소스”라고 극찬했다. 다코스타뿐이 아니다. 세계 베스트 레스토랑 2위인 ‘엘 세예 데 칸 로카’의 호안 로카 셰프는 “일본에도 간장·된장이 있지만 최근 요리계에서는 일본 것보다 한국 것이 우월하다고 본다. 한국 장은 발효기간이 긴 만큼 맛이 깊고 다양하며, 자연스러운 맛을 낸다”고 평했다.



일본보다 500년 앞서 발효식품 만들어



한국 식품이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발효식품이다. 한국은 일본보다 500년가량 이른 기원전 200년부터 발효식품을 만들었다. 하지만 근대화하면서 기술투자가 부족해 일본에 발효 강국의 선두를 넘겨줬다. 하지만 원래 발효의 종주국은 한국이다. 한국의 전통음식인 간장·고추장·된장·김치 등은 모두 발효를 기본으로 한 음식이다.



한국에서 발효식품이 발달한 배경은 크게 두 가지. 첫째는 한국이 콩의 원산지였다는 사실이다. 만주에서 재배된 콩은 우리 음식의 근간이다. 콩은 쌀·보리 등 곡물에 없는 단백질을 보충하는 훌륭한 단백질 공급원이 됐다. 둘째는 음식을 다루는 지혜다. 발효는 균을 재료로 한 과학이다. 메주를 만들거나 간장·된장을 발효시킬 때 온·습도가 조금만 안 맞아도 잡균이 자라 부패한다.



우리 장은 가장 짧은 간장이 3개월, 된장은 4개월, 고추장은 최소 6개월의 발효시간이 필요하다. 종갓집처럼 장 담그는 노하우가 있는 곳은 장을 5년, 10년, 20년까지도 발효숙성시킨다. 한국장류기술연구회 신동화 회장은 “긴 기간 발효 숙성시키기 위해서는 많은 노하우가 필요하다. 장을 담그는 과정, 재료의 비율, 용기 등이 모두 과학”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오래 발효시키다 보니 단맛·신맛·짠맛·떫은맛·매운맛·감칠맛 등 조화미가 생긴다. 일본의 기코망 간장, 태국의 스위트 칠리소스, 홍콩 이금기의 XO소스, 영국의 A1소스 등이 달거나 짠 특정한 맛을 부각시킨다면 한국의 장은 음식에 스며 요리의 좋은 맛을 부각시키고 부정적인 맛은 상쇄시키는 은근하고 오묘한 기능을 한다.



 

발암물질 차단, 소화·면역 기능 향상



최근에는 발효식품의 우수한 생리활성 작용이 이목을 끌고 있다. 영양학자들이 주목하는 첫째 효능은 풍부한 미량의 영양소다. 전북대병원 기능성식품임상시험지원센터 채수완 교수는 “콩을 발효한 된장·고추장·청국장에는 기존 재료에 없는 다양한 비타민과 미네랄이 생긴다”고 말했다.



영양 성분의 흡수 및 이용성도 증대된다. 콩을 발효하면 이소플라본이 분해돼 체내 흡수율과 이용률이 높아진다. 단백질도 흡수되기 쉬운 형태로 변한다. 제니스테인 등 항산화 물질도 증가한다. 이들은 발암성 물질을 차단해 암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



발효식품은 소화 기능도 향상시킨다. 채 교수는 “발효식품에는 소화 방해 물질인 트립신억제제·렉틴 등을 분해하는 물질이 들어 있다. 된장·청국장을 먹으면 소화가 잘되고 속이 편한 이유가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면역기능 개선 효과도 있다. 된장의 면역조절물질이 자연살해세포(NK세포)의 활성을 크게 높인다. 또 혈소판 응집을 저해하는 항혈전 펩타이드는 혈류 개선에 도움을 주고 혈압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 최근 멜라토닌과 트립토판이 발견되면서 숙면을 돕는다는 연구결과도 발표됐다.





김치 발효 과정에서 유산균 크게 증가



장류와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또 하나의 발효식품이 있다. 바로 김치다. 우리 김치는 단순히 소금에 절이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배추에 고추·마늘·생강·젓갈 등 각종 부재료를 넣고 발효시켜 전혀 새로운 식품을 탄생시킨다. 이 과정에서 동물성 식품에서 주로 섭취할 수 있는 아미노산과 비타민 등도 생긴다. 유산균도 크게 증가한다(1g당 1억 마리). 부산대 식품영양학과 박건영 교수는 “김치를 발효시킬 때 나오는 각종 생리활성 물질이 나트륨의 혈관 수축 효과도 상쇄시킨다”고 말했다. 오히려 김치를 먹은 후 혈압과 콜레스테롤 수치가 낮아졌다는 연구도 여럿 있다. 하지만 이런 발효식품의 무한한 가능성에도 아직 갈 길은 멀다. 세계화의 가장 큰 장애물은 ‘균일화’다. 신 회장은 “온·습도를 맞추고 균주를 제어해 맛과 품질을 일정하게 하는 데 많은 기술투자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배지영 기자 bae.ji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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