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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적이라고 하기엔 복잡미묘하더라”

중앙일보 2015.09.03 00:25 종합 35면 지면보기
고정애
런던특파원
하이삼 하사네인. 이집트 청년이다. 이름은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그는 이스라엘의 텔아비브대를 졸업했다.



 이집트-이스라엘의 병치가 이질감을 줄 수 있겠다. 맞다. 그가 텔아비브대에 진학한다고 했을 때 가족들이 말렸다. 어머니는 공포를 느꼈다고 한다. 이집트인이라면 누구도 이스라엘을 향해 터럭만큼의 호감도 없었다.



 두 나라는 네 차례 전쟁을 벌였다. 그중 1967년 6일 전쟁과 73년 욤 키푸르 전쟁이 있다. 6년 사이의 전쟁은 너무도 달랐다. 6일 전쟁은 말이 6일이지 실제론 3시간 만에 이스라엘 공군이 이집트 등 아랍 4개국 공군을 절멸시켰다. 73년엔 이스라엘의 마지노선인 바레브선이 이집트군에 의해 무너졌다. 잊기엔 오래지 않았고 또 치명적이었다. 여기에 팔레스타인 문제까지 겹쳤다.



 하사네인도 텔아비브 공항에서 “왜 왔느냐”는 질문을 받곤 농반진반으로 “유대인들이 나쁘다고 해서 진짜로 그런가 해서 왔다”고 답했을 정도였다.



 그런 그가 달라졌다. ‘친이스라엘’이 됐고 졸업연설을 통해 밝히기까지 했다. 유대인·무슬림·베두인·기독교인이 뒤섞여 사는 다원주의적인 이스라엘을 봤기 때문이라고 했다. 일화도 소개했다. 한 아랍계 이스라엘인 여학생이 “아랍국가들이 이스라엘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을 벌여야 한다”는 열변을 토했다고 한다. 지나가던 8살 꼬마가 여학생의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유대인 제자였다. 여학생도 반겼다. 마치 누나·동생 같았다. 그는 “분쟁이 아무리 깊은들 인간애가 앞서더라”고 말했다. 그러곤 이런 얘기도 했다. “삶은 역설과 복잡다기함으로 가득하다. 어느 것 하나 간단하지 않더라. 때때로 보이는 게 다도 아니더라. 아무리 경험이 많고 많이 배웠더라도 더 깊이 고민해야 한다.”



  일본이 떠올랐다. 우리에게 누군가 “일본과 북한이 축구시합을 하면 어디를 응원하겠는가”라고 묻는다면 100에 99는 일본을 선택하진 않을 게다. 정서적으론 일본이 적성국이다. 그러나 동해안의 대포 한 문도 남동쪽을 향하고 있지 않은 게 현실이다. 안보에선 일본은 우방에 가깝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행보나 극우 신문인 산케이의 기사가 논란이 되곤 하지만 그 아베의 안보법안에 반대해 거리에 나선 일본인이 12만 명인 것 또한 사실이다. 또 아베의 과거사 행보에 냉소적인 무라카미 하루키도 있다. 그저 미워하고만 있기엔 일본은 단순치 않다. 하사네인에게 이스라엘이 그렇듯 말이다.



고정애 런던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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