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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습지에 수시로 악어 출몰, 멸종 위기 38종 사는 ‘야생의 보고’

중앙일보 2015.09.03 00:01 Week& 4면 지면보기



중앙일보·미국관광청 공동기획│미국 국립 공원을 가다 ⑨ 에버글레이즈 국립공원





































에버글레이즈 국립공원을 대표하는 야생동물은 악어다. 작은 연못에 떠 있는 앨리게이터 악어.




플로리다주에 있는 에버글레이즈(Everglades) 국립공원은 희귀한 습지 국립공원이다. 미국 국립공원 대부분이 산악 지역에 있어서 에버글레이즈 국립공원은 더욱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플로리다는 미국 남동쪽에 툭 삐져나와 있는 반도다. 이 반도 끄트머리에 국립공원이 6104㎢의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이 넓은 땅의 해발고도는 불과 0~2.5m. 완벽한 평지에 가까운 지형에 물이 잔뜩 고여 있다. 아열대 몬순 기후에 해수와 담수가 섞인 독특한 자연환경은 수많은 생물의 안식처가 되기도 한다. 이제껏 소개했던 미국 국립공원과는 또 다른 야생동물의 천국이자 자연의 보고다.





유네스코와 람사르가 함께 지키는 습지





에버글레이즈 국립공원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습지다.




자료 조사를 위해 에버글레이즈 국립공원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그러나 어렵게 찾은 최신 안내책자가 2007년 겨울 버전이었다. 지난 8년간 이 공원에는 어떤 변화도 없었던 걸까? 국립공원의 모토가 ‘있는 그대로’인 건 알았지만, 그래도 8년이면 길도 내고 각종 편의시설을 늘리고도 남는 세월 아니던가. 설령 달라진 게 없어도, 숫자만이라도 ‘07’에서 ‘15’로 바꿀 수 있지 않나 싶었다.



안내책자에는 반갑지 않은 정보가 또 있었다. 우기인 5~10월에는 모기가 많으니 단단히 준비하라는 말이었다. 모기에 물리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려울 수 있다는 친절한 설명도 덧붙였다. 안내에 따라 공원 앞 마트에 들러, 초강력 모기 기피제를 사들고 공원을 찾았다.



오래된 안내책자와 모기는 달갑지 않았지만, 국립공원의 역사와 생태는 충분히 흥미로웠다. 에버글레이즈가 국립공원이 된 것은 1947년이다. 당시 헨리 트루먼 33대 미국 대통령은 “이곳에는 우뚝 솟은 봉우리도 거대한 빙하도 없다. 단, 다른 곳에는 없는 습지의 적막한 아름다움과 독특한 동식물이 만들어낸 장관이 있다”고 소개했다.





멸종위기종 매너티도 공원 안에 많이 산다. 우리말로 ‘바다소’라 부른다.






플로리다 퓨마. 플로리다주에 약 160마리가 산다.




북미 최대 습지는 국제기구도 함께 지키고 있다. 76년 유네스코는 에버글레이즈를 생물권 보존지역으로 지정했고, 3년 뒤에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했다. 87년에는 람사르 습지로 등재되기도 했다. 한국에도 람사르 습지인 우포늪이 있고, 넓은 갈대 숲을 품고 있는 순천만이 있지만 에버글레이즈는 상상력을 뛰어넘는다. 단지 규모 때문이 아니다. 이 넓은 땅에 수백 종의 생물이 살고 있다. 매너티, 플로리다 퓨마 등 멸종위기종 38종은 더욱 각별하게 보호하고 있다.



에버글레이즈는 스펀지처럼 많은 물을 머금고 있다. 플로리다 중부의 수많은 강에서 흘러든 물과 우기에 내린 비가 습지를 만들고, 이 물이 멕시코만(灣)과 플로리다만으로 빠져나간다. 한데 최근 들어 플로리다주의 인구가 하루 800명 꼴로 급증하면서 습지로 들어오는 물이 줄고 있다고 한다. 플로리다주에는 올랜도·마이애미 등 관광객 수천만 명이 찾는 도시가 있어 물 사용량이 급증하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구 온난화로 해수면까지 상승하고 있다. 국제기구와 시민단체가 에버글레이즈 습지 보호에 발 벗고 나서는 이유다.





악어를 보며 걷다





광활한 국립공원을 조망할 수 있는 샤크밸리 전망대.




국립공원은 크게 네 지역으로 나뉜다. 같은 습지이지만, 지역마다 미묘하게 다른 생태와 풍광을 품고 있다. 북동쪽 샤크 밸리(Shark Valley) 지역은 마이애미에서 자동차로 45분 거리로, 비교적 가까운 편에 속한다. 여기서는 차를 몰고 공원 안쪽으로 들어갈 수 없다. 방문자센터에서 11㎞ 남쪽에 있는 전망대까지 도로가 하나 있는데, 공원에서 운영하는 관광용 트램과 자전거만 다닐 수 있다. 20m 높이의 전망대에 오르면, 지평선 끝까지 뻗은 광활한 습지를 볼 수 있다. 습지를 가득 채운 건 억새과의 풀 ‘소그래스(Sawgrass)’다. 이따금 새가 날면 모르겠지만, 오브제(Objet)가 없는 평평한 습지여서 큰 감흥이 없다는 사람도 있다.





에버글레이즈에서 가장 인기 있는 레저는 카누다.




북서쪽의 걸프 코스트(Gulf Coast) 지역은 맹그로브 나무가 우거져 있고, 섬 1000개가 점점이 흩어져 있다. 하여 보트나 카약, 카누를 타고 맹그로브 숲과 섬을 누비며 다닌다. 흰머리독수리·펠리컨 등 새가 많고, 매너티도 자주 출몰한다.



