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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회 미당·황순원문학상] 본심 후보작 ⑨ 시 - 최정례 ‘거처’ 외 13편

중앙일보 2015.08.31 00:39 종합 21면 지면보기
최정례(60·사진)의 후보작들은 대부분 시집 『개천은 용의 홈타운』에 실려 있다.



속에서 끓는 말 통렬하게 내뱉다

해설에서 조재룡은 이 산문시집이 “기획의 산물일 뿐만 아니라, 시적 의식을 확장하고 넓혀내고자 한 사투의 결과”라고 상찬했다.



시인이 근년에 천착해 온 산문시가 이완된 진술이 아니라 새로운 시적 모험이라는 것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최정례의 시는 생물학적 나이를 거슬러 더 젊고 치열해지는 듯하다. 산문은 어디까지, 어떻게, 시가 되는가. 이 질문을 던지며 시와 산문, 꿈과 현실, 노래와 항변 사이에 누구도 낸 적 없는 길을 찾고 있다.



 이 시에서도 산문의 직진성과 그것을 창조적으로 방해하는 시의 우회성이 특유의 긴장을 만들어내고 있다. 시상의 예기치 않은 변화뿐 아니라, 감정상태 역시 단순치 않다. 수많은 쉼표와 물음표가 보여주듯, 시적 화자는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올 수 없는 불공정한 현실에 대한 절망감과 “그래도 개천은 용의 홈타운”이라고 믿고 싶어하는 기다림 사이에서 뒤척이고 있다. 그러면서 “범상한 우리 같은 자들” 속에 부글거리는 말들을 거침없이 내뱉는다. 때로는 통렬하게 때로는 유쾌하게, 그 말들은 자기연민을 훌쩍 넘어 세상이라는 과녁을 향해 날아간다. 나희덕(시인·조선대 교수)



◆최정례=1955년 경기도 화성 출생. 90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캥거루는 캥거루고 나는 나인데』 『레바논 감정』 등. 현대문학상 등 수상.



 

개천은 용의 홈 타운



용은 날개가 없지만 난다. 개천은 용의 홈 타운이고, 개천이 용에게 무슨 짓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날개도 없이 날게 하는 힘은 개천에 있다. 개천은 뿌리치고 가버린 용이 섭섭하다? 사무치게 그립다? 에이, 개천은 아무 생각이 없어, 개천은 그냥 그 자리에서 뒤척이고 있을 뿐이야.



갑자기 벌컥 화를 내는 사람이 있다. 용은 벌컥 화를 낼 자격이 있다는 듯 입에서 불을 뿜는다. 역린을 건드리지 마, 이런 말도 있다. 그러나 범상한 우리 같은 자들이야 용의 어디쯤에 거꾸로 난 비늘이 박혀 있는지 도대체 알 수가 있나.



신촌에 있는 장례식장 가려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햇빛 너무 강렬해 싫다. 버스 한 대 놓치고, 그 다음 버스 안 온다, 안 오네, 안 오네…… 세상이 날 홀대해도 용서하고 공평무사한 맘으로 대하자, 내가 왜 이런 생각을? 문득 제 말에 울컥, 자기연민? 세상이 언제 너를 홀대했니? 그냥 네 길을 가, 세상은 원래 공정하지도 무사하지도 않아, 뭔가를 바라지 마, 개떡에 개떡을 얹어주더라도 개떡은 원래 개떡끼리 끈적여야 하니까 넘겨버려, 그래? 그것 때문이었어? 다행히 썬글라스가 울컥을 가려준다 히히.



참새, 쥐, 모기, 벼룩 이런 것들은 4대 해악이라고 다 없애야 한다고 그들은 믿었단다. 그래서 참새를 몽땅 잡아들이기로 했다지? 수 억 마리의 참새를 잡아 좋아하고 잔치했더니, 다음해 온 세상의 해충이 창궐하여 다시 그들의 세상이 되었다고 하지 않니, 그냥 그 자리에서 뒤척이고 있어, 영원히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린다 해도 넌 벌컥 화를 낼 자격은 없어. 그래도 개천은 용의 홈 타운, 그건 그래도 괜찮은 꿈 아니었니?





세상의 고통 품으려는 문학 실험

소설 - 한강 ‘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




고통받는 이들에게 문학은 과연 무엇일까? 문학은 세상의 고통을 어떻게 나눠 지고 있는 것일까? 문학은 그 고통과 함께하는 것처럼 쉽게 말해지지만, 그것의 자리는 냉정하게 말해 ‘고통의 바깥’에 불과할지 모른다. 한강(45·사진)의 ‘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에서 ‘나’는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거기서 멈췄다. 더 쓸 수 없었다. 고통 때문이 아니었다. 내가 그 고통의 바깥에 있다는 사실이 무섭도록 생생했기 때문이다.”



 ‘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에서 광대극을 쓰고 있는 화자 ‘나’는,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이 부처가 되는 대단원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설화에서는 두려워 거절한 이도, 서슴지 않고 품은 이도 관음보살이 거쳐 간 물에 몸을 씻고 모두 부처가 되었다. 그러나 ‘나’의 상상 속에서 물 밖으로 걸어 나온 관음보살은 여전히 부서진 몸의 소녀인 채이다. “영영 잃어버린 사람들”의 고통은 으스러진 소녀의 몸으로 육화되고, 설화 속 인물들에게 허락된 구원을 ‘나’는 도저히 쓸 수가 없다.



 실존을 건 고귀한 정신들의 투쟁에 관한 한, 한강을 넘어설 작가는 많지 않다. 때로 이를 악문 듯한 한강의 문장들은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누군가 피 흘리고 있는 세상을 응시한다. 동료의 부당한 퇴사를 둘러싸고 오해와 갈등을 겪었던 ‘경주언니’와 ‘임선배’는,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자존을 지키고자 했다. 소설은 ‘출근투쟁’과 ‘천막농성’이라는 산문적 세계에 저 설화의 세계를 겹쳐 놓으며, 남겨진 자들이 어떻게 평화를 말할 수 있는지 심문한다. “내가 입을 다물었는데 누가 말하는지 알 수 없었다.”



 과연 문학이, 고통의 안과 밖마저 허물 수 있을 것인가. 영영 잃어버린 무엇은, 바로 그 이유로 우리 삶을 떠날 수 없다. 그 간절한 말들을, 문학의 불가능한 실험을, 한강은 지금 거듭하고 있다.



차미령(문학평론가·광주과학기술원 교수)



◆한강=1970년 광주광역시 출생. 9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장편 『소년이 온다』 등. 소설집 『여수의 사랑』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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