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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남자도 예뻐야 산다

중앙일보 2015.09.05 00:02 종합 27면 지면보기
전수진
정치국제부문 기자
‘북한 꽃미남 군인, 짧아진 소매 걷어 올린 채 왼쪽 가슴엔…’. 이런 온라인 기사가 있다면 클릭하시겠는가. 호기심보단 의구심이 일 것이다. ‘북한+꽃미남’부터가 낯선 조합이니까. 이건 어떠실지. ‘북한 고려항공 스튜어디스 5인방, 짧아진 치마, 왼쪽 가슴엔…’. 지난 1일 온라인에서 대박이 난 실제 기사 제목이다.



 사진 속 북한 여성들, 참 예뻤다. 하지만 기자는 그 사진이 슬펐다. 북한 여성의 미(美)는 한민족으로서 자랑스럽다. 친가·외가 모두 북녘 출신인 터라 ‘남남북녀’에 토 달 생각도 그다지 없다(위 사진은 부러 안 예쁜 걸로 골랐다).



하지만 허벅지를 드러내고 새빨간 립스틱을 바른 채 체제 선전을 위해 자신의 미모를 기꺼이 던진 북한 여성은 안쓰러웠다. 내놓을 것이 마땅치 않은 곳일수록 여성의 아름다움을 팔기 때문이다. 지혜의 보고(寶庫) 탈무드도 “어떤 남자도 여자의 요염한 아름다움에는 저항하지 못한다”고 했다. 북한 노동당 선전선동부는 이 사진이 남녘에서 열광적 클릭을 이끌어낼 것을 계산하고 내보냈을 터다. 이 작은 선전전에서만큼은 북한이 완승했다.



 하긴, 북한뿐이 아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취재 현장에서 마주친 중진국 이하(한국 포함) 주최 행사의 안내요원들은 대개 ▶20대 ▶진한 화장 ▶미니스커트 3종 세트를 갖추고 손님을 맞았다. 어떤 유럽계 여성 IOC 위원이 사석에서 “이건 일자리 남녀평등 원칙에 위배된다”는 뼈 있는 농담을 던졌을 정도다.



 작가·미술평론가 존 버거는 『다른 방식으로 보기(Ways of Seeing)』에서 누드(nude)와 네이키드(naked)의 차이를 짚었다. 헐벗은 상태인 건 같지만, 누드는 남의 시선 속에서 ‘보이는 것’을 의식하는 것이다. 단순 벌거숭이인 네이키드와는 다르다. 여성에게 누드가 강요돼 온 역사는 유구하지만 21세기 하고도 15년이 지난 지금은 상황이 살짝 변했다. 여성도 ‘보이는 객체’에서 ‘보는 주체’로 권력을 시나브로 획득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도 이젠 안다. 남성도 예쁘고 아름다울 수 있으며, 남성의 매력도 상품화할 수 있다는 것을. 부인하고 싶다면 텔레비전을 틀어보시라. 피부를 하얗고 촉촉하게 연출하는 파운데이션을 남성 아이돌 가수가 남성 시청자를 상대로 판촉하는 시대다. 북한에도 언젠가는 그 바람이 불 것이다. 그렇다고 꽃미남 군인을 찾아서 상의를 탈의시키진 않았으면 한다. 여성은 일부 남성과는 달라서, 즉각적이고 말초적 자극엔 크게 흔들리지 않으니까.



전수진 정치국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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