국립공원 본부가 있는 어니스트 코(Ernest F. Coe) 방문자센터를 지나 남쪽의 플라밍고(Flamingo)까지는 도로가 잘 나 있고 볼거리가 많아 방문객에게 인기가 높다. 습지뿐 아니라 마호가니·측백나무 등이 우거진 숲이 있어 야생동물도 많다.





공원 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흰따오기.




공원 입구에서 6.4㎞ 거리에 있는 로열 팜(Royal Palm) 지역으로 들어섰다. 안내책자에서 반드시 가봐야 할 곳이라고 소개된 ‘앤힝거 트레일(Anhinga trail)’이 있어서였다. ‘앤힝거’는 가마우지과의 새 이름이다. 트레일과 주변 습지에서는 앤힝거 외에도 흰따오기·물수리·왜가리 등 다양한 새가 머리 위로 날아다녔다.



트레일은 작은 연못과 습지 주변을 걷는 1.2㎞ 남짓한 짧은 길이었다. 트레일에 들어서자마자 작은 연못에 시꺼먼 악어 한 마리가 얼굴만 빼꼼 내밀고 있었다. 손에 닿을 듯이 가까운 거리여서 흠칫 놀랐다. 한 마리가 아니었다. 연못 곳곳에서 매서운 눈동자가 끔뻑이고 있었다. 국립공원 직원은 “앨리게이터(Alligator) 악어는 공격성이 덜한 편이고, 최근 몇십 년간 사람을 공격한 일이 없었다”며 “안전거리 6m만 유념하라”고 말했다.





적막한 국립공원, 짜릿한 사파리 파크





플라밍고 지역에서 체험한 보트 투어. 맹그로브 숲에 난 수로로 다닌다.




국립공원 최남단의 플라밍고 쪽으로 차를 몰았다. 마침 보트투어가 시작할 시간이었다. 승객 10명을 태우고 배는 북쪽, 그러니까 육지 쪽으로 출발했다.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기 전에 조성한 수로를 따라 북상했다. 맹그로브 숲에 둘러싸인 수로는 좌우 폭이 약 20m였고, 물은 갈색 빛을 띠었다. 해설사를 겸한 선장은 “홍차를 생각하면 된다. 나무에서 떨어진 맹그로브 잎이 우려낸 색”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선장은 “크로커다일(Crocodile)이 오른편에 나타났다”고 알려줬다. 맹그로브 나무 밑동에 몸을 숨긴 녀석이 불편한 눈빛으로 보트 쪽을 응시했다.



악어는 에버글레이즈 국립공원의 얼굴이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앨리게이터와 크로커다일이 함께 사는 지역이 에버글레이즈라고 한다. 앨리게이터는 플로리다에만 수십만 마리가 서식할 정도로 흔하지만, 크로커다일은 멸종 위기종이다. 에버글레이즈 안에 약 300마리가 산다.



에버글레이즈 국립공원의 필수 코스로 꼽히는 게 있다. 에어보트 체험이다. 습지 위를 미끄러지듯이 질주하는 보트인데, 사실 국립공원 안쪽에서는 탈 수 없다. 보트가 습지를 파괴해서다. 이튿날 에어보트를 타기 위해 국립공원 밖 ‘에버글레이즈 사파리 파크’를 찾았다. 일종의 동물 테마파크인 사파리 파크는 앨리게이터 수백 마리를 사육하고 있었다. 관광객이 많이 모이는 시간에 악어에게 고깃덩어리를 던져주는 쇼가 펼쳐졌고, 공원 한쪽에는 갓 부화한 새끼 악어도 볼 수 있었다. 식당에서는 악어 고기를 넣은 햄버거도 팔았다. 에어보트는 예상대로 흥미로웠다. 거대한 팬(fan)이 일으키는 바람을 추진력으로 최대 시속 80㎞로 달리는 체험은 짜릿했다.



나중에 들은 말인데, 국립공원을 찾은 사람 대부분이 악어농장이나 사파리 파크만 들렀다가 돌아간단다. 자극적인 경험을 원하는 인간에게 에버글레이즈는 너무 거대하고 그저 적막한 대자연에 불과해서 일 것이다.









여행정보=에버글레이즈 국립공원nps.gov/ever은 4~10월이 우기, 11~3월이 건기다. 보트 투어 등 체험 프로그램은 우기보다 건기가 즐기기에 좋다. 비와 모기 때문이다. 입장료 자동차 1대 10달러. 국립공원과 가장 가까운 대도시는 마이애미다. 한국에서 마이애미로 가는 직항편은 없다. 이번에는 유나이티드항공united.com을 타고 샌프란시스코를 경유해 마이애미까지 갔다. 유나이티드항공 한국사무소 02-751-0300. 국립공원 안에 숙소는 없다. 공원 동쪽 입구에서 14㎞ 떨어진 플로리다시티에 묵었다. 트래블롯지·퀄리티인 등 저렴한 숙소가 많다. 에버글레이즈 국립공원을 여행하려면 자동차가 필수다. 허츠 렌터카hertz.co.kr를 추천한다. 예약 전에 ‘골드 플러스 리워드’ 회원에 가입하면 혜택이 많다. 영업소에 회원 전용 카운터가 있고, 예약해둔 차를 별도 수속 없이 바로 받아갈 수 있다. 가입은 무료다. 세금·보험 등을 포함해 최신 SUV를 3일 351달러에 이용했다. 1600-2288.





글=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사진=최승표 기자, 미국 국립공원관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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