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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비상문 있을 자리에 광고판 … 전동차 탈출 통로가 없다

중앙일보 2015.09.03 01:12 종합 12면 지면보기
광고판 막힌 강남역, 비상문 있는 신논현역 스크린도어는 승객이 타고 내리는 도어, 도어와 도어 사이의 안전보호벽으로 구성된다. 안전보호벽은 ‘비상문’ 역할도 한다. 왼쪽 사진의 서울지하철 강남역은 스크린도어 안전보호벽의 절반 정도가 안에서 열 수 없게 돼 있고 광고판까지 설치돼 있다. 반면 오른쪽 사진의 신논현역은 모든 안전보호벽이 비상시 중간에 달린 빨간 ‘푸시 바’를 밀고 밖으로 탈출할 수 있게 돼 있다. [오종택 기자]


국민권익위원회가 “지하철역 스크린도어에 대형 광고판이 설치돼 비상시 탈출 통로로 이용할 수 없는 등 이용 승객의 안전이 우려된다”며 개선을 권고했다. 하지만 서울시와 서울메트로·도시철도공사 등은 5개월이 지나도록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스크린도어 옆 보호벽 가로막혀 열차 정위치 못 설 때 탈출 못 해
“고정식 벽, 개폐식으로 고쳐라” … 권익위 권고에도 별 조치 안 취해



 2일 국민권익위 등에 따르면 권익위는 지난 4월 ‘철도 승강장 스크린도어 안전관리 강화’ 권고안을 의결하고 국토교통부 장관, 지하철 감독기관·운영기관장에게 스크린도어 개선을 권고했다. 권익위는 “서울메트로 등 스크린도어 설치 운영기관 대부분이 긴급 탈출 통로인 안전보호벽 일부 벽체를 광고 수익사업에 활용하는 등 안전을 외면하고 있다”며 “정비 계획을 마련하고 시정 조치하라”고 명시했다. 권익위 관계자는 “광고판을 제거하는 것은 물론 스크린도어 전체를 비상 개폐가 가능하도록 해야만 사고가 났을 때 신속한 탈출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스크린도어는 열차가 도착하면 승객들이 타고 내리는 ‘도어’ 부분과 도어와 도어 사이의 ‘안전보호벽’ 등으로 구성돼 있다. 안전보호벽은 단순히 승객들의 철로 추락을 방지할 뿐 아니라 비상시 내부에서 열고 탈출할 수 있는 탈출 통로로도 활용된다. 화재나 고장 등으로 열차가 정위치에서 멈추지 못하고 열차 출입문이 안전보호벽 위치에서 멈출 경우 수동으로 해당 부분을 열고 탈출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안전보호벽에는 손으로 밀면 벽을 열 수 있는 ‘푸시 바(push bar)’나 ‘손잡이’ 등이 붙어 있다. 서울 지하철의 경우 모두 푸시 바 방식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서울 지하철역은 안전보호벽 절반 정도를 비상 개폐가 불가능한 투명 벽 형태로 설치해놨고, 이 투명 벽을 광고판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비상시 광고판이 설치된 벽으로는 사람이 탈출할 수 없다. 대신 광고판이 없는 다른 출구를 찾아 돌아나와야 하는 것이다. 지난달 29일 열차 정비업체 직원 사망사고가 일어난 서울 강남역 승강장 역시 전체 안전보호벽의 절반 정도에 대형 광고판이 설치돼 있다. 또 부산교통공사는 비상 개폐장치가 있는 안전보호벽을 일부 폐쇄하고 광고 수익을 위해 광고판을 부착해 운영하기도 한다는 게 권익위의 설명이다.



 공간설계 전문가인 최성호 한양사이버대 교수는 “전동차에 화재가 발생하거나 강남역 사고처럼 사람이 스크린도어 안에서 작업 중 위험에 놓일 경우 단 몇 초라도 탈출이 늦어지면 생명이 위험해진다”며 “안전보호벽이 고정식 벽 형태로 돼 있고, 그곳을 다시 광고판이 덮고 있다면 당연히 탈출이 늦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해 5월 서울 상왕십리 열차 추돌사고 당시 전동차 출입문이 스크린도어와 맞지 않은 채로 멈춰 승객들이 대피에 어려움을 겪었다. 국토부가 2010년 고시한 ‘도시철도 정거장 및 환승·편의시설 보완 설계 지침’에는 “차량이 정위치에 정차하지 못한 상태에서 화재 등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를 대비해 (스크린도어의) 모든 문이 비상 개폐될 수 있도록 한다”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서울 지하철 스크린도어는 이 기준을 따르지 않고 있다. 권익위의 권고 이후에도 별다른 조치가 나오지 않고 있다. 서울도시철도공사 측은 “스크린도어를 2010년 이전에 설치했는데 당시엔 관련 기준이 없었고, 현재는 예산 문제 때문에 당장 개선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며 “12월 광고 계약이 종료되면 국토부 측에 예산을 요청해 개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서울메트로 측도 “개선 권고를 받은 건 맞지만 광고 계약도 걸림돌이고, 광고판을 없애면 연간 수백억원의 손실이 발생해 당장 모든 역을 개선하기엔 어려움이 있다”며 “국토부, 서울시 등과 논의해 점진적으로 개선할 방침”이라고 했다.



글=윤정민·장혁진 기자 yunjm@joongang.co.kr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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