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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균 칼럼] 권력의 극적인 순간

중앙일보 2015.09.03 00:26 종합 35면 지면보기
박보균
대기자
천안문(天安門)은 상징이다. 중국은 그곳에서 역사와 신화를 연출한다. 신중국(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이 선포된 곳이다. 1954년 천안문 성루(城樓)에 마오쩌둥(毛澤東)과 김일성이 섰다(건국 5주년 열병식). 성루가 내뿜는 이미지는 직설이다. 두 나라 지도자는 혈맹을 과시했다. 그곳은 북·중 관계의 심리적 요새였다.



 그 후 61년, 천안문은 새로운 상징이다. 그곳 열병식 광경이 바뀐다. 3일 중국의 항일전쟁 승리 70주년(전승절) 행사에서다. 길이 66m 성루 한복판은 시진핑(習近平) 주석이다. 그 중심에 박근혜 대통령이 선다. 망루의 풍경은 선언적이다. 박근혜 정권의 극적인 순간이 펼쳐질 것이다. 리허설부터 유쾌한 도발로 작동한다. 김정은 체제는 상실감에 젖을 것이다. 기억 속 그 요새는 허물어진다.



 전승절 열병식은 미묘하게 전개된다. 항전 노병부대가 등장한다. 그 대오에 동북항일연군 출신들이 있다. 동북연군은 김일성의 항일 빨치산부대와 깊이 얽혀 있다. 2010년 8월 국방위원장 김정일은 중국 지린·하얼빈의 동북항일연군 유적지를 찾았다. 정상회담에서 김정일은 “이곳은 김일성 동지가 중국 혁명가·인민들과 굳게 손잡고 혁명투쟁을 벌인 고장”이라고 했다. 주석 후진타오(胡錦濤)는 “김일성 주석 동지의 혁명 발자취가 역력히 어려 있다”고 답했다.



열병식은 오성홍기(五星紅旗) 게양으로 고조될 것이다. 마오쩌둥의 북·중 연대감 언어는 흥미롭다. “오성홍기에 조선의 공산주의자·인민들의 피(鮮血)가 스며 있다.”(북한 외국문 출판사 『조중친선은 세기를 이어』). 그것은 감사 표시다. 일본 패전 뒤 마오의 공산당은 장제스(蔣介石)의 국민당 군대와 싸웠다. 김일성은 소총 10만 정을 지원했다. 나진에서 철수한 일본군(19사단 주둔)이 포기한 무기다.



 천안문 풍광은 절묘함을 예고한다. 오성홍기, 성루 위 박 대통령, 동북항일연군 노병. 그 요소들이 결합된다. 그 장면은 북·중 선대(先代)의 인연을 격렬하게 깰 것이다. 북한 대표는 최용해 노동당 비서다. 그의 아버지 최현(70년대 인민무력부장)은 동북항일연군 일선 지휘관이었다. 최용해도 성루에 선다. 그 위치는 중심과 떨어질 것이다. 그 모습은 격세지감의 소품이다.



 북·중 관계는 불신과 냉각이다. 그 상황은 2013년 2월 북한의 3차 핵실험에서 비롯됐다. 그때 김정은 정권은 오판했다. 중국이 묵인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시진핑 주석 시대는 다르다. 시진핑은 ‘중국 몽(夢)’을 외쳤다. 대외정책은 재정비됐다. 북한 핵에 대한 전략적 태도가 바뀐다. 절제와 내실의 도광양회(韜光養晦) 시절과 달라졌다. 그때 중국은 북핵을 용인했다. 미국을 막는 방파제로서의 가치 때문이다. 하지만 신형대국의 굴기(<5D1B>起) 시대다. 북한 핵무기는 장애물이다. 북한 핵실험은 일본의 핵무장을 자극한다. 시진핑 외교의 구도는 동북아의 맹주다. 한·미·일 3각 체제를 흔들어야 한다. 이를 위한 선결과제가 한국과 긴밀한 공조다. 북한의 핵 욕망을 통제해야 한다. 2일 박근혜·시진핑 회담의 초점은 한반도의 비핵화다.



 시진핑 외교는 실리와 대세를 조합한다. 권영세 전 주중 대사의 진단은 명쾌하다. “중국이란 항공모함은 크면서도, 유연하고 민첩하다. 중국은 실용성을 무섭게 추구한다.” 김정은 정권은 중국의 실용적 변신에 둔감하다.



 전승절은 거대 중화(中華) 부활의 선포식이다. 외국 참관자의 구성은 빈약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참석한다. 그곳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없다. 영국·독일·프랑스 정상도 오지 않는다. 일본은 거부했다. 그 때문에 박 대통령의 존재는 더욱 강렬해진다. 빛이 선명하면 그림자가 생긴다. 한국의 부담은 중국에 기울었다는 경사(傾斜)론이다. 베이징대 량윈샹(梁雲祥) 교수는 “박 대통령 참석은 ‘한 덩어리 철판’(鐵板一塊) 같다는 한·미 동맹을 타파하는 것”(홍콩 명보 8월 26일자)이라고 했다. 일본은 미·일 동맹 강화의 호재로 삼는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박 대통령의 참석 의미를 “충분히 이해한다”(sufficient understanding)고 했다. 하지만 워싱턴은 한·중 밀착을 경계한다.



 권력의 절정은 외교·안보로 장식된다. 대통령 지지도는 크게 올랐다. 그것은 북한 지뢰 도발의 대응 태세 덕분이다. 박 대통령의 원칙과 단호함은 돋보였다. 그때 주한미군은 대북 압박의 결정적 자산이었다. 한국의 우선 과제는 북한 핵무기 차단이다. 북한은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것은 ‘절대’에 가깝다. 중국도 난감해 한다. 중국의 입장은 현상 유지다. 한·미 동맹은 단단해야 한다. 한·미·일 3각 체제는 유용한 수단이다. 박근혜 외교는 도전과 대담함으로 무장했다. 그 속에 실리와 유연함도 풍부해야 한다. 외교의 다양한 면모가 극적 순간을 국정 성취로 만든다.



박보균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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