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바깥에서 보는 한국] 박 대통령은 더 과감해야 기회 잡는다

중앙일보 2015.08.31 00:03 종합 29면 지면보기
에이단 포스터-카터
영국 리드대 명예 선임연구원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 심사숙고 끝에 중요한 대북(對北) 결정을 단행했다. 그는 지난 25일 5년 임기의 하반기를 시작했다. 다음달 2일에는 황해를 건넌다. 역시 고심 끝에 박 대통령은 그의 친구라 할 수 있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초대에 응해 베이징에서 개최되는 전승 70주년 행사에 참석한다.



 논란이 많은 결정이었다. 지난 5월 러시아의 승전기념일 행사와 마찬가지로 베이징의 전승절 행사에는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가 포함된다. 열병식 참석은 의도와는 달리 중국이 화력을 과시하는 것에 대해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게 된다. 대부분의 아시아와 세계 지도자들은 아예 베이징에 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러시아·몽골·이집트 그리고 중앙아시아의 ‘스탄’으로 끝나는 4개국 등 최고지도자가 참석하기로 한 나라들은 국제사회에서 소수파다. 미국의 동맹국 중에서 참가를 결정한 나라는 한국과 체코밖에 없다.



 신경 쓸 필요 없다. 미국이 어떻게 느끼건 박 대통령은 올바른 결정을 한 것이다. 미국과 중국이 한국을 사이에 두고 어떤 식의 줄다리기를 하건 한국의 지도자가 이번에 베이징에 가야 할 특별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최근 그 이유를 잘 정리한 것은 얄궂게도 새정치민주연합의 문재인 대표다.



 문 대표는 야당 지도자다. 영어의 경우 야당과 반대는 같은 단어로 표현된다. 야당(the opposition)이 하는 일은 반대(opposition)하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하는 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어떤 종류의 반대는 미묘하다. 한국의 야당은 ‘반대’를 너무 글자 그대로 해석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어떤 때는 물리적인 힘까지 사용한다. 인터넷 시대에는 물리력의 사용은 한국이라는 브랜드에 손해를 끼칠 뿐이다.



 그래서 문 대표가 이번에 보여준 보다 세련된 야당은 환영받게 돼 있다. 반대를 위한 반대를 접고 정부를 더 좋은 길로 접어들게 유도하는 생산적인 야당 말이다.



 문 대표는 박 대통령이 베이징에 가야 한다고 촉구했다. 난처한 입장에 있는 박 대통령을 더욱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이런 상황을 문 대표가 즐겼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전승절 행사에 가야 한다는 문 대표의 주장은 흥미로운 데다 설득력도 있었다. 섬과도 같은 처지인 한국 경제가 성장하려면 북한과 대륙으로 비즈니스 기회를 확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또 남들에게 끌려만 다니는 게 아니라 외교를 통해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문 대표의 발언에는 ‘오류’가 있다. 한국이 고립된 섬이라는 비유는 반론을 부른다.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결코 섬과 같은 외톨이 신세가 아니다. 한국의 크기는 반도의 반에 불과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계를 상대로 경제 관계를 설정하는 데 어떤 지장이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한·중 교역 규모는 한·미 교역 규모의 두 배다.



 문 대표가 진짜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북한이다. 사실 분단은 지리적으로 이상하다. 역사적으로는 비극이다. 그가 말하려는 것은 아마도 평양으로 가기 위해서는 베이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 또한 이상한 지도 읽기다. 한반도를 떠나지 않고 서울에서 바로 직선으로 북으로 가는 게 더 빠르다.



 북으로 가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관점의 북방정책이 필요하다. 분단 이래 많은 사람이 사망했고 부상당했다. ‘눈에는 눈’ 식의 보복만을 추구한다면 갈등의 사이클을 영원히 종식시킬 수 없다.



 나는 박 대통령이 베이징으로 가기로 결정해 아주 기쁘다. 틀림없이 박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은 북한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에 대해 논의할 것이다. 게다가 박 대통령이 김정은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실낱 같은 가능성이 있다. 북한은 이미 김정은의 불참을 발표했다. 그는 5월에 모스크바로 갈 것처럼 하다가 결국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김정은은 이번에도 우리를 놀라게 할지 모른다. 전승절 행사에 나타나는 것이다. 김정은이 현명한 지도자라면 응당 베이징으로 가야 한다. 북한은 중국과 냉랭한 관계로 영원히 남을 수 없다. 김정은이 베이징으로 간다면 이는 강력한 대중(對中) 우호의 제스처가 될 것이다.



 물론 우리는 변덕스러운 김정은을 신뢰할 수 없다. 하지만 중견국가(middle power)인 한국은 주도적으로 외교를 수행해야 한다. 독자 외교를 주장한 문 대표의 주장이 옳다. 또한 한국의 독자 외교는 국내에서 시작돼야 한다.



 이미 많이 늦었다. 북한과 악수해야 한다. 북한은 명확한 계획 없이 모든 버튼을 일단 눌러보고 있다. 김정은에겐 나침반이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가 어디로 가려는지 알기 힘들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한국이 외교 역량을 발휘해야 한다.



 한국도 북한도 북한이 중국에 완전히 종속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남북은 새로운 출발에 필요한 공통의 이해가 있는 것이다.



 남북관계는 언제 다시 전쟁 일보직전으로 치닫게 될지 모른다. 하지만 북한이 한국을 이토록 절실히 필요로 했던 적은 없다. 박 대통령이 충분히 과감하기만 한다면 그가 잡을 수 있는 엄청난 기회가 기다리고 있다.



에이단 포스터-카터 영국 리드대 명예 선임연구원
공유하기
Innovation Lab
Branded Content
광고 닫기