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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9월 1일 가슴 졸이는 일본의 속사정

중앙일보 2015.09.01 00:34 종합 34면 지면보기
이정헌
도쿄 특파원
일본 초·중·고등학교 여름방학이 거의 끝나가던 며칠 전 ‘전국부등교신문사(全國不登校新聞社)’란 비영리법인(NPO)이 긴급 메시지를 발표했다. 학교에 가는 게 죽는 것보다 싫다며 괴로워하던 일부 학생들에게 호소했다. “스스로를 몰아붙이지 마세요.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가 되도록 노력한 당신에게 필요한 건 ‘쉬는 것’입니다.” 학교에 안 간다고 당장 인생이 끝나는 것은 아니니까 절망하거나 ‘나쁜 맘’을 먹지 말라는 간곡한 부탁이었다. 등교 거부 학생들을 지원해온 이 단체는 “누군가와 비교할 필요는 없습니다. 당신 자신이 힘들다고 느끼면 무리해서 학교에 가지 말고 우선 쉬세요”라고 다독였다. 이어 “학교로부터 도망치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살기 위해서 달아나는 겁니다”라고 강조했다.



 일본에서 학생들의 등교 거부는 심각한 사회 문제다. 집단 따돌림 피해나 학습 부담 등 저마다 사정은 다르다. 문부과학성에 따르면 지난해 초등학생 2만5866명, 중학생 9만6789명이 학교를 떠났다. 1년 전에 비해 초등학생은 1691명, 중학생은 1608명 각각 늘었다. 중학생은 36명 중 1명꼴로 등교를 거부했다. 오죽 힘들었으면 학교를 포기했을까 하는 동정론도 있지만 무기력하고 나약해진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힘들면 잠시 학교에 가지 말고 쉬세요”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속사정이 있다.



 자녀를 학교에 보내는 일본 부모들이 1년 중 제일 가슴을 졸이는 날이 9월 1일, 바로 오늘이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개학하는 날이다. 웃는 표정으로 무사히 학교에 다녀오기만을 두 손 모아 기원한다. 내각부가 1972년부터 2013년까지 42년간 18세 이하 청소년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날을 365일 날짜별로 최근 분석했다. 가을 학기 첫날인 9월 1일이 131명으로 가장 많았다. 전날인 8월 31일(92명)과 다음 날인 9월 2일(94명)에도 학교 가는 게 두려워 생을 마감하는 일이 잇따랐다. 4월 1일 봄 학기가 시작되고 일주일가량 지난 8일(95명)과 11일(99명)도 ‘위험한 날’로 분류됐다.



 이처럼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이유는 초·중학생의 경우 학교 친구들과의 불화, 가족의 질책 등이 많았다. 고등학생은 학업 부진과 진로 문제에 대한 고민을 극복하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괴로운 심정을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채 혼자 끙끙 앓다가 삶을 포기하는 거다. 누군가 바로 그때 그 아이의 손을 붙잡고 가냘픈 한숨 소리에 귀를 기울였더라면, 어깨를 다독이며 “무엇보다 네 자신이 중요하다. 힘을 내라”고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넸더라면 어땠을까.



 요즘 같은 신학기, 학생들이 많이 힘든 건 한국도 마찬가지다.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지 않고 무조건 학교를 쉬라고 말하는 것도 무책임할 수 있다. 하지만 벼랑 끝에서 ‘SOS’를 치는 아이가 없는지 주위를 꼼꼼하게 살펴보자. 혹시 “너무 힘들면 잠시 쉬었다 가자”는 말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정헌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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