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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도심서 ‘에도시대’ 캐낸 나가하마, 한 해 200만 찾아

중앙일보 2015.08.31 01:38 종합 4면 지면보기
1 구도심, 재생타운으로 거듭나고 일본 나가하마 구도심 전경. 에도 시대를 연출한 영화세트장에 온 듯한 시가지는 나가하마 시민들이 전략적으로 선택한 콘셉트다. [나가하마=한은화 기자]
일본 시가(滋賀)현 북동부에 위치한 나가하마(長濱)시의 첫인상은 썰렁했다. 지난 16일 일본 도야마 공항에서 호쿠리쿠 자동차도로를 타고 3시간을 달린 끝에 도착한 시 외곽에는 대형 쇼핑몰이 즐비했다. 일본의 추석인 ‘오봉’의 끝 무렵이어서인지 인적이 드물었다. 하지만 나가하마역 인근 구도심의 모습은 달랐다. 영화 세트장에 온 듯 오래된 목조건물 사이로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문화가 힘이다 <3> 사회 문제, 디자인이 해법

 35년 전 이 거리는 한 시간이 지나도록 사람 네 명과 개 한 마리가 겨우 지날 정도로 텅 비었었다. 외곽에 대형 상점이 들어서면서 사람들은 낡은 구도심을 더 이상 찾지 않았다. 점포 300여 개 중 8개만 남고 모두 문을 닫았다. 결국 마을 주민이 앞장서서 마을 만들기 운동에 나섰다. 긴 시간 노력 끝에 현재 점포 수는 230개로 복구됐다. 12만 명이 사는 소도시 나가하마의 구도심은 연간 200만 명이 찾는 명소가 됐다.



 나가하마에서 일어났던 도시 공동화 문제는 글로벌 이슈다. 도시가 커지면서 외곽으로 뻗어나가자 구도심에는 사람의 발길이 끊겼다. 그 결과 각종 사회 문제가 발생하고, 거주자의 생활은 피폐해졌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충남 천안시의 경우 새로 생긴 KTX역 중심으로 신시가지가 발달하면서 옛 천안역사 주변의 구도심을 재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해법은 있다. 낡은 것을 부수고, 새것을 짓는 지금까지의 뉴타운 건설 방식이 아니다. 유(有)에서 신유(新有)로, 있던 것에 새로운 의미를 더해 되살린다. 해외에서는 이미 구도심이 갖고 있는 예술과 문화 콘텐트에 일찌감치 주목했다. 최정한 공간문화센터 대표는 “구도심이 축적해 온 시간과 장소의 이야기에는 엄청난 미래 가치가 잠재돼 있다. 이를 잘 발굴하면 도시의 문화생태계는 단단해진다”고 말했다.



 ◆재발견하라=“우리는 주변 콘크리트 도시 문화의 틈새를 노렸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오래된 것을 철저하게 활용하기로 했다. 타임슬립(시간여행, Time Slip)이 나가하마의 콘셉트다.”



 80년대부터 나가하마 마을 만들기를 앞장서서 시작했던 다카하시 마사유키(77)의 말이다. 나가하마에는 지역민이 출자해 도시 재생을 담당하는 주식회사 형태의 조직이 여러 개 있다. 상점가 활성화를 맡고 있는 ㈜구로가베, 중심시가지를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나가하마마을만들기 등이다. 지역민들은 나가하마 성 주변에 있는 마을 이야기를 스토리텔링으로 풀었다. 300~400년 된 2층짜리 목조건물을 재단장해 지역 기반의 공예품을 파는 상점이나 레지던스로 쓰고 있다. 구도심에서는 에도 시대(1603~1868년)와 메이지 시대(1868~1912년)의 전통 건축물을 당시로 돌아간 듯 생생히 볼 수 있다. 지역에서 기모노 옷감을 만드는 산업이 발달했던 것에서 착안해 매년 ‘기모노 대회’도 열고 있다.



 우리의 부산시 산복도로(山腹道路) 마을도 장소가 가진 아름다움을 재발견해 되살린 케이스다. 산의 중턱을 지나는 도로를 따라 자리 잡은 감천문화마을과 비석문화마을은 대표적인 서민들의 정착지였다. 가파른 계단을 따라 다닥다닥 붙은 집들이 노후해지자 주민과 시가 합심해 마을에 예술을 입혔다. 길과 담벼락에 그림을 그리고 예술작품을 설치했다. 현재 연간 수십만 명이 이곳을 찾아 산동네의 계단을 오르내리고 있다.



2 문 닫은 소각장 예술로 꽃피고 15년간 사용하다 폐기된 부천의 삼정동 소각장은 지역 작가들이 참여한 전시회부터 열어 문화 공간의 가능성을 먼저 실험했다. 소각장 외관 모습(작은 사진). [권혁재 사진 전문기자]


 ◆사람을 키워라=유네스코 창조도시(공예)로 선정된 이시카와(石川)현의 가나자와(金澤)시에는 도시에 문화와 예술의 유전자를 끊임없이 공급하는 양성소가 있다. 가나자와 시민예술촌이다. 문 닫은 방적공장의 창고를 시민들을 위한 문화·예술 연습실로 만들었다. 연중무휴 24시간 여는데, 6개월 전 예약만 하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단 문화·예술 관련 용도여야만 한다. 18일 찾아간 예술촌은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이시카와현의 사립유치원협회에서 7개의 연습실을 통으로 빌려 유아 교육 관련 행사를 열고 있어서다. 후쇼 유타카 촌장은 “예술촌은 프로 양성기관이 아니다”며 “시민이 부담 없이 예술 창작 활동을 할 수 있게 결과물에 대한 압력을 전혀 주지 않는다”고 했다. 강요하지 않더라도 결과물은 자연스레 나온다. 드라마 공방에서 연극 연습을 하던 시민들이 두 달에 한 번 연극제를 열 정도다.



 ◆뜸 들이라=도시 재생은 기존의 도시가 간직한 이야기를 발굴하고 시민들의 기억을 더하는 방식의 디자인이다. 콘텐트를 먼저 찾고, 필요에 따라 건축물을 재단장하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린다. 경기도 부천의 삼정동 소각장에서는 이 같은 실험이 한창이다. 2010년 내구 연한이 다해 문 닫은 소각장은 향후 용도를 놓고 수년간 진통을 겪었다. 하던 대로 부수고 다시 지을 것인가. 시와 시민들은 일단 그대로 두고 15년간 도시와 함께해 왔던 소각장의 의미를 먼저 탐색해 보기로 했다. 그 첫 성과가 지난 17일까지 열린 ‘공간의 탐닉’ 전시다. 지역 내 작가들에게 소각장에서 영감받은 작품을 만들게 했고, 이를 전시했다. 소각장을 융·복합 문화 공간으로 재단장하기에 앞서 이 같은 실험을 계속하며 콘텐트를 만들어 나갈 예정이다. 단국대 강태웅(건축학과) 교수는 “용도 폐기된 산업시설이라도 그 공간의 특성과 기억을 살려 시민들과 함께 문화로 만들어가는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지속 가능한 아름다움’이 빚어진다”고 말했다.



가나자와·나가하마(일본)=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